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계주자 지우는 SK 김태훈, 자리가 필승조를 만들었다

입력 2018-06-23 09: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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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김태훈. 스포츠동아DB

4-0으로 앞서던 팀이 5-5 동점을 허용한 상황. 선발투수가 5회를 채우지 못했고 여전히 2사 1·2루 위기에 등판한다는 것은 불펜투수에게 쉽지 않은 상황이다. 김태훈(28·SK)은 본인에게 맡겨진 중책을 십분 수행하며 필승조의 자격을 증명했다.


김태훈은 22일 수원 KT전에서 5-5로 맞선 5회 등판해 1.1이닝 3삼진 무실점 완벽투를 뽐냈다. SK는 엎치락뒤치락 승부 끝에 13-9 승리를 거뒀다. 3홈런을 때린 한동민이 타선을 이끌었다면, 마운드를 든든히 지킨 건 김태훈이었다.


김태훈의 올 시즌 시작은 미약했다. 선발과 불펜을 오가는 투수가 그의 역할이었다. 김태훈은 올 시즌 4차례 대체 선발로 등판했다. 20이닝을 소화하며 2승1패, 평균자책점 3.60으로 기록 자체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선발 등판은 5월 9일 마산 NC전이 마지막이다. 김태훈은 이후 줄곧 불펜으로 등판, 15경기에서 18.1이닝을 책임지며 평균자책점 4.42로 호투 중이다.


SK 트레이 힐만 감독은 “김태훈은 롱맨 역할에 적합하다. 불펜진 전체에 큰 도움이 되는 선수다. 선발과 불펜을 자주 오가는 건 선수 본인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제 역할에 충실하도록 돕겠다”고 밝혔다. 23일 수원 KT전 선발 한 자리가 비었지만 힐만 감독의 선택은 이승진이었다. 불펜에서 제 역할을 다하는 김태훈을 손댈 필요가 없던 것. 이 선택은 김태훈이 22일 경기의 위기를 말끔히 지워내며 ‘묘수’가 됐다. 힐만 감독은 경기 후 “앞선 2경기 부진(1.2이닝 4실점)했던 김태훈이 정상 컨디션을 찾은 게 긍정적”이라고 강조했다.


SK 김태훈. 스포츠동아DB


22일 경기 후 만난 김태훈은 “앞선 두 경기에서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부담이 심했다. 몸에 힘이 들어가니까 실투가 잦아 안 좋은 결과가 나왔다. 그 부담을 지우고 등판하니까 내용이 좋았다”고 안도했다.


김태훈은 불펜 전업 이후 7명의 승계주자를 물려받았다. 이 중 홈을 허용한 건 단 두 명. 표본이 많지 않지만 승계주자 실점률(IRS)은 28.5%로 안정적이다. 주자가 있는 상황에 등판하는 경우가 잦은 불펜투수에게 승계주자 실점률이 낮다는 점은 큰 메리트다. 김태훈도 모를 리 없다. 그는 “내가 등판할 때 주자가 있다면 ‘어떻게든 이 주자들을 잔루로 처리한다’는 생각이다”고 설명했다.


선발과 불펜을 오가는 자원에서 필승조로 ‘승진’한 그는 “결과가 좋으니 감독님과 코치님이 믿어주신다. 아직 필승조라는 직함이 어색하다. 하지만 팀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내가 조금이나마 채울 수 있어 기분이 좋다”는 미소로 인터뷰를 마쳤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고 있다. 김태훈은 이제 어엿한 비룡군단의 필승조다.


수원 |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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