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동열 감독. 스포츠동아DB
AG의 여진에 홍역을 앓고 있는 지금과 달리 10년 전 한국야구는 100년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유산 한 가지를 내놓았다. 2008년 8월 23일이다. 그해 베이징올림픽 야구 결승전이 벌어진 날이다. 김경문 감독이 이끈 우리 대표팀은 예선리그 7전승으로 준결승에 올라 숙적 일본의 콧대를 다시 한번 납작하게 만든 뒤 결승에선 쿠바와 재회했다. 9회말 1사 만루서 극적인 더블플레이로 3-2 승리를 완성한 그 순간, 한국야구는 아시아야구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을 품고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대개 무언가 기념할 일이 생기면 10주년, 20주년, 30주년 등 10년 주기로 거대한 의식을 치르곤 한다. 올림픽 금메달을 딴 그날을 잊지 않기 위해 KBO와 각 구단도 이듬해부터 매년 8월 23일을 ‘야구의 날’로 제정해 기념해오고 있다. 올해는 팬들을 초대한 나름의 성대한 세리머니를 사흘간 서울 잠실롯데월드에서 펼쳤다. 아마도 그 자리를 찾았던 팬들과 야구 관계자들 모두는 며칠 뒤부터 훨씬 더 강력해진 ‘AG 태풍’을 미처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2년 뒤 여름 일본 도쿄에선 올림픽이 개최된다. 베이징대회를 끝으로 올림픽에서 제외됐던 야구가 도쿄대회에서 부활한다. 6개국이 경쟁할 도쿄올림픽에서 한국야구가 디펜딩 챔피언의 명예를 지킬 수 있을지는 현재로선 알 길이 없다. 우선은 올림픽 예선을 겸해 내년 말 열릴 WBSC(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 프리미어 12 통과가 급선무다. 이 대회 또한 한국이 디펜딩 챔피언이다.
주로 아마추어가 출전하는 AG 금메달에 목을 매다가 올림픽 챔피언의 자긍심에 큰 생채기를 낸 한국야구다. 결자해지의 차원에서라도 뼈를 깎는 심정으로 작금의 위기를 냉철하게 수습할 의무가 우리 야구인들 모두에게 있다. 피하지 말자. 팬들이 수긍할 수 있게 행동하자. 그리고 반성을 토대로 상처받은 한국야구의 자긍심을 되찾자.
정재우 전문기자 jac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