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北만 쳐다보는 정부, 정부만 바라보는 체육계

입력 2018-02-01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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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저, 그 문제에 관해서는 아직 확답을 받지 못해서요….”

개막을 8일 남긴 2018평창동계올림픽이 ‘평화올림픽’이라는 기치가 무색할 정도로 심각한 잡음에 시달리고 있다.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졸속 행정’이 ‘준비 차질’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개최국으로서 대회를 이끌고 나가야할 정부당국은 북한에 주도권을 내준 듯 끌려 다니고, 올림픽 전반을 책임져야하는 체육계는 정부 눈치만을 살피느라 제대로 된 정보도 챙기지 못하고 있다.

마식령 스키장. 사진제공|통일부



● 북만 쳐다보는 정부

남북은 1월 중순 연달아 벌인 차관급 실무회담과 스위스 로잔 담판을 통해 평창올림픽 합의를 이끌어냈다. 주요 골자는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 서울-금강산 문화예술공연 개최, 마식령스키장 합동훈련 진행이었다. 큰 틀을 완성한 정부는 여론의 일부 반대를 무릅쓰고 세부사항을 추진해나갔다. 오랫동안 얼어붙었던 남북 관계를 스포츠를 통해 해동시키겠다는 일념에서였다.

그런데 개막이 임박할수록 곳곳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첫째 문제는 북한의 일방적인 행보에 끌려 다니는 정부의 대응이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금강산 예술공연 취소다. 북한은 지난달 29일 오후 10시께 일방적으로 “금강산에서 진행하기로 했던 합동문화공연을 취소한다”고 통보했다. 공연을 나흘 남긴 시점에서 우리 정부는 날벼락을 맞았고, 평화올림픽의 상징 중 하나였던 공연은 결국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는 북한 ‘눈치 보기’ 논란을 가중시키는 불씨가 됐다. 이미 현송월 모란봉관현악단장의 방한을 앞두고 취소와 번복이 오간 터라 여론의 공세는 더욱 날카롭게 정부를 향했다. 동시에 대회가 끝날 때까지 북한에 휘둘릴 수 있다는 불안감도 커졌다.

촌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북한을 믿고 마식령스키장 1박2일 합동훈련만큼은 정상진행 되리라고 자신했던 정부는 31일 선수단 출발 직전까지 관련사항을 확정짓지 못했다. 이번엔 미국이 문제였다. 이동편으로 전세기가 낙점됐는데 이 같은 방안이 ‘대북 제재’에 저촉되는지를 놓고 미국과 이야기를 끝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는 출발 당일인 31일 새벽에서야 최종조율을 마쳤고, 선수단은 이날 오전 전세기를 타고 양양공항을 출발해 북한 갈마비행장을 거쳐 마식령스키장에 도착했다.

남한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단(오른쪽)이 25일 충북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 빙상장 앞에서 단일팀으로 함께 뛰게 된 북한 선수단에게 환영의 꽃다발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정부만 바라보는 체육계

더욱 답답한 대목은 정부와 체육계의 호흡이다. 정부가 북한과 손발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면서 덩달아 체육계까지 흔들리고 있다.

발단은 북한 여자아이스하키 선수단이 방한한 지난달 25일이었다. 당시 논란의 중심에 선 단일팀을 두고 언론의 관심이 집중됐지만, 대한아이스하키협회가 관련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서 혼란이 가중됐다. 방한과 진천선수촌 취재를 놓고 협회는 통일부의 결정만을 바라봤고, 이는 결국 보도 제한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일각에선 문화체육관광부가 취재 전반을 관리하기로 한 4일 스웨덴과의 평가전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같은 해프닝은 스키 합동훈련에서도 벌어졌다. 교통정리를 해야 할 대한스키협회는 출발 임박 전까지 확실한 내용을 파악하지 못했다. 이번에도 통일부가 사실상의 전권을 가져갔기 때문이다. 협회 관계자는 막판까지 “협회가 선수들에게 일일이 연락해 합동훈련 의사를 타진하고 있지만, 언제 떠날지는 아직 모르는 상황”이라는 말만 되풀이했을 뿐이다.

고봉준 기자 shuto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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