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영화 ‘튼튼이의 모험’, “루저를 위하여” 루저에 의한 루저의 도전기

입력 2018-06-18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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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나이에도 ‘뻔뻔하게’ 고등학생을 연기해 어이없는 웃음을 주는 영화 ‘튼튼이의 모험’의 주연 백승환, 김충길, 신민재(뒷줄 왼쪽부터)와 연출자 고봉수 감독(앞쪽).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영화 ‘튼튼이의 모험’ 고봉수 사단

안 해본 일 없는 늦깎이 영화감독과
잃을 거 없는 무명 배우들 의기투합

30대 배우들 뻔뻔한 학생연기 폭소
이거 찍다 저거 찍다 애드리브 만발

제작비 2000만원…극장 개봉 대박
차기작도 코미디…루저 시리즈 쭉∼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이 나타났다.

200여 편의 코믹 단편영화를 만든 감독, 10년 넘도록 묵묵히 무명배우의 길을 걸은 세 명의 연기자가 ‘튼튼이의 모험’이라는 다소 유치한 제목의 영화를 들고 세상에 나왔다. 아직 이들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이 더 많지만 전혀 문제될 게 없다. “끝이 안보여도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감독과 배우들이 내뿜는 극강의 매력, 그 뒤에 드러나는 내공을 접하는 순간, 이들의 앞날에 기대를 걸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21일 개봉하는 ‘튼튼이의 모험’은 사라질 위기의 시골 고등학교 레슬링부 이야기다. 실제 전남 함평중학교의 실화를 옮긴 영화는 세상의 중심에 서지 못한 세 명의 고등학생이 레슬링을 통해 꿈을 찾아가는 내용. 스토리만 보면 대단한 감동 드라마로 보이지만, 사실 ‘루저가 만든 루저의 도전기’라는 설명이 더 적합하다.

연출을 맡은 고봉수(42) 감독과 주연 신민재(35) 백승환(32) 김충길(30)은, 이제는 ‘고봉수 사단’으로 불린다. 2014년 인연을 맺은 뒤 영화계에서 전무후무하게 4편의 영화를 함께 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2015년 단편 ‘쥐포’부터 2017년 장편 ‘델타 보이즈’와 이번 ‘튼튼이의 모험’을 넘어 아직 공개하지 않은 흑백영화 ‘다영씨’도 남아있다. 나이도, 이력도 다르고 성격은 물론 외모의 분위기까지 제각각인 이들이 ‘고봉수 사단’으로 뭉쳐 ‘사건’을 만들어내고 있다.

영화 ‘튼튼이의 모험’의 연출자 고봉수 감독(뒤쪽)과 주연 백승환, 김충길, 신민재(앞줄 왼쪽부터).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늘 하던 대로, 즉흥적으로!”

사단의 중심에 있는 고봉수 감독은 여러모로 흥미를 자극하는 사람이다. “공사장 현장소장으로 일하던 28살에 정말 영화가 찍고 싶어서 3개월짜리 영화아카데미에 등록했다”는 감독은 “카메라 작동과 편집을 배우고 바로 촬영현장으로 나갔다”고 했다. 습작을 포함해 14년간 만든 단편영화가 약 200편, 한 편도 빠짐없이 모두 코미디다.

안 해본 일도 없다. 보험왕을 꿈꾸며 보험회사를 다녔고, 미국으로 건너가 7년간 지낼 때는 한인 라디오 방송에서 드라마를 만들고, DJ로도 일했다. 촬영감독으로 남의 영화도 도왔다. 감독은 “평범하게 회사 다닐 때도 주말마다 직원들 모아서 영화를 찍는 내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고 돌이켰다.

신민재, 백승환, 김충길은 그런 고봉수 감독의 재능이 더 꽃피도록 만든 주역이다. 이들 배우는 2005년 무렵 연기 입시학원에서 처음 만났다. 저마다 좌절하고 실패를 맛보던 때였다.

