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독일전 승리에 취해 있으면 한국축구의 미래는 없다

입력 2018-06-29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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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월드컵을 보면서 응원할 팀이 없다는 건 슬픈 일이다. 지금 우리가 그렇다. 대한민국의 2018년 월드컵은 개막 10여일 만에 끝이 났다. 조별예선 1승2패로 일찍 짐을 쌌다. 우리는 두 번의 ‘경험’과 한번의 ‘증명’을 했다. 특히 1%의 희망을 기적으로 만든 독일전의 여운은 당분간 지속될 듯하다.


나는 독일과의 경기를 보면서 오랜만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괴성도 질렀다. 그리고 욱해서 내뱉은 말이 “진작 저렇게 하지”였다. 이번 대회 처음 맛보는 기쁨과 함께 안타까움이 뒤엉켰다. 이긴 건 좋은데, 왜 처음부터 그런 전술과 분위기, 정신자세를 갖지 못했을까하는 속상함이 솟구쳤다. 왜 우리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뒤에야 집중력이 살아나는 지 몇 번이고 묻고 싶었다. 이런 가정이 쓸데없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입안을 맴도는 건 ‘카잔의 기적’이 전해준 감동이 워낙 컸기 때문이다.


이번 승리로 얻은 교훈 중 하나는 우리의 축구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 몸에 익숙한 압박과 기동력, 그리고 조직력으로 무장한다면 어느 팀이라도 해볼만하다. 상대 전력에 지레 겁먹고 위축되는 게 아니라 질 때 지더라도 우리의 축구를 하다보면 승산이 있다는 걸 알았다. 조별예선 탈락 팀 중 박수 받은 팀의 공통점도 자신의 색깔을 보여줬다는 점이다.


사실 우리에겐 문제점이 더 많았다. 2차전까지는 9회 연속 본선진출이라는 화려한 수식어가 쑥스러웠다. 기술이나 체력, 조직력, 전술 등 어느 것 하나 만족스러운 게 없었다. 수준 차만 확인했다. 공이 둥글다며 이변을 바란 건 순진한 생각이었다. 이 모든 게 독일전 승리로 아무 문제없었다는 듯 묻혀버려선 곤란하다.


이번 월드컵은 아시아 최종예선 때부터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논란의 연속이었다. 이제 그 논란들을 하나둘 정리하면서 4년 뒤를 기약해야한다. 잘잘못을 따져 반성할 건 반성하고, 잘한 건 살려 나가야한다.


비단 4년 뒤만이 아니다. 더 길게 내다보고 장기적인 비전을 세워야한다. 2002년 월드컵 4강의 주역이자 현재는 방송해설을 하고 있는 이영표와 박지성은 2차전 이후 “근본적이고 혁신적인 변화가 없다면 4년 후에도 실패를 거듭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당장 감독 문제가 가장 뜨거울 것이다. 신태용 감독에 대한 평가를 비롯해 차기 감독까지 거론될 것이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신태용 감독.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내가 바라는 건 누가 되든 차기 감독만은 다음 월드컵까지 온전히 지휘봉을 잡았으면 한다. 감독은 한국축구의 얼굴이다. 자신의 색깔을 입힐 시간이 필요하다. 축구는 단순히 볼만 차는 게 아니다. 그 속엔 감독의 철학이 녹아 있다. 월드컵 같이 큰 대회일수록 더 그렇다.


불행하게도 우린 그동안 벼락치기만 했다. 최근 2차례 월드컵에서 지휘봉을 잡은 40대 감독들에게는 1년이라는 짧은 시간만이 주어졌다. 짜임새가 부족한 건 어쩌면 당연했다.


물론 철저한 평가를 통한 신중한 선임이 전제가 되어야한다. 출신을 떠나 우리 스타일에 맞는, 그리고 세계 수준에 대항할만한 감독을 뽑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런 다음엔 사사건건 흔들지 말고 끝까지 믿고 맡기자. 이게 기본이고 상식이 되는 우리의 축구문화를 보고 싶다.


선수층을 두껍게 할 방안도 마련해야한다. 주전 선수 한명이 부상당했다고 팀 전체가 흔들려선 곤란하다. 대회를 앞두고 부상 선수가 나오는 건 불행한 일이다. 하지만 그런 불확실성은 어느 팀에나 마찬가지다. 관건은 백업요원이 그 공백을 얼마나 잘 메워주느냐다. 우리에겐 가용자원이 부족했다. 이는 선수 발굴 시스템이 부실하다는 방증이다. 모든 나라가 유소년 육성에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학원축구와 클럽축구 사이에 불협화음, 아니 곪아터질 정도의 시각차가 있다. 이런 현실을 타개하면서 한국적인 육성 시스템을 만드는데 지혜를 모아야한다.


세계 랭킹 1위를 잡았다고 우리가 1위가 된 건 아니다. 우리는 조별예선 탈락 팀이다. 다음 월드컵에서 16강에 오르기 위한 현실적인 준비를 해야 한다. 승리에 취해 있으면 한국축구의 발전은 없다.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체육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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