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rots & Law Story] 부정 투수교체 묵인? 규정 벗어난 ‘심판의 배려’

입력 2017-07-06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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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교체는 다양한 이유로 이뤄진다. 그러나 규정에 어긋나선 곤란하다. 최근 KBO리그에선 투수교체와 관련해 논란이 빚어졌다. 6월 13일 고척 스카이돔에서 벌어진 NC-넥센전 도중 규정을 벗어난 투수교체가 이뤄졌음에도 심판진이 묵인해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스포츠동아DB

선발투수 배려…동일 유형 교체 규정 위반
‘∼할 수 있다’ 규정 때만 재량권 행사 가능
‘∼해야 한다’ ‘∼한다’ 경우 반드시 따라야


구기 종목에서 선수교체는 여러 목적으로 이뤄진다. 먼저 지친 선수 대신 새로운 선수를 투입해 경기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는 경우가 있다. 또 전술적 변화를 통해 경기의 흐름을 바꾸기 위해 선수를 교체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반칙에 대한 제재수단으로서의 기능도 한다. 농구의 5반칙 퇴장이 바로 그렇다.

교체한 선수를 다시 투입할 수 있는 종목도 있고, 그렇지 않은 종목도 있다. 농구, 배구, 아이스하키 등은 교체돼 나온 선수를 다시 투입할 수 있다. 반면 축구와 야구는 교체돼 나온 선수를 다시 투입할 수 없다. 그런데 최근 KBO리그에선 투수교체와 관련한 논란이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 교체 규정은 심판이 배려할 수 있는 영역일까?

경기 도중 우완 사이드암 선발투수가 3회 연습투구 중 갑작스레 부상을 입었다. 이 경우 KBO리그의 규정은 다음과 같다. <제15조 2. 나> ‘경기 중 선발 또는 구원투수가 심판진이 인정한 명백한 부상으로 인해 등판 후 첫 타자 또는 그 대타자가 아웃되거나 출루하거나 공수교대가 될 때까지 투구할 수 없게 된 경우에 교체가 가능하다.’ 그러면서 ‘우투수인 경우 우투수로, 좌투수인 경우 좌투수로, 사이드암과 언더핸드인 경우 사이드암 및 언더핸드로’ 교체하도록 하고 있다.

규정대로라면 같은 사이드암 투수가 등판해야 했다. 그러나 수비팀에선 사이드암 투수 대신 좌완투수를 올렸다. 그러자 심판이 잘못된 교체임을 지적했다. 여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심판의 지적을 받은 수비팀에서 사이드암 투수 대신 우완 오버핸드 투수로 교체했다. 어찌된 일인지 이번에는 심판이 아무런 지적을 하지 않았다. 경기 후 심판은 ‘엔트리에 있는 사이드암 투수가 선발투수여서 야구적으로 배려하는 차원에서 양해해주었다’고 해명했다.

심판의 설명대로라면 KBO리그 규정은 심판이 적용할 수도 있고, 적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결론이 된다. 심판이 재량으로 정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KBO리그 규정은 이런 경우 투수교체를 심판의 재량으로 정할 수 있게 돼 있을까?


● 규정의 형식에 따라 다르다!

이 문제는 규정의 형식이 어떻게 돼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먼저 ‘∼할 수 있다’라고 규정돼 있는 경우에는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경우를 재량행위(裁量行爲)라고 한다. 또 ‘∼하여야 한다’ 또는 ‘∼한다’라고 규정돼 있는 경우에는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 할지 말지에 대해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런 경우를 기속행위(羈束行爲)라고 한다.

형법을 예로 들어보자. 형법 제25조 제2항은 ‘미수범의 형은 기수범보다 감경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구체적 사정에 따라 형을 좀더 낮게 할 수도 있고, 낮게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 판단권은 최종적으로 법관(Judge)에게 있다. 제26조에선 중지범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중지범이란 범죄에 착수했다가 완료하지 못하고 중간에 그만둔 경우를 말하는데,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즉, 법관이 형을 정함에 있어 반드시 형을 낮게 하거나 면제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법관의 판결이 불법이 된다. 반드시 따라야 하는 규정인 것이다.


● 배려가 규정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KBO리그 규정은 어떻게 돼 있을까? <2. 다>에 ‘교체는 아래와 같이 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반드시 따라야 하는 기속행위인 것이다. 결국 심판은 배려한 것이라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불법을 저지른 것이 됐다. 만일 심판에게 재량권을 주려면 ‘∼할 수 있다’라고 규정돼 있었어야 한다. 또 하나의 방법은 단서조항을 넣어주면 된다. ‘단, 같은 유형의 투수가 다음 경기에 선발투수로 예정돼 있는 경우라면 예외로 할 수 있다’라는 형식이면 된다.

의도가 좋다고 해서 그것이 규정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그렇게 되면 규정을 둔 이유가 무의미해진다. 규정을 뛰어넘으면 배려의 이름으로 포장됐을지라도 그것은 불법이 된다. 심판(Judge)은 정의를 실현하는 사람이지 불법을 조장하는 사람이 아니다.

법무부 법질서선진화과장 양중진 부장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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