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인터뷰] 김영권 “월드컵은 끝났어도 나와 한국축구는 계속 뛴다!”

입력 2018-07-06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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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간의 힘겨웠던 시간, 이제 김영권은 활짝 웃으며 카메라 앞에 섰다.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4년 전에도 울었고, 올해도 울었다. 국가대표 중앙수비수 김영권(28·광저우 에버그란데)은 2018러시아월드컵에서 가장 빛난 태극전사 중 한 명이었다. 바닥을 친 것도 모자라 한 때 끝 모를 지하까지 내려갔던 그였기에 그라운드에서의 당당한 포효는 훨씬 아름다웠다.


최근 서울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만난 김영권의 표정은 한결 여유로웠다. “아쉬움은 남을지언정, 더 이상 아프지는 않다.” 온갖 비난에 시달린 그는 월드컵을 통해 명예를 회복했다. 우리 대표팀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골키퍼 조현우(27·대구FC)와 김영권이 있었고, 짜릿한 감동을 남긴 독일과의 조별리그 F조 최종전(3차전·2-0 승)에서는 결승골까지 넣었다. VAR(비디오판독)까지 진행되는 등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감동은 더욱 컸다. 오직 살기 위해 뛰었고, 그렇게 살아났다. “나도, 동료들도, 대한민국 축구도 큰 의미를 찾을 수 있었던 월드컵이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긍정의 내일을 그릴 수 있는 잠재력을 확인했다.”


● 처절하게 부딪힌 월드컵


- 이번 월드컵은 어떻게 기억될까.


“평생 기억될 대회였다. 결과는 조금 아쉽게 됐지만 내가 좀더 성장할 수 있었다. 독일을 이기면서 우리도 희망을 찾았다.”


- 월드컵에 임하는 마음이 남달랐을 텐데.


“정말 괴로웠다. 스웨덴과 1차전 전날만 해도 세상의 온갖 욕을 먹고 있었다. 모두가 우린 ‘안 된다’는 부정적인 시선을 보냈다. 물론 괴로웠다. 다만 외부를 탓하기 전에 스스로 바뀌자는 생각을 많이 했다. 결국 경기장에서 실력을 보이면 되지 않을까라는 마음이었다. 몸을 사리지 않는 플레이를 보여드린다면 조금이나마 노력을 인정받을 것이라는 감정이었다.”


김영권은 생애 처음 월드컵에 나선 2014년 브라질대회에서 ‘자동문’이란 닉네임을 얻었다. 쉽게 공간을 열어준다는 조소 섞인 표현이었다. 세계의 벽에 맥없이 무너진 그는 속절없이 눈물을 쏟았다. 이후 그가 경기를 뛸 때마다 조롱이 쏟아졌다. 지난해 8월은 더욱 큰 타격이었다. 이란과의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홈 9차전(0-0)에서 “관중 소리로 인해 (선수들의) 소통이 어려웠다”는 오해 섞인 코멘트로 비난받았다. 무거운 마음과 몸으로 잠시 대표팀을 떠나게 됐다. 지난해 12월 E-1챔피언십과 올해 3월 유럽 원정 시리즈에 불참했다.


- 언제까지 충격이 이어졌나.


“스웨덴전 직전까지 그랬다. 엄청난 슬럼프에 빠졌다.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뭔가 제대로 하고 싶었는데 잘 풀리지 않았다. 잘하려고 할수록 더욱 수렁에 빠졌다. 고통스러웠다. 다행히 기쁨의 눈물, ‘좀더 할 수 있을 텐데’ 아쉬움의 눈물로 마쳤지만….”


축구선수 김영권.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 자신과 팀을 단단히 다지다


- 러시아에 처음 입성했을 때 밝힌 ‘우린 99.9% 준비됐다’는 발언이 인상적이었다.


“실력이 99%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다만 준비 과정, 팀 완성도가 그 수준에 이르렀다는 얘기였다. 그만큼 자신이 있었다. 잘 될 것 같다는 느낌이 있었다. 실제로 정확히 코칭스태프 분석대로 상대가 나왔다.”


- 4년 전에 비해 어떤 부분이 성장했나.


“월드컵에서 우린 최하위 전력이다. 전술 못지않게 멘탈을 붙잡는 것도 중요하다. 동료들이 마음을 정말 다부지게 먹었다. 브라질대회에서는 그저 막연히 ‘그간 하던 대로 하면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자세를 낮췄고, 겸손하게 대회를 준비했다.”


- 주장 기성용(29·뉴캐슬 유나이티드)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내가 대표팀에서 잠시 빠져있는 동안 가장 많은 연락을 했다. 힘들다고, 속상하다고 하소연을 정말 많이 했다. 그 때마다 형이 그랬다. ‘내가 아는 넌 충분히 이겨낼 것’이라고. 별것 아닌 듯, 무심한 듯한 이 말을 정말 듣고 싶었다.”


- 이미지 트레이닝을 정말 많이 했다더라.


“맞다. 대회를 준비하면서 (기)성용이 형과 나란히 치료를 받는 동안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내 축구인생에 가장 많이 축구 공부를 한 것 같다’고. 화장실에서도 영상을 봤다. 특히 내 실수영상을 집중적으로 봤다. 같은 실책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 그래도 두려움이 컸을 텐데.


“당연하다. 부상자도 많았고, 다양하게 마련한 전략을 제대로 풀어낼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도 있었다. 특히 난 6개월여 만에 태극마크를 다시 단 입장이었다. 다만 자신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마지막 능력을. 직접 월드컵을 부딪혀보고 모든 걸 결정하고 싶었다.”


축구선수 김영권.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인생태클, 인생경기


- 결정적인 위기를 차단한 스웨덴전, 멕시코전 활약이 대단했다.


“그렇게 날 둘러싼 반응이 바뀔지 몰랐다. 의외로 칭찬이 많았다. 약 8개월 전부터 스포츠 뉴스를 전혀 보지 않았다. 기사도 읽지 않았다. 소속 팀 소식조차 모를 정도로. 그런데 스웨덴전 직후 실시간 검색어에 내 이름이 있더라.”


- 독일전 결승골을 기억하나.


“팀 분위기가 다소 침체돼 있기는 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모두가 마지막 훈련을 한 뒤 ‘3패는 피하자. 16강 여부를 떠나 아름답게 뛰자’는 약속을 했다. 골을 처음 넣었을 땐 뭔가 붕 뜬 기분이었다. 기분도 묘했고. (VAR은) 인생에서 가장 긴 1~2분이었다. 다시 세리머니를 했을 때는 그냥 어린이처럼 펄쩍펄쩍 뛰기만 했다.”


- 이제 축구인생 3막이 열린다.


“4년 뒤 카타르대회도 놓지 않는다. 그 때는 꼭 16강에 오르고 싶다.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할지 잘 안다. 월드컵은 끝났지만 대표팀은 끝나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4년을 대비하고 사력을 다할 것이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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