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up Of Life] ② 설기현 “월드컵은 축구인생 최대의 찬스…후배들아, 열정을 가져라”

입력 2018-04-06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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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기현은 2002년 대회를 자신의 선수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월드컵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2018년 대회에 나서는 후배들에게 “일단 열정을 가져야한다. 또 철저하게 준비를 해야만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당부했다.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설기현(39·성균관대 감독)은 2000년부터 시작된 대한축구협회 유망주 육성 정책의 첫 수혜자다. 축구협회는 2002년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가능성 있는 선수를 유럽으로 보내 경험을 쌓게 했는데, 그 첫 번째 주인공이 광운대 4학년 설기현이었다.

그가 벨기에 주필러리그 로열 앤트워프에 입단한 때는 2000년 8월이다. 필자는 현장에서 그를 취재했다. 국내 선수의 유럽 진출이 힘들었던 것처럼, 기자의 유럽 출장도 드물었던 시절이다. 우리 둘은 비슷한 처지였다. 서로 의지했다. 같은 호텔에 묵었고, 훈련장도 함께 오갔다. 식사도 같이 했다. 심지어 서툰 영어로 설기현을 위한 통역도 했다. 설기현의 유럽무대 데뷔전 소식을 처음으로 전한 것도 바로 필자다. 어느 날 앤트워프 감독이 훈련장 구석에서 취재하고 있던 필자에게 다가와 “내일 (설기현을) 출전시킬 테니 준비를 단단히 하라고 전해라”고 했다. 되돌아보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인데, 지금 생각해도 그 시절의 추억은 달달하다. 그렇게 설기현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안더레흐트 시절 바이에른 뮌헨과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치르고 있는 설기현.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설기현은 멘탈이 강한 선수였다. 혈혈단신으로 간 낯선 땅이었지만 포기를 모르고 뛰었다. 극한의 외로움을 이겨내며 선수로서 큰 성공을 거뒀다. 앤트워프에서 기량을 인정받은 뒤 이듬해 벨기에 명문구단 안더레흐트로 이적했고, 2003~2004시즌엔 한국인 최초로 유럽 챔피언스리그 출전 및 득점을 기록했다. 잉글랜드 무대도 밟았다. 울버햄프턴과 레딩 유니폼을 입었고, 풀럼과 알 힐랄(사우디아라비아·임대)에서 활약했다. 2010년 K리그 포항에 둥지를 튼 뒤 울산~인천에서 뛰었다. 2015년 초 현역 유니폼을 벗었다.

선수시절을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누가 뭐래도 2002년 한일월드컵 16강 이탈리아전 동점골이다. 설기현의 축구인생을 황금색으로 물들게 한 골이자, 한국축구의 역사를 바꾼 기적의 골이었다.

현재 그의 직함은 성균관대축구부 감독이다. 선수 은퇴 이후 곧바로 대학 감독이 됐다. 정확히 3년이 지났다. 대학 감독의 세계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 시간이다.

성균관대 설기현 감독.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 “운동만 가르치는 게 감독이 아니더라”

-감독으로 잘 적응하고 있나.


“어떻게 하면 선수들을 잘 가르칠까 매일 고민하고 있다. 선수 때는 나 혼자만 열심히 하고 준비 잘하면 됐지만, 이제는 선수들을 위해 모든 걸 해야 하는 자리다. 선수들 성격이 모두 다르니까 이해시키는 게 어려울 때도 있다. 이끌어가는 방향을 고민하는 게 힘든 것 같다.”


-선수와 감독의 입장 차이가 큰 모양이다.

“선수 때는 감독을 이해 못할 때가 있었다. 감독이 되니깐 또 힘들다. 선수의 성격에 맞게 세세하게 맞출 필요가 있는데, 그게 쉽지 않다. 운동만 잘 가르치는 게 감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선수시절 좋은 감독이 되고 싶다는 얘기를 많이 했던 걸로 기억난다. 그 꿈을 이룬 것인가.

“선수 때는 감독이 멋있어 보였다. 특히 유럽에서 뛸 때는 더 그랬다. 좋은 선수로 성장하고, 좋은 클럽으로 가기를 바라는 것처럼, 감독이 되면 특별한 감독이 되고 싶었다.”


