5월19일 경마의 날을 맞아 한국마사회가 경마팬에게 아름다운 기억을 남기며 산화한 수많은 경주마들의 희생과 넋을 기리는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사진제공 ㅣ 한국마사회
이양호 회장 등 참석해 경마무사고 기원제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한다.
신체는 썩어 자연으로 돌아가지만 생전의 업적은 후세에 남아 기억된다는 뜻이다. 이는 경주마도 마찬가지. 경마 팬이 열광하는 첫 번째 대상은 기수가 아니라 경주마라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그중에는 지난해 인기 속에 은퇴식을 한 ‘터프윈’과 같은 명마가 있는 반면 무수한 땀과 발자국을 경주로에 남긴 채 산화한 명마(名馬)도 있다. 한국마사회는 이 같은 경주마들의 희생과 넋을 기리기 위해 해마다 경마의 날에 맞춰 위령제를 지낸다.
제95주년 경마의 날 행사가 진행된 5월 19일, 렛츠런파크 서울 마혼비(馬魂碑)에서는 말(馬) 위령제가 함께 열렸다. 마혼비는 경주마로서 멋지게 살다간 말들의 넋을 위로할 목적으로 렛츠런파크 서울과 부산경남, 제주 등에 세운 커다란 비석이다. 이양호 회장과 한국마사회 임원들, 초청인사 등이 조교사협회 인근의 마혼비를 방문해 위령제와 경마무사고 기원제를 가졌다.
위령제는 영혼의 강람을 청하는 분향강신례를 시작으로 신례, 초헌례, 독축례, 아헌례, 종헌례, 망요례, 음복례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역대 임금에게 제사를 지내는 ‘종묘대제(宗廟大祭)’에 비견될 정도로 많은 정성을 바친다. 관계자는 “경주마들의 혼을 달래는 것은 물론, 한국경마가 1년간 탈 없이 치러질 수 있게 기원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실력에 차이는 있을지라도 경주로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경주마는 없다. 이 과정에서 어떤 말은 우승이라는 영광을 거머쥐지만 어떤 경주마는 예기치 못한 부상을 당한다. 명마도 예외는 없다. 한국경마 불세출의 영웅 ‘미스터파크’(통산전적 22전19승)가 대표적이다. 한국경마사(史)에 길이 남을 17연승의 대기록을 세운 ‘미스터파크’가 세상을 떠난 이유도 부상이었다.
2012년 6월 ‘미스터파크’는 경마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경주로에 들어섰다. 하지만 경주 도중 이상을 보여 급히 동물병원으로 이송됐고, 안타깝게도 수술대 위에서 생을 마감했다. 마주는 물론, 관계자들과 경마 팬들은 슬픈 마음으로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경주마에게 있어 행복한 삶이란 은퇴 이후 ‘메니피’처럼 씨수말로 명성을 잇거나 ‘터프윈’처럼 초원 속에서 여생을 보내는 일이겠지만 ‘미스터파크’처럼 경주로에서 장렬히 산화한 경주마들도 영원히 이름을 남긴다.
이처럼 모든 경주마들의 활약과 노력 덕분에 한국경마는 시행 100년을 눈앞에 뒀다. 마사회 관계자는 “마혼비와 위령제는 앞으로도 한국경마와 운명을 함께할 것”이라고 했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