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리그 레이더] 새 시스템보다 중요한 것은 심판존중과 믿음

입력 2018-07-18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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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KOVO

한국배구연맹(KOVO)이 심판아카데미(5~13일)를 열었다. 해마다 실시하는 기존심판의 보수교육과 더불어 새 심판을 뽑는 행사였다. 예년보다 교육 일정이 길었다. 지난 시즌 도중 도입됐던 심판보조 전자시스템과 e스코어시트의 전면도입을 앞두고 새 시스템에 적응하기 위한 교육이 포함됐다.


이와 함께 색다른 프로그램도 들어 있었다. 심판과 감독의 대화였다. 5일 열린 행사에는 우리카드 신영철 감독과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이 참석했다. 두 감독은 KOVO로부터 “심판과의 간담회에 참석해줄 수 있겠냐”는 요청을 받자 흔쾌히 서울 상암동 심판아카데미 교육장을 찾았다. 최태웅 감독은 지난 시즌 판정과 관련해 평소 품고 있던 궁금증, 비디오판독과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 등을 미리 발표 자료로 준비해오기도 했다.


● V리그 출범 이후 처음 열린 심판과 감독의 공식 간담회


두 감독은 “혹시 청문회가 아니냐”면서 걱정도 했지만 간담회에서 오고간 내용은 생산적이었고 화기애애했다. 규칙의 해석이나 과거의 문제점을 놓고 잘잘못을 따지기보다는 서로를 이해하고 그동안의 오해를 푸는 것에 방점을 뒀다. 감독들은 KOVO 심판의 판정이 다른 리그보다 훨씬 더 정확하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했다. 반면 소통의 부재를 아쉬워했다.


최태웅 감독은 “경기 때 궁금한 것을 물었지만 대답해주지 않았다”고 했다. 전영아 심판은 “FIVB(국제배구연맹)의 심판지침서에 따라 심판은 두 팀의 주장에게만 얘기를 할 수 있다. 심판은 규정대로 따라야 하기에 어쩔 수 없다”고 설명했다. FIVB의 심판지침서 규칙5(팀리더) 3,4항은 “주장이 심판의 규칙적용에 설명을 요구하면 주심은 해줘야 한다. 주장만이 팀원들을 대신해 심판진의 규칙적용 또는 해석의 설명을 요구할 권리를 갖는다. 감독은 타임아웃과 선수교대를 제외하고는 심판에게 어떠한 요구도 할 권리가 없다”고 규정했다. 이 규정에 얼마나 유연성을 두느냐는 로컬룰로 정할 문제지만 심판은 판사가 아니라 관중을 위해 경기를 무리 없이 이끄는 지휘자라는 사실을 명심하면 해결책은 쉽게 나올 것 같다.


2018 KOVO 심판 아카데미에 참석해 심판들과 격의 없는 간담회를 진행한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왼쪽)과 우리카드 신영철 감독. 사진제공|KOVO


심판과 감독들은 대담에서 “흥분하지 말자” “여유를 가지고 웃으면서 서로를 대하자”는 의견도 주고받았다. 이날 간담회의 가장 큰 소득은 내용보다 이런 자리를 공식적으로 마련했단 것 자체였다. 그동안 심판은 팀 관계자와 사석에서 접촉을 금지하는 내부규정에 따라 만남 자체를 피해왔다. 그러다보니 긴 시즌 동안 오해가 쌓여왔고 누구는 몰래 만나 징계도 받았다.


참석자들은 이번 간담회가 해결책은 될 수 없겠지만 공식적인 자리를 통해 심판과 감독들이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고 이해하는 시간을 늘리자고 했다. KOVO는 심판과 감독들의 대화 자리를 비시즌 때 정기적으로 만들 생각이다.


● 배구심판들의 첫 체력 테스트와 배구 규칙시험


심판들은 13일 수원 영생고에서 벌어진 실기훈련 때 체력테스트도 받았다.


역동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축구 농구의 심판과 달리 배구심판은 정적이어서 그동안 체력테스트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2~3시간 동안 집중력을 꾸준히 유지해야 하는 심판의 특성상 체력은 중요한 요소다. 심판들은 첫 체력테스트에서 1km달리기와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 등을 했다. 나이별로 기준을 따로 두긴 했지만 공무원 채용시험 때 실시하는 체력테스트를 기준으로 했다.


KOVO는 앞으로 체력테스트의 기준도 정하고 시즌 때도 심판들의 자기관리 기준을 정할 생각이다. 심판들은 필기시험도 봤다. OX문제, 틀린 설명을 찾는 객관식, 룰을 설명하는 주관식 등 총 40문제였다. 100점 만점으로 최고점수는 95점이었다. 심판의 평균점수는 88점이었다.


사진제공|KOVO


● 진짜 중요한 것은 전문성과 심판과 판정에 대한 존중


최근 KOVO는 몇몇 아쉬운 사안으로 큰 홍역을 겪었다. 그 파문으로 몇몇은 여전히 징계상태다. 상벌위원회에서 충분히 판단했을 것으로 믿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오심과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은 징계가 달라야 하지만 명확한 기준 대신 대중의 감정과 관련 구단의 반응을 먼저 고려했다는 생각도 든다.


오심도 문제였지만 경기위원과 심판위원, KOVO가 상황을 조기에 정리해주지 못해 문제를 더 키웠던 기억도 생생하다. 간혹 두 위원들의 의견이 달라 어색한 상황이 노출된 적도 있었다. 그래서 최근 벌어진 이사회에서 경기위원과 심판위원을 통합하는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믿는다.


첨단장비의 도입과 새로운 제도가 분명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겠지만 진짜로 중요한 것은 KOVO와 전문위원들의 판단이다. 아무리 좋은 제도와 기술, 시스템을 만들어도 사람이 제대로 이해하거나 실천하지 못하면 효과는 떨어진다. 그런 면에서 책임지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높은 전문성이 요구된다.


또 하나 심판과 판정의 존중이다. 내부인들이 우리 심판과 판정을 믿고 존중해주지 않으면서 팬들에게 믿으라고 할 수는 없다. 먼저 우리 심판을 믿고 판정을 존중하는 문화부터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배구인들이 할 일이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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