-어떤 감독이 특별한가.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가르치며 좋은 성적을 내는 감독을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다르게 가르칠까 고민을 많이 하는데, 딱히 방법을 찾지는 못했다. 다만, 나는 선수로서 많은 경험을 했다. K리그뿐 아니라 유럽, 중동에서 뛰었다. 이 장점을 살려 선수들을 가르치고 있다.”


-성균관대 축구부만의 특징이 있다면.

“아마추어 선수들이지만 프로의식을 갖고 있다. 꿈을 위해서 자기 스스로가 노력을 많이 한다고 자신한다.”

지난 2002 월드컵 16강전에서 이탈리아를 상대로 동점골을 기록한 설기현.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선수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2002년 월드컵”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 생활은.


“2000년 여름 벨기에리그에 나갔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 때는 아무나 유럽을 나갈 수 있던 때가 아니었다. 사실 나는 벨기에가 어디 붙었는지 잘 몰랐다. 하지만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기대감은 컸다. 영광스러운 시간이었다. 내가 뛴 앤트워프는 열악한 구단이었지만 가족적인 분위기였다. 선수들과 감독들이 너무 잘해줬다.”(설기현은 앤트워프에서 25경기 출전·10골을 기록했다.)


-2002년 월드컵도 빼놓을 수 없다.

“물론이다. 2002년 월드컵은 오랜 훈련 과정을 거쳐 힘들었지만 결과가 좋았다.”


-2002년 월드컵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첫 경기 폴란드전이다. 왜냐하면 월드컵 무대 첫 경기를 앞두고 걱정을 너무 많이 했다. 긴장도 많이 됐고. 특히 히딩크 감독님이 대회를 앞두고 큰 소리를 쳤기에 선수들 모두 부담이 많이 됐다. 폴란드의 왼쪽 풀백이 벨기에리그에서 뛰던 선수였는데, 오른쪽 윙으로 뛴 나와 많이 부딪혔던 기억이 난다.”

2002 월드컵 폴란드전에서 선발 출전한 설기현.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첫 경기에서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부산에서 열렸는데, 경기장에 들어가자 벌겋게 물든 관중석이 첫눈에 들어왔다. 이게 TV에서만 보던 월드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아무 생각이 안 나더라. 경험이 있건 없건 누구나 긴장되는 무대가 바로 월드컵이다.”(한국은 폴란드전에서 황선홍~유상철의 연속골로 2-0으로 이겼다.)


-16강, 8강, 4강까지 파죽지세로 올라갈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분명히 축제 분위기가 맞긴 맞는데, ‘이게 우리가 아닌데…’라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16강이 확정되고 김대중 대통령께서 라커룸으로 내려오셔서 격려를 해주셨는데, 그때는 정말 꿈만 같았다.”(김대중 대통령은 1차전 폴란드전과 3차전 포르투갈전이 끝난 뒤 라커룸을 찾았다. 특히 16강이 확정된 포르투갈전에서는 선수들의 병력특례에 대한 건의를 받고는 긍정적인 답변을 주겠다는 약속을 했었다.)


-대회 도중 대한민국 전체가 들썩이고 있는 건 알고 있었나.

“그라운드에서 경기만 하니깐 몰랐는데, 숙소에서 뉴스를 통해 알았다. 화면에 나온 거리 응원은 정말 딴 나라 얘기 같았다.”


-16강 이탈리아전 동점골 상황을 빼놓을 수 없는데.

“어찌 잊을 수 있겠나. 지금도 기억나는 건, 그 때 그 경기는 지고 있더라도 질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이다. 볼이 넘어온 상황에서 이탈리아 파누치의 팔에 맞고 내 쪽으로 흘렀는데, 그 때 든 생각은 이걸 못 넣어도 페널티킥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마음 편하게 찰 수 있었다. 그게 동점골이 됐다.”(0-1로 뒤진 한국은 후반 43분 설기현의 극적인 동점골로 연장 승부에 들어갔다. 아마도 월드컵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동점골로 기록될 만한 득점이었다. 이후 안정환의 연장 후반 12분 골든골로 8강 진출을 확정했다.)


-2002년 월드컵 전체를 되돌아본다면.

“저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럴 것 같은데, 선수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월드컵이다. 그 대회를 통해 자신감도 생겼다. 또 아시아축구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뀐 계기였다. 당시 나는 안더레흐트 소속이었는데, 월드컵 이후 대우가 달라졌다. 예전과 똑같이 잘해도 평가를 훨씬 잘해주더라.”

