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배구? 밀당이 심해요” 이재영-이다영 자매의 유쾌한 대담

입력 2018-07-27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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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한국-태국 여자배구 올스타 슈퍼매치 2018에서 이다영과 이재영. 스포츠동아DB

이재영(흥국생명)과 이다영(현대건설·이상 22) 자매는 한국 여자배구의 아이콘으로 통한다. 1996년생 쌍둥이인 둘은 밝은 성격과 스타성, 배구 DNA까지 참 많은 것을 빼닮았다. 2014인천아시안게임(AG) 때 고교생 신분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둘에게 2018자카르타-팔렘방AG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프로 무대에서 최고의 레프트(이재영)와 세터(이다영)로 자리 잡고 호흡을 맞추는 대회여서다.

사실 자매가 나란히 앉아 인터뷰를 한다는 게 쑥스러울 법도 한데, 둘 사이에는 어떤 거리낌도 없었다. 마치 하루에 한 번씩 만나는 친구 같은 느낌이 강했다. 이재영이 분위기를 주도하자 처음에는 다소 어색해하던 이다영이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둘의 성장배경보다는 배구 철학에 귀를 기울이니 흥미로운 얘기가 쏟아졌다.


-2014 인천AG 때는 두 선수 모두 고교생이었죠. 풀타임 프로 선수가 된 지금 준비과정은 무엇이 다른가요.


이다영(다영) : “나이?(웃음)”


이재영(재영) :
“4년 전에는 어려서 멋모르고 뛰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요. 무엇보다 실전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선 철저히 준비해야죠.”


다영 : “4년 전에는 그저 ‘와~신난다’라는 생각뿐이었는데, 지금은 생각이 더 많아졌어요. 무엇보다 어떻게 경기를 운영해야 할지에 대해 늘 고민하고 있죠.”


-다영 선수가 생각하는 좋은 세터의 조건은 무엇인가요.


다영 : “경기 운영도 중요하지만, 공격수가 공을 잘 때릴 수 있도록 토스하는 세터가 최고 아닐까요. 요즘 들어 절실히 느껴요. 쉽게 말해 블로킹이 한 명 있는 쪽으로 토스를 해줬는데, 상대에게 막히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더 많이 노력하고 있어요. 한마디로 토스가 정말 좋았는데, 공격수가 그 공을 못 때리진 않을 테니까요. ‘예쁜 토스’를 해줘야 그만큼 공격수들도 수월하게 때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재영 선수가 생각하는 레프트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요.


재영 : “리시브죠. 저는 레프트가 5개의 포지션(레프트·라이트·센터·세터·리베로)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리시브뿐만 아니라 공격과 수비, 연결 등 잘해야 하는 게 너무 많아요. 그 중에선 리시브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다영 : “저도 레프트에게 리시브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세터 입장에서도 공이 잘 올라오면 좋죠. 첫 번째 단계(리시브)부터 흔들리면, 두 번째(토스)도 잘 안 되니까요. 1~2단계가 잘 돼야 3번(공격)이 잘되는 게 배구예요.”

재영 : “그래서 (김)연경 언니가 세계적으로 멋진 선수죠. 최고라고 느껴요. 리시브까지 잘하는 레프트가 많지 않아요. 공격과 수비 모두 완성된 선수를 못 봤는데, 연경 언니는 둘 다 잘해요. 볼 때마다 정말 대단하다고 느끼죠.”

이재영(왼쪽)·이다영 자매가 25일 진천선수촌에서 스포츠동아와 인터뷰를 마친 뒤 환하게 웃으며 셀카를 찍었다. 진천|강산 기자 posterboy@donga.com


-해외리그도 자주 챙겨 보나요. 외국 선수 가운데 롤 모델이 있다면 누군가요.


다영 : “SNS와 동영상 사이트를 통해서 보곤 하죠. 세터다 보니 롤 모델은 다케시타 요시에(일본)예요. 국제대회 나갔을 때 부산에서 다케시타를 처음 봤는데, 환상적인 세터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확실히 다른 세터들과 다르더라고요.”


