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밀리가 떴다] 서른여섯 KBO·가업이 된 프로야구

입력 2017-07-05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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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후는 넥센에 1차 지명으로 입단하며 사상 첫 부자(父子) 1차지명 기록을 함께 세운 아버지 이종범 해설위원과 기쁨의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제공|넥센 히어로즈

가업을 물려받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큰 영광이다. 형제가 같은 직업을 갖는 것도 부러운 일이다. 형제가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 수 있으니 외롭지 않다.

명예와 부가 따르는 프로야구선수라는 직업은 선망의 대상이다. 모든 아빠들은 아이들에게 슈퍼스타지만 인기 야구선수 아빠의 아들이 누렸을 자부심은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다.

1982년 출범한 KBO리그는 올해 만 서른여섯 번째 시즌을 치르고 있다. 1982년에 태어난 야구소년들은 만 서른다섯 건장한 청년이 됐다. 이 중 이대호(롯데), 김태균, 정근우(이상 한화)는 리그 슈퍼스타다.

KBO리그가 출범 40년을 향해 가며 그동안 드물었던 ‘프로야구 가족’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그동안 메이저리그에만 볼 수 있을 것 같았던 가족들의 새로운 기록을 써내려가고 있다.

아버지 이순철 해설위원을 쏙 빼닮은 두산 이성곤은 대를 이어 외야수로 뛰고 있다. 스포츠동아DB



● 부전자전

이종범 MBC스포츠+ 해설위원의 아들 넥센 이정후는 최근 “열아홉 살 이종범 보다 야구를 잘한다”는 말을 듣고 있다. 야구팬들에게 ‘종범신’이라고 불리며 프로야구가 배출한 최고의 스타 중 한명인 아버지와 비교는 큰 부담이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를 프로데뷔 첫해 완전히 극복하고 아버지도 이루지 못한 대기록에 다가서고 있다.

이정후는 올해 넥센에 1차 지명으로 입단하며 KBO리그 사상 첫 ‘부자 1차 지명’이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이종범 위원은 1993년 해태에 1차 지명으로 입단했다. 이정후는 최근 아버지에 이어 데뷔 첫 시즌 올스타전 선발이라는 큰 기쁨도 누리고 있다. 아버지도 하지 못한 데뷔 시즌 3할 타율과 신인왕 도전도 순항 중이다.

유승안 경찰야구단 감독은 유원상(LG)-유민상(kt) 형제 모두를 프로선수로 키워 다른 ‘선수 아빠’들의 부럼을 사고 있다. 많은 스타플레이어 출신 선수들이 아이들에게 야구를 권하고 적극 후원하고 있지만 프로선수가 되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유민상과 매우 친한 친구인 이성곤(두산)은 최고의 외야수 중 한명이었던 이순철 SBS스포츠 해설위원의 아들로 팀 내 핵심 유망주로 꼽힌다.

두산 박철우 퓨처스 타격코치의 아들 박세혁은 두산 1군에서 포수로 활약하고 있다. 박철우-세혁 부자는 지난해 1군에서 함께 생활해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김태형 두산 감독은 종종 박세혁에게 농담으로 영화 ‘친구’를 패러디하며 “아버지 뭐하시노?”라고 말해 팀 전체에 큰 웃음을 주기도 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한 팀에 있어 불편해 보이지만 부자는 똑 같이 “전혀 그렇지 않다”며 철저한 프로 정신을 보여줬다.

SK 거포 정의윤은 롯데 포수로 활약했고, 넥센 2군 감독을 역임한 정인교 전 롯데 코치의 아들이다.

지난해 9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유두열 전 롯데 코치의 아들 유재신은 넥센 외야수다. 1984년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역전 결승 3점 홈런을 때리며 프로야구 역사를 바꾼 고 유두열 전 코치는 아들 유재신이 2014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뽑히며 부자 한국시리즈 출전이라는 진기록에 기뻐했었다.