2006 독일 월드컵 프랑스전 당시 설기현.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2006년 독일월드컵에도 출전했다. 성적은 기대에 못 미쳤는데.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홈과 원정의 차이도 있었고, 훈련 량에서도 많이 달랐다. 또 2002년에는 체력이나 조직력에서 한국축구의 장점을 잘 살린 반면 2006년 때는 그러질 못했다. 4강에 오른 팀이니까 상대가 견제하는 분위기도 읽혔다. 감독님이 오신 지 얼마 되지 않아 선수 파악하는 데 시간을 많이 보낸 것도 2002년과는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2002년의 히딩크 감독과 2006년의 아드보카트 감독을 비교한다면.

“히딩크 감독님은 선수 개인이나 팀 파악을 잘했던 것 같다. 선수들을 자극시키고, 동기부여를 하는 노하우가 뛰어났다. 우리와 상대의 장단점이 뭔지를 정확히 알았다. 아드보카트 감독님도 훌륭한 지도자라고 느꼈지만, 우리가 뭔가를 느낄 만큼의 시간은 부족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는 출전하지 못했는데.

“그때는 내 실력이 많이 부족했다. 또 이청용 같은 좋은 후배들이 많이 나왔다.”


-월드컵에 나가다가 출전을 못하면 어떤 느낌이 드나.

“당시에는 내 스스로의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시기가 아니라는 걸 인정했다. 다만, 경기를 보면서 응원하는 게 다소 생소하긴 했다. TV로 경기를 보는데, 기분이 조금 묘했다. 경기장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떤 장면에서는 괜히 긴장되기도 했다.”

성균관대 설기현 감독.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 “철저한 준비가 있어야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

-현재 국가대표팀에 대한 평가를 한다면.


“축구는 과정이 중요하다. 이번 유럽 원정 평가전을 통해 좋은 경험을 쌓았을 것이다. 유럽 선수들과 몸싸움을 해본 것도 좋은 경험이다. 내 경험을 얘기하면,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서귀포에서 잉글랜드와 평가전을 가졌는데, 당시 대형 수비수 솔 캠벨과 경합한 적이 있다. 그런데 부딪힌 것까지만 기억나고, 그 이후는 정신을 잃었다. 순간적으로 기절을 했던 것이다. 장난이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경험이 월드컵 본선을 치르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우리 선수들도 강한 팀들과 맞붙어 경험하면서 문제점이 나오면 보완해가고, 그 과정을 통해 팀을 만들어 가면 된다. 지금은 월드컵에서 문제점이 안 나오도록 준비하는 과정이다.”


-이제부터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나.

“우리는 매번 어려움을 겪으면서 본선에 갔다. 우리 선수들 기량이나 자신감은 좋다. 아시아에서는 강팀의 입장에서 싸우지만, 월드컵은 약 팀의 입장에서 싸운다. 그 점을 알아야 한다. 수준 높은 팀과의 평가전을 통해 뭔가를 배워야 한다. 짧은 시간이지만 한 경기를 통해서도 배워가야 하는 게 대표선수의 능력이다. 대표선수는 평범한 선수가 아니다. 적응력이나 배움이 남달라야 한다.”


-후배들에게 응원의 말을 해준다면.

“우선 열정을 가졌으면 한다.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를 통해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그런 철저한 준비가 있어야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또 부상을 조심하면서 마지막까지 자기관리를 잘하길 바란다.”

성균관대 설기현 감독.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 설기현


▲생년월일=1979년 1월 8일(강원도 정선 출생)

▲출신교=강릉상고~광운대

▲프로선수 경력=로열 앤트워프(2000~2001년), 안더레흐트(2001~2004년), 울버햄프턴(2004~2006년), 레딩(2006~2007년), 풀럼(2007~2010년), 알 힐랄(임대·2009년), 포항(2010년), 울산(2011년), 인천(2012~2014년)

▲대표팀 경력=U-20 대표팀(1998~1999년), U-23 대표팀(1999~2000년), 국가대표팀(2000~2009년)

▲지도자 경력=성균관대 감독(2015년~현재), 국가대표팀 코치(2017년)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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