재영 : “누군가에게 ‘이탈리아 선수 중에 너와 비슷한 공격수가 한 명 더 있다. 점프력과 파워까지 비슷하다’는 말을 들었어요. 루시아 보세티였죠. VNL에서 보세티를 보고는 깜짝 놀랐어요. 기본기가 탄탄한 선수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두 선수의 배구철학이 궁금합니다.


재영 : “배구는 내가 친해지려고 다가가면 멀어지고, 멀어지려고 하면 다가오는 것 같아요. 한마디로 적정선을 넘어가면 멀어지기 때문에 어느 정도 유지하는 게 중요하죠. 고비를 하나씩 넘어가며 성장한다고 생각하는데, 모바일 메신저에도 ‘천천히, 하나씩’이라고 적어놓았어요. 천천히 하나씩 이루다 보면 더 재미있을 것 같아요.”


다영 : “맞아요. 배구는 ‘밀당(밀고 당기기)’이 심해요. 저는 세터로서 정말 꾸준히 기량을 유지하는 게 중요한데, 뭔가 됐다고 생각하면 멀어지더라고요. 그래서 1단계부터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잠깐 쉬어야지’라는 생각도 하면 안 돼요. 한결같아야 하죠.”


재영 :
“역시 사람마다 다른 것 같네요(웃음).”


-이번 AG에서 두 선수는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나요.


재영 : “4년 전에는 다쳐서 제대로 못 뛰었는데, 이번에는 코트를 밟고 신나게 뛰면서 꼭 금메달을 목에 걸고 싶어요. 무엇보다 제가 잘하고 싶어요. 4년 전에는 밖에서 지켜보기만 하다가 금메달을 땄는데, 이번에는 언니들과 함께 뛰면서 우승하고 싶어요.”


다영 : “저도 마찬가지예요. 재영이와 같은 생각이에요.”


재영 : “우리가 훈련 때 잘했던 것을 실전에서 보여주는 것만큼 중요한 게 없어요. 훈련할 때 100%의 기량이 나왔다고 해서 실전에서 다 보여줄 수는 없죠. 실전에서 80%만 보여줘도 성공이거든요.”


다영 : “감독님들께서 경기 끝나면 ‘준비한 만큼 안 나왔다’고 말씀하시는데, 그게 정답인 것 같아요.”


-배구 인생에서 궁극적인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재영 :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선수가 되고 싶어요. 우승과 MVP, 금메달 등 목표가 많지만 부끄럽지 않은 선수가 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느껴요. 2017~2018시즌에는 경기 끝나고 부끄러웠던 적이 많거든요. 그래서인지 목표가 확실히 달라졌어요.”


다영 : “그저 그런 선수가 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무엇보다 부상 없이 꾸준한 선수가 되고 싶어요.”


-두 선수의 배구인생은 어디까지 왔다고 생각하나요.


재영 : “아직 절반도 안 됐어요. 6년간 국제대회에 나가며 주전으로 뛴 적이 많지 않은데, 이번에 차해원 감독님께서 기회를 많이 주셨죠. 그만큼 잘해야 한다는 마음이 큽니다. 국제대회에서 역할이 커진 게 이번이 사실상 처음이에요.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많지 않았으니 아직 제 배구인생은 절반도 안 왔죠.”


다영 : “10% 정도? 저는 이제 시작이에요. 풀타임도 2017~2018시즌에 처음 소화했으니까요. 배워야 할 게 정말 많아요.”


재영 : “맞아요. 다영이는 올해 정말 잘해야 해요(웃음).”

인터뷰를 마친 뒤 둘에게 사진 촬영을 요청하자 기자의 휴대전화를 들고는 셀카(셀프 카메라)를 찍었다. “새로운 컨셉 아니냐”는 말에선 천진난만함까지 묻어났다.

진천|강산 기자 posterb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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