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 감독 “우승은 벌써 과거…손에 쥔 ACL 티켓, 다시 고민의 시간”

입력 2017-12-05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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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KEB 하나은행 FA컵’결승 2차전 시리즈에서 부산 아이파크를 누르고 팀 창단 이후 첫 FA컵 우승을 차지한 울산 현대 김도훈 감독이 4일 울산 현대 클럽하우스에서 영광의 FA 우승컵을 곁에 두고 기념촬영을 했다. 울산 ㅣ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더 큰 그림을 그리는 울산 김도훈 감독

“감독 경험 조금 쌓이면서 판단 빨라져
아버지·형 아닌 삼촌처럼 선수와 밀당
서로 소통하면서 거둔 우승 꿈만 같아
그나저나 ACL 전력보강은 어떡하지?”


우승의 기쁨을 조금 더 누릴 만도 한데, 날카로운 시선은 어느새 다음을 향하고 있었다. 바로 전날에 느낀 환희가 가시지도 않은 채 다음 구상을 준비하는 모습에서 영락없는 지도자의 향기가 느껴졌다.

K리그 전통의 명가로 불리는 울산 현대를 창단 첫 FA컵 정상으로 올려놓은 김도훈(47) 감독의 모습이 딱 그랬다.

김도훈이란 인물은 K리그 35년 역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다. 1995년 전북 현대에서 데뷔해 2005년 성남 일화에서 은퇴할 때까지 자타공인 최고의 공격수로 이름을 날렸다. 별명은 상대를 공포에 떨게 만든다는 의미의 ‘갈색 폭격기’. 그러나 야심 차게 시작한 지도자 생활은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동년배 스타플레이어들이 하나둘 감독으로 자리할 때, 그는 10년 가까이 코치로 머물며 다음을 기약했다.

감독이 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2015년부터 2년간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제대로 쓴맛을 봤다. 물론 좌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울산 지휘봉을 잡은 김 감독은 부임 첫 해 FA컵 정상에 올라 그간의 아픔을 날려 보냈다.

울산 김도훈 감독. 울산|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FA컵 결승 2차전 다음날인 4일, 김 감독을 울산 동구에 위치한 구단 클럽하우스에서 만났다. 지도자로서 처음으로 우승을 맛본 김 감독은 아직 감격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모습이었다. “어제는 벌써 과거가 됐다”고 말하면서도 “축하 연락이 너무 많이 와서 휴대전화 배터리가 다 나갔다. 아직 제대로 확인조차 하지 못했다”며 살며시 웃어보였다.

시즌 소회를 묻는 질문에 김 감독은 “참으로 긴 시간이었다. 크고 작은 스트레스의 반복이었다”며 숨을 돌렸다. 그의 설명대로 울산은 남들보다 긴 여정을 보냈다. 가장 빨리 시즌을 시작해 가장 늦게 레이스를 끝냈다.

전북 현대의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출전권 박탈로 기회를 얻어 2월 초 갑작스레 ACL에 나서면서 숨이 가빠졌다. 플레이오프로 치른 킷치SC(홍콩)전이 2월7일, FA컵 결승 2차전이 12월 3일이었으니 울산은 정확히 10개월 동안 시즌을 치른 셈이다.

물론 이러한 피로는 우승이라는 열매 덕분에 금세 사라졌다.

사실 김 감독이 FA컵 우승 직후 언론의 주목을 한 차례 더 받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나는 실패한 지도자였다”고 우승 기자회견에서 고백하면서부터다. 김 감독은 “지난 팀에서 중도에 옷을 벗었다. 그러면 곧 실패가 아니겠느냐”며 호탕하게 웃었다. 스스로에게 너무나 야박한 평가가 아니냐는 질문에도 “감독에겐 어중간 한 결과는 없다고 생각한다. 성공 아니면 실패다. 비록 아픈 과거지만 실패는 실패였다”고 단호히 말했다.

인천 감독 시절 김도훈. 스포츠동아DB


그렇다면 무엇이 실패한 감독을 우승 감독으로 바꿔놓았을까. 김 감독은 “경험이 조금 쌓이면서 판단하는 속도가 빨라졌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사실 감독이란 자리는 선택의 연속이다. 때로는 가혹하게 결정을 내려야한다. 처음에는 어려움이 많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익숙해지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최근 가장 힘들었던 선택의 순간은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천에서 나온 뒤 독일로 축구유학을 떠난 때였다. “딱 1년 전이다. 사실 독일에서 공부를 하다가 여러 나라를 더 돌아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울산으로부터 감독 제의가 왔다. 거절할 수 없는 걸 알면서도 고민이 됐다. 다시 도전해야한다는 사실이 나를 주저하게 만들었다. 스스로 조마조마했다. 부담도 많았다. 그런데 어느덧 1년이 흘렀다. 지금은 참 꿈만 같다.”

부임 첫 해 선수들과 똘똘 뭉칠 수 있는 배경은 감독 김도훈만의 ‘밀당’ 덕분이었다. 때론 친근하게 때론 엄격하게 선수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관계를 설정해나갔다. 김 감독은 이를 두고‘삼촌’이란 단어로 표현했다. 정다운 형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서운 아버지도 아니라는 뜻이 담겨있었다.

울산 김도훈 감독. 울산|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바로 선수들을 믿었다는 점이다.

“물론 처음 울산에 와서는 기존 팀 컬러와 내 색깔이 맞지 않아 어려운 점도 많았다. 밖에서 울산이란 팀을 많이 봤지만, 안에서 보는 것과는 또 달랐다. 그래도 무작정 내 뜻을 앞세우지 않고 서로 소통하면서 지금에 이르게 됐다.”

이제 김 감독은 다시 선택의 시간으로 접어든다. 어렵게 손에 쥔 ACL 출전권을 잘 활용해야하고, K리그 클래식을 4위로 마감한 지난 시즌의 아쉬움을 달래야한다. 새 목표를 위해선 전력 수급부터 전략 구상까지 여러 선택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 감독은 “큰 폭의 변화는 없을 듯하다. 다만 공격력 보강은 꼭 필요하다. 왼쪽 종아리뼈 부상인 이종호가 내년 초반까지는 돌아오기 어렵다. 수보티치와도 결별한다. 따라서 공격수와 공격형 미드필더를 보강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아직 결정하지 못한 마지막 선택지를 꺼내보였다.

“이제 또 고민을 해야 할 듯합니다. 휴가를 줄여 동계훈련을 늘릴 지, 휴식을 늘려 동계훈련을 줄일 지를요.(웃음)”


● 김도훈 감독은?


▲생년월일=1970년 7월 21일

▲출신교=유영초~통영중~학성고~연세대

▲프로데뷔=1995년 전북

▲프로경력=전북(1995~1997년)~빗셀 고베(1998~1999년)~전북(2000~2002년)~성남(2003~2005년)

▲통산기록=K리그 257경기 114골 41도움

▲코치경력=성남(2006~2012년)~강원(2013년)~U-19 대표팀(2014년)

▲감독경력=인천(2015~2016년)~울산(2017년~현재)

울산 | 고봉준 기자 shuto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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