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토크] 심형래 “슬럼프 끝에 교훈…다시 태어난 것 같습니다”

입력 2018-01-25 11: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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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토크] 심형래 “슬럼프 끝에 교훈…다시 태어난 것 같습니다”

심형래(60)의 이름 앞에는 꽤 많은 직업이 따라붙는다. 1982년 희극인으로 연예계 생활을 시작한 그는 영화배우 방송인 기업인 가수, 영화 각본가이자 제작자 그리고 영화감독으로 나아갔다. 심형래의 도전은 누구보다 화려했고, 파란만장했다. 그의 인생을 ‘롤러코스터’에 비유하자면 하늘로 치솟기도 했고 땅으로 곤두박질치기도 했다. 희극인이자 영화배우로 남부럽지 않은 성공을 거뒀고 연출 대표작 ‘디워’(2007)는 논란만큼 화제를 낳으며 흥행을 이뤄냈다.

하지만 심형래는 사기 혐의로 고소당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조사를 통해 무혐의 처분을 받았음에도 이미 부정적인 시선이 지배적이었다. 이어진 임금 체불 논란과 부도 그리고 파산. 대중은 심형래의 ‘새드 엔딩’을 예상했지만 심형래는 재기에 나섰다. 그는 초심으로 돌아가 지난해 후배들과 유랑극단을 만들고 맨몸으로 무대에 섰다. 심형래 특유의 슬랩스틱과 퍼포먼스가 주된 콘텐츠.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 심형래는 올해 연말까지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관객들을 만날 계획이다.

“유명한 사람보다는 연기 잘하는 후배들을 모아서 팀을 꾸렸어요. 좋은 쇼로 승부를 걸자 싶었죠. 지난해에 강경젓갈축제로부터 의뢰를 받고 다녀왔는데 현장에서 반응이 좋았어요. 제 스타일대로 했는데 다들 재밌어서 뒤집어지더라고요. ‘우리 때의 코미디를 보고 싶어하고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구나’ 싶었죠.”

무대에서 가장 빛나는 ‘희극인’ 심형래. 어린 시절 재봉틀에 올라타 ‘빨간 마후라’를 흉내 내던 심형래는 제대 후 도전한 KBS 제1회 개그콘테스트에서 동상을 받으면서 희극인으로 데뷔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이주일 배삼룡 등이 활발히 활동하던 그 시절, 개그맨은 최고의 직업이었다.

“당시 故 이주일 선배가 ‘코미디의 황제’였죠. 처음에 데뷔했을 때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선배들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죠. 다른 개그맨들이 놀러 다닐 때 저는 나만의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밤새 아이디어를 짰어요. 그렇게 탄생한 캐릭터가 영구예요. 7개월 만에 이주일 선배를 넘어섰었죠. 당시 어린이들이 뽑은 우상에서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다음이 영구였죠.”


영구 등 심형래의 캐릭터들은 희극 무대뿐 아니라 스크린에서도 통했다. 심형래가 주연을 맡은 어린이 영화만 수십편. 특히 ‘영구와 땡칠이’ 시리즈는 4편까지 이어졌다.

“당시 어린이들이 즐겨 볼 만한 영화가 없었어요. ‘파워 레인저’ ‘울트라맨’ 등 아이들이 좋아하는 영화들은 다 일본 작품이었죠. 우리의 콘텐츠가 없다는 게 정말 아쉬웠어요.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시작한 게 어린이 영화예요. 제가 코미디언으로 웃기고 끝날 게 아니라 아이들에게 우리의 콘텐츠를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심형래는 1993년 영화 제작사 영구아트무비를 설립했다. 그는 영구아트무비를 통해 ‘티라노의 발톱’ ‘용가리’ ‘라스트 갓파더’ 등을 제작했다. 국내에서 842만 관객을 동원하고 북미 시장에도 진출한, 심형래의 ‘인생작’인 ‘디 워’도 영구아트무비와 영광을 함께했다. 심형래 감독은 “영구아트무비는 우리나라 영화 발전 과정에서 사관학교 같은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면서 자부심을 드러냈다. 2011년 폐업한 영구아트무비는 심형래의 전성기와 암흑기를 모두 품고 있는 곳이다.

