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퍼트 형 100승 위해!” 대기록에 숨은 KT의 조력자들

입력 2018-06-29 21: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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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니퍼트. 스포츠동아DB

한때 ‘용병’으로 불리던 외국인 투수의 1승. 가벼이 볼 수 있지만 그 주인공이 더스틴 니퍼트(37·KT)라면 얘기는 달랐다. ‘퍼트 형’ 니퍼트의 통산 100승을 위해 KT 선수단 전원이 팔을 걷어붙였다.


니퍼트는 29일 수원 NC전에서 7이닝 5안타 2볼넷 2실점으로 팀의 7-3 승리를 이끌었다. 이날 전까지 통산 199경기에서 99승을 기록했던 니퍼트는 이날 승리로 외국인 선수 최초로 100승 고지에 올라섰다. 그야말로 대기록이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니퍼트는 9일 수원 넥센전에서 통산 99승을 달성한 뒤 15일 마산 NC전, 21일 수원 롯데전에서 모두 승패 없이 물러났다. 28일 잠실 LG전 선발등판이 예고됐지만 우천으로 경기가 연기됐다.


29일 경기 전 KT 김진욱 감독은 “내색은 안 해도 사실 누구보다 니퍼트 본인이 초조하고 신경 쓰일 것”이라고 입을 열었다. 통산 100승의 의미는 김진욱 감독도 높게 평가했다. 그는 “평균자책점만 봐도 2.99와 3.00은 0.01 차이에 불과하다. 단, 선수들이 갖는 자부심은 다르다”며 “니퍼트가 99승에 그쳐도 위대한 투수라는 건 변함없지만 팀과 본인 모두를 위해서 100승을 달성했으면 좋겠다. 니퍼트의 100승을 축하하며 팀 분위기도 올라갈 것”이라고 밝혔다. 끝으로 “오늘 오신 기자분들이 니퍼트 100승 기사를 쓰셨으면 좋겠다”는 특유의 너스레까지 덧붙였다.


KT 니퍼트. 스포츠동아DB


김진욱 감독은 덕아웃을 지나가던 강백호에게 “오늘 니퍼트 형 100승이 달려있는데, 무엇을 할 생각이냐?”고 물었다. 잠시간 망설이던 강백호는 특유의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안타를 많이 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강백호는 0-2로 뒤진 1회 선두타자로 나서 중전 안타를 때려냈다. 이어진 무사 만루에서 윤석민의 내야 안타 때 재빠르게 홈을 밟았다. KT는 여세를 몰아 1회 2점 더 뽑아내며 3-2 역전에 성공했다. 강백호는 2회에는 희생플라이로 리드를 4-2까지 벌렸고 6회, 8회에도 안타를 때려냈다. 이날 3안타를 때려낸 그는 타율 0.303을 기록, 4월 17일 이후 73일 만에 3할 타율에 복귀했다.


니퍼트와 배터리 호흡을 맞춘 장성우의 숨은 공로도 빛났다. 장성우는 15일 마산 NC전에서 의도치 않은 오해를 샀다. 니퍼트가 마운드 위에서 불만 섞인 표정을 여과 없이 드러냈는데, ‘이는 포수 장성우를 향한 불만 표시’라는 얘기가 나왔기 때문이다. 당시 니퍼트는 장성우에게 “체인지업 제구가 잘 되는가?” 등을 물었고, 제구가 제대로 됐음에도 안타를 허용한 자신에게 화를 냈다. 오해의 당사자였던 장성우는 이날 경기 전부터 덕아웃에서 니퍼트의 긴장을 풀어주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길지 않은(?) 영어 실력에도 니퍼트에게 농담을 한두 마디 건넸고, 니퍼트는 폭소를 터뜨렸다. 1회 2실점으로 흔들린 니퍼트였지만 2회부터 7회까지 무실점으로 버틴 데는 장성우의 공도 크다. 장성우는 3-5로 불안한 리드가 이어지던 8회, 솔로포로 니퍼트의 100승에 쐐기를 박았다.


니퍼트는 7회까지 투구수 110개를 기록한 뒤 마운드를 내려갔다. 7회를 마친 뒤 1루 덕아웃 앞쪽에 선 채로 외야수들이 돌아올 때까지 격려를 보냈다. KT 팬들은 그의 이름을 연호했고 니퍼트도 모자를 벗어 화답했다. 공은 불펜으로 넘어간 상황. KT 불펜진은 니퍼트가 승리투수 요건을 채우고 마운드를 내려간 상황에서 두 차례 블론세이브를 기록한 바 있다. 만일 불펜이 안정적이었다면 니퍼트의 100승은 조금 일찍 달성될 가능성도 있던 셈. 이날은 달랐다. 니퍼트가 7회까지 투구수 110개를 기록한 채 마운드를 내려가자 불펜진이 남은 2이닝을 1실점으로 지켰다. 엄상백과 심재민의 2군행으로 ‘클로저’ 김재윤까지 가는 길이 험난한 KT지만 리드를 빼앗기지 않으며 니퍼트의 100승을 완성시켰다. 2연패에 빠졌던 KT는 니퍼트의 100승으로 분위기 반전에 어느 정도 성공했다. 승리투수의 승은 결코 투수 혼자 만들지 않는다는 격언이 드러난 경기였다.


수원 |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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