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범현의 야구學] ‘공공의 적’ 슬럼프의 모든 것

입력 2017-05-26 05:3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스포츠동아DB

슬럼프(Slump). 본래는 가치와 가격의 급전직하 혹은 불황을 일컫는 경제용어다. 부정적인 의미는 스포츠에서도 마찬가지다. 일시적이면서도 깊은 부진과 침체를 뜻하기 때문에 모두가 두려워하는 ‘공공의 적’이 바로 슬럼프다. 무수한 종목 가운데서도 슬럼프가 지닌 영향력이 가장 막대한 곳이 바로 ‘데일리 스포츠’인 야구다. 선수는 물론 코치, 감독까지 한번 수렁에 빠지면 쉽사리 헤어 나오지 못한다. 슬럼프의 원인과 과정 그리고 해결방법에 대해 야구기자 2년차 고봉준 기자가 묻고, 조범현 전 감독이 답했다.


Q : 오늘은 현장 야구인들의 크나큰 고민거리인 슬럼프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야구계에서 슬럼프란 어떤 의미입니까.

A : 슬럼프는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겪는 과정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벗어나야할 존재이기도 하죠. 슬럼프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선 우선 이를 세분화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신적 측면과 체력, 기술적 측면으로 나눠볼 수 있겠네요. 정신적인 원인은 크게 경쟁구도에 따른 심리적 압박감 그리고 공적, 사적인 관계에서 비롯된 스트레스,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경쟁선수가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수록 선수 본인이 위축되면서 슬럼프가 올 수 있고, 덕아웃 안에서의 인간관계나 사적인 문제로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을 때 위기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체력과 기술적인 측면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시즌 도중 체력이 대부분 소진될 경우에도 슬럼프를 겪을 수 있고, 타격 혹은 투구 밸런스가 오랜 기간 잡히지 않거나 노림수가 효과를 보지 못할 때에도 부진에 빠질 수 있습니다.


Q : 슬럼프를 피해갈 수 없다면 빠르게 헤쳐 나가는 방법이 최선이겠네요. 오랜 경험에 비추어봤을 때 가장 적절한 슬럼프 탈출법은 무엇인가요. 다가오는 여름철 대책도 궁금합니다.

A : 가장 빨리 벗어날 수 있는 슬럼프는 체력적 슬럼프입니다. 수면과 휴식, 영양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데 이중에서도 휴식이 가장 중요합니다. 저는 휴식을 적극적 휴식과 소극적 휴식으로 나눠서 활용합니다. 적극적 휴식은 유산소 운동처럼 땀을 흘리는 방법이고, 소극적 휴식은 집에서 조용히 시간을 갖는 일입니다. 특히 적극적 휴식은 화요일 슬럼프를 겪는 선수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주중 첫 경기에 유독 부진에 빠지는 선수들이 많은데, 이럴 때일수록 월요일에 땀을 흘리면서 몸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습니다. 여름철 대비도 중요하죠. 원래는 장마철이 지나야 무더위가 찾아왔는데 벌써 후덥지근한 날이 많더군요. 선수들의 경우 자기 몸은 자기가 먼저 챙겨야합니다. 무작정 훈련만 소화할 것이 아니라 몸 상태를 봐가며 시즌을 치러야겠죠. 저도 선수시절 포수로 뛰었기 때문에 잘 알고 있습니다. 하루는 펑고도 많이 받고 싶고, 땀도 좀 흘리고 싶은 날이 있는 반면 경기에 앞서 푹 쉬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요새는 훈련량을 두고 코치와 선수들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아주 좋은 방법이죠. 대화를 통해 컨디션을 유지하는 방법을 권하고 싶습니다.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Q : 방금 이야기하셨지만, 감독으로서 슬럼프에 빠진 선수들에게 어떤 점을 주문하는지 궁금합니다.

A : 슬럼프는 선수와 감독을 모두 위축되게 만들고 소극적으로 변하게 합니다. 야구인도 역시 사람인데 부진 상황에서 쉽게 웃을 수는 없겠죠. 그러나 슬럼프는 적극적으로 부딪혀서 해결해나가야 합니다. 경험이 많고 오랫동안 꾸준히 성적을 내는 선수들을 자세히 보면 자신들만의 슬럼프 탈출 방법이 있습니다. 원인에 따라 그 과정도 달리 준비해놓죠. 타자들은 선배나 코치들과 터놓고 이야기하면서 부진 이유를 찾은 뒤 그에 맞게 방법을 설정해야합니다. 투수는 조금 다릅니다. 투구 밸런스가 무너진 경우엔 러닝 등으로 몸을 가볍게 만드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구위가 떨어진 시기는 팔과 어깨에 피로도가 쌓였다는 뜻입니다. 이럴 땐 휴식을 평소보다 더 취해야하죠. 포수는 체력과 정신적 스트레스가 주요원인입니다. 체력 부족의 경우 휴식을 취하면 되지만, 정신적 측면은 해결이 어렵습니다. 한 시즌을 치르다보면 7~8경기 정도는 뭘 해도 안 될 때가 있습니다. 직구 사인을 내면 직구가 난타당하고, 변화구를 내면 변화구가 홈런이 되는 날이 종종 찾아옵니다. 아무리 명포수라고 해도 매번 이상적인 볼 배합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배터리코치나 감독과 상의해 경기 출전보단 벤치 대기를 통해 덕아웃에서 생각을 정리할 필요도 있습니다. 아, 그리고 감독 역시 슬럼프가 오기 마련입니다. 데이터를 참고해 작전을 내지만 결국 교체 타이밍은 감독의 몫입니다. 그런데 이게 계속 엇박자가 나다보면 감독도 스트레스를 받으며 슬럼프를 겪게 되죠. 잠도 못 자는 일도 다반사입니다. 감독도 신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빨리 잊는 수밖에 없습니다.(웃음)


Q : 이번엔 팀 전체가 슬럼프에 빠졌을 때 상황이 궁금합니다. 최근 여러 구단들이 코치진 소폭 교체 등을 통해 분위기를 전환하려고 애쓰는 모습인데요.

A : 이 문제는 참 예민한 부분입니다. 일단 감독이 베테랑이냐 아니냐에 따라 코치진 개각의 시작점이 달라집니다. 연차가 꽤 높을 경우 감독은 이를 두고 판단을 내리게 됩니다. 분위기 전환과 팀 쇄신을 위해 코치 교체가 필요한지 고민한 뒤에 결론을 짓죠. 반면 초보감독의 경우 구단 측에서 먼저 건의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두 가지 모두 결정은 감독이 내리는 것입니다. 다만, 그 효과에 대해선 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터닝 포인트가 된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기 때문이죠.

정리 | 고봉준 기자 shuto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