“두 번 대학 입시에 떨어지고 군대 다녀와 만났다. 배우로 나아가는 데 용기를 주는 관계다.” (신민재)

“처음 같이 연기를 배우고 고생한 친구들은 다 흩어지고 우리 셋만 남았다. 같이 영화사에 프로필 돌리러 다니는, 내 마음 속 ‘베스트 브로’이다.” (백승환)

“우리가 계속 연기하는 걸 주변에선 탐탁치 않아했다. 나이도 먹었지만 관둬야 한다는 생각은 안했다. 한 게 없는데 왜 관둬야 하나.” (김충길)

‘고봉수 사단’이 영화계에서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한 때는 ‘델타 보이즈’부터다. 제작비 250만원으로 만든 이 영화는 남성 사중창 대회 출전을 위해 급조된 4명의 친구 이야기다. 돈도, 열정도 없는 ‘루저’ 4명의 대책 없는 도전기가 여러 영화제에서 주목받았다. 이번 ‘튼튼이의 모험’은 그로부터 이어지는 ‘루저 시리즈’로 봐도 무방하다. 감독과 배우들이 투자자로 참여해 제작비 2000만원을 모아 찍었다. 개봉까지 하리라곤 기대하지 않았다.

“현장에서 우리 모습을 보면 ‘쟤네 지금 뭐하는 짓이야’ 싶을 거다. 하하! 이거 찍다가 갑자기 저거 해보자, 전부 즉흥적이고 애드리브다. 오직 촬영을 잘 넘겨야 한다는 절박함? 그걸로 버텼다. 하하!” (고봉수)

사라질 위기에 놓인 시골 고등학교 레슬링부 이야기를 담은 영화 ‘튼튼이의 모험’의 한 장면. 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인디스토리


● “결국 자신의 이야기”

‘튼튼이의 모험’의 주인공은 저마다 결핍을 가진 인물들이다. 작지만 눈앞에 보이는 희망은 레슬링뿐. 그렇다고 실력이 출중하지도 않다. 다만 레슬링만이 가족 앞에 당당할 수 있는, 자신이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길이다. 배우들은 “결국 우리의 이야기”라고 했다. “배우로서 크게 응원받으며 여기까지 온 게 아니다”는 신민재는 “이 길이 맞는지 모른 채 걷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그런 우리 이야기가 영화에 나열된 듯하다”고 했다. 김충길은 때때로 주변에서 “바보 같다”는 말을 듣는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다. 백승환도 마찬가지. “뒤돌아보면 성과를 낸 삶이 아닌, 대학도 못갈 정도로 실패가 더 많은 삶이지만 영화로 담아낼 수 있어 의미가 있다”고 했다.

배우들의 말을 듣다보면 조금 뭉클하지만, 영화 자체로 보면 그저 황당하게 웃길 뿐이다. 배우가 전부 30대인데도 그 흔한 분장도 없이 ‘뻔뻔하게’ 고등학생을 연기하는 모습이 어이없이 웃긴다. 하물며 레슬링 선수인데 다들 ‘아재 몸’을 자랑한다.

고봉수 감독의 삼촌이자 영화에서 레슬링부 코치 역으로 활약하는 배우 고성완. 사진제공|CGV 아트하우스·인디스토리


영화 조연은 대부분 함평 촬영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캐스팅한 동네 주민이다. 이들은 등장만으로도 최강의 웃음을 만든다. 레슬링부 코치를 맡은 고성완 씨도 한몫 제대로다. 감독의 삼촌인 고 씨는 서울시내 버스기사라는 실제 직업이 무색할 정도로 실감나는 연기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감독은 “삼촌 캐스팅은 어렵지 않았지만, 삼촌이 숙모를 설득하는 일은 아주 어려웠다”고 귀띔했다.

고봉수 감독은 앞으로도 코미디 영화만 만들 계획이다. 이미 차기작 구상도 마쳤다. 독립영화에서 돋보이는 결과물을 낸 그를 눈여겨본 제작사의 제안으로 상업영화 시나리오를 완성했고, 곧 촬영을 시작한다. 제작 규모도 상당할 전망이다. 이번에도 루저의 이야기다. 다만 괴력을 가진 루저들이 주인공이다. 새로 시작하는 상업영화에도 ‘고봉수 사단’은 함께한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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