프로에서 스타가 됐다는 것은 야구선수로 최고 중에 최고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프로선수 2세들은 항상 최고의 선수와 비교되는 숙명을 이겨내며 프로 유니폼을 입는데 성공했다. 대부분의 아버지들 역시 코치들에게 누가 될까봐 아들이지만 편하게 야구를 가르치지 못했다. 마음 졸이며 자신이 힘겹게 올라온 그 길 초입에 서 있는 아들을 바라봤다.

아직 아버지를 완벽하게 뛰어넘는 아들은 쉽게 만나기 어렵다. 하지만 프로야구의 역사가 깊어질수록 은퇴한 아버지와 흐뭇한 통산 기록 경쟁을 하는 기특한 아들들이 곧 나타날 것으로 기대된다.

두산 박세혁과 아버지 박철우 타격코치는 지난시즌 1군에서 함께 생활해 화제를 모았다. 스포츠동아DB



● 용감한 형제들

그동안 KBO리그에는 수많은 형제 선수들이 있었다. 역사가 짧은 시절 부자 선수가 등장하기 어려웠지만 형 따라 야구부에 입단해 함께 고교무대를 주름 잡은 많은 형제들이 있었다.

안타까운 점은 형제 선수들 중 두 명 모두 큰 두각을 나타낸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다. 그만큼 프로무대의 벽이 높다는 것이 실감된다. 그래도 형제 선수들은 서로를 의지하고 격려하며 흥미로운 승부를 보여주기도 했다.

조동화(SK)-조동찬(삼성) 형제는 둘 다 프로에서 야구를 잘 한 몇 안 되는 형제들이다. 한국시리즈에서 수차례 만나 두 팀 모두를 응원해야하는 부모님의 마음이 자주 신문기사에 실리기도 했다. 동화, 동찬 형제는 어린시절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한 명만 야구를 계속할 수밖에 없는 순간에도 서로에게 양보했던 우애 깊은 형제다.

한살 터울 형제 나성용(삼성), 나성범(NC)의 성장기를 돌이켜 보면 애틋하다. 나이는 한살 차이지만 형이 생일이 빨라 두 학년 위였다. 형은 포수, 동생은 투수였다. 동생은 대학에서 형과 배터리를 이루고 싶어 프로지명도 마다하고 대학에 입학했다. 나성범은 연세대학교 1학년 때부터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형의 미트에 공을 던졌다. 프로에서도 꼭 배터리를 이루고 싶다던 형제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동생 나성범은 프로 입단 후 타자로 변신해 리그를 대표하는 국가대표 외야수로 성장했다. 형 나성용은 엘리트 코스를 한번도 벗어나지 않은 동생에 비해 고생을 더 했다. 한화~LG를 거쳐 삼성유니폼을 입었고 포지션도 포수에서 외야수로 바꿨다. 얼굴이 닮아 한눈에 봐도 형제인 나성용, 나성범은 이제 같은 외야수로 선의의 경쟁을 펼치고 있다.

리그 최고의 타자 중 한명인 SK 최정의 친동생 최항은 최근 1군 엔트리에 등록, 형과 함께 신나게 야구하고 있다. 형제가 같은 팀인 몇 안 되는 행복한 형과 동생이다.

롯데의 새로운 에이스 박세웅은 사상 최초 형제 1차 지명의 주인공이다. 박세웅의 동생 박세진은 2년 전 형에 이어 kt에 1차지명으로 입단해 주목을 받았다. 박세웅이 박세진의 입단 전 트레이드 되며 1차 지명 형제가 같은 경기에 출전하는 흥미로운 장면도 연출됐다. 지난해 4월 28일 형이 선발 등판한 경기에 동생이 상대 팀 불펜 투수로 출격했다. 7월27일에는 형제가 각각 다른 구장에서 선발 등판하는 기록을 세웠다. 역대 두 번째 형제 동시 선발 출격이었다. 같은 해 6월10일에는 kt 정대현-KIA 정동현 형제가 같은 날 형제 선발 등판이라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삼성 조동찬, SK 조동화는 성공한 프로야구선수 형제다. - 최항-최정 형제는 같은 팀 SK유니폼을 입고 1군에서 함께 뛰고 있다(오른쪽). 스포츠동아DB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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