“당시에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용가리’만 봐도 우리는 탈 쓰고 사람이 연기했는데 ‘쥬라기공원’을 보면 아주 기절할 것 같은 거예요. 비교가 안 되니 나부터도 우리 영화를 안 보겠더라고요. 왜 우리는 이런 기술이 없나 싶었어요. ‘용가리’ 만들 때 일본의 ‘고질라’ 팀이 와서 작업했어요. 실사와 컴퓨터 그래픽을 같이 찍어야 하는데 서로 너무 뜨니까 작업하기 어려웠어요. 화면이 어두운 이유가 그것 때문이에요. 컴퓨터 랜더링이 너무 느려서 하나 스캔하다가 세 달 걸리곤 했죠. 기술적인 여건이 안 받쳐주는 상황에서 어렵게 작업했어요.”

심형래는 왜 그토록 이무기와 용에 집중했을까. 그는 “국적 관계없는 몬스터고 우리만이 가진 콘텐츠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기획 단계부터 ‘수출’이 아니라 시작을 세계시장으로 놓고 준비해나갔다. 무엇으로 세계시장으로 갈 것인가 고민했는데 우리만 가지고 있는 것을 내세워야겠다 싶었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임금 체불과 사기 논란에 대해서는 “제작에만 올인 하다 보니 너무 몰랐다”고 말했다.

“영화를 작업할 때만 계약을 해야 했는데 봉급 스타일로 정식 채용한 게 잘못이었죠. 환경이 열악하니까 고정적인 생활을 해주고 싶었거든요. 기숙사까지 만들었었어요. 제 사비를 끌어오기도 했죠. 그런데 그렇게 하다 보니까, 제가 안 되겠더라고요. 그렇게 슬럼프를 겪었지만 대신 큰 교훈을 얻었어요. 아픔도 있었지만 팬들의 그리움에 용기를 내게 됐습니다. ‘디 워2’ 때는 과거에 함께했던 스태프를 모아서 다시 의기투합하고 싶습니다.”

심형래는 ‘디 워’의 후속작 ‘디 워2’를 준비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지지부진해오던 프로젝트였지만 “올해는 다르다”고 확신했다. “1편과 연결은 되지만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그릴 것”이라며 현재 중국의 대형 투자사와 구체적으로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심형래는 콘텐츠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세계는 이제 아이디어의 싸움이다. 용가리도 디 워도 모두 내가 소유하고 있다. 이 콘텐츠를 이용해 영화뿐 아니라 게임으로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콘텐츠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심형래의 또 다른 숙원사업은 대규모 테마파크. 그는 ‘우뢰매’ 시절부터 한국의 디즈니랜드를 구상했다고 말했다. 그가 미리 정해놓은 테마파크의 이름은 ‘심씨네파크’다.

“과거 코엑스에서 영화를 상영할 때 영화 속 아이템들을 버리기 아까워서 전시를 해둔 적이 있어요. 그걸 보더니 아이들이 정말 좋아하는 거예요. 그 후로 여러 가지 시도를 하면서 테마파크의 가능성을 확인했어요. 어정쩡하게 만들면 이도 저도 아닌 게 되잖아요. 하려면 제대로 해야죠. 유니버설이나 디즈니를 이길 수 있는 콘텐츠로 가득한 테마파크를 만들어야죠.”

‘빅 픽처’를 꿈꾸는 심형래는 올해 유랑극단 활동과 ‘디 워2’에 집중할 계획이다. 올해의 출발점에서 그는 “다시 코미디에 활기를 불어 넣겠다”고 야심찬 포부를 드러냈다.

“자꾸 코미디가 없어지는 게 안타까워요. ‘코미디 빅리그’와 ‘개그콘서트’만 남았는데 그것마저 없어지면 코미디가 없는 나라가 되겠죠. 유랑극단을 통해 사회에 웃음을 많이 전파하고 싶어요. ‘디 워2’ 작업도 이어가야죠.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죽었다 다시 태어났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죠.”

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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