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인터뷰] ‘AG 금빛부녀’ 여홍철-여서정, “이 느낌 그대로 올림픽까지”

입력 2018-09-21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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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게임(AG) 기계체조 금메달리스트 부녀가 한자리에 뭉쳤다. 역대 2개 AG 금메달을 목에 건 아빠 여홍철 경희대 교수(오른쪽)는 2018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에서 한국체조에 32년 만에 금빛 쾌거를 전해온 딸 여서정(왼쪽)을 향해 ‘자만하지 않고 부상 없는‘ 선수가 될 것을 주문했다. 수원실내체육관 인근의 오륜마크 조형물 앞에서 포즈를 취한 부녀의 표정이 정겹다. 수원|김종원 기자 won@donga.com

팽팽한 긴장감이 가득한 현장에서 자식의 담대한 연기에 말을 잇지 못한 아빠는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 이를 전해들은 딸도 눈물을 쏟았다. 서로에 고맙고 미안해서, 또 사랑해서….

대한민국 국가대표 ‘체조 부녀’ 여홍철(47·경희대 교수)과 여서정(16·경기체고)에게 2018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AG)은 아주 특별한 선물을 안겼다. 역대 AG에서 두 차례(1994히로시마·1998방콕) 금빛 연기를 펼친 아빠를 이어 딸도 시상대 꼭대기에 섰다.

지난달 23일 자카르타 JI엑스포홀에서 열린 기계체조 여자 도마 결승에서 1차시기 14.525점을 받았고, 2차시기 14.250점을 획득해 평균 14.387점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여자도마가 AG 정상에 선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역대 최고성적은 1978년 방콕대회 은메달(정진애)이었다. 기계체조 전체로 범위를 넓혀도 1986년 서울대회 서연희(이단평행봉), 서선앵(평균대)이 동반 금메달을 딴 이후 32년만의 쾌거였다.

여서정은 자신의 이름을 딴 기술인 ‘여서정(도마를 짚고 두 바퀴 몸을 비틀며 공중회전하기·국제체조연맹 기술점수 6.2점)’을 연마했지만 완성도가 덜하다고 판단, 잘하는 연기를 실수 없이 하는 데 집중했다. AG 승부수는 ▲ 핸드스프링 후 한 바퀴 반 비틀기 ▲ 땅 먼저 짚고 구름판 굴러 뒤로 두 바퀴 돌아 720도를 비트는 동작이었다.

‘부녀 AG 금메달리스트’ 여 교수와 여서정을 최근 수원실내체육관 인근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여서정은 ‘도마의 신’으로 불리며 온 국민의 사랑을 받은 1996애틀랜타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여 교수의 둘째 딸이다. 부녀는 인터뷰 내내 유쾌함과 활기를 잃지 않았다. 아빠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고, 딸은 미래를 긍정적으로 그려가며 담담히 다음 스텝을 이야기했다.

지난 2018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당시 여서정. 사진제공|대한체육회


● 숨 막힌 그때 그 순간


여홍철(아빠)= “솔직히 말할게. 난 ‘서정이가 큰일을 저지를 것 같다’는 믿음이 있었어. 우리 인생에 100%라는 건 없으니 확신까지는 아니지만 할 수 있다는 느낌이 오더라고. 그런데 어쩔 수 없더라. 담담히 연기를 봐야겠다 싶었는데, 많이 떨긴 했다.”


여서정(딸)= “나도 우승을 자신하지 못했어. 그냥 우승을 바라보고 달려갔을 뿐. 금메달을 확신하지도 못했고, 자신감도 없었어. 유난히 착지 동작에서 실수가 많았으니….”


아빠= “경기 당일 컨디션이 아주 중요해. 운도 있어야 하고. 국제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의 실력은 확연히 차이가 나지 않잖아.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듯 하네.”


딸= “실수만 하지 않고 싶었어. 어찌나 심장이 쿵쿵거리던지. 난 경기 전에 한숨을 크게 쉬는 편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나중에 영상을 보니까 정말 크게 숨을 내쉬더라고.”


아빠= “그랬지. 정말 긴장을 많이 하고 있더라고. 평소보다 유난히 문자 메시지를 많이 보냈잖아. 그만큼 중압감이 심했다는 거지. 앞 순번 선수가 연기할 동안 차례를 기다리며 이름이 불리기까지의 긴장감이 가장 무서웠어. 몸이 굳지 않으려면 숨을 크게 내쉬는 게 좋아.”


딸= “부담이 커졌어요. 앞으론 더 긴장할 것 같아. 부담의 이유는 달라요. AG 이전은 아빠가 여홍철이라 어려웠는데, 이제 AG 우승이라는 기대에서 자유롭지 않잖아.”

아빠= “네 마음 이해해. 그래도 체조는 정직한 운동이야. 노력하는 만큼 실력이 나오지. 국제대회는 누구나 어렵고 버거워. 올림픽 챔피언도 마음이 다르지 않아. 얼마나 털어내느냐가 관건이지. 철저히 자신의 몫이고.”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당시 여홍철.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실력자가 인정하는 실력


딸= “다시 말씀드리지만 난 착지가 너무 어렵다고요. 기술은 그럭저럭 따라가고 발전하는 걸 느끼는데 유난히 착지가 불안해요.”


아빠= “아냐, 충분히 잘하고 있어. 성장하는 단계잖아. 한 번 껍질을 깨면 아주 쉬워. 몸에 절로 밴다고 하나? 은퇴 앞두고 1년 가까이 공식 대회에 출전하지 않았는데도 원하는 동작이 나왔어. 남녀 선수의 차이가 있지만 이러한 단계까지 이르려면 시간이 필요해. 난 ‘여홍철2’ 기술을 완전히 습득하기까지 2년이 걸렸어. 다행히 서정이는 기술적인 감각이 있으니.”


딸= “아니라니까요. 착지를 완벽히 숙지했어도 실전은 연습과 달라요. 잘하던 것도 실수하고. 딱히 문제없던 동작이 말썽을 부리고. 확실히 체조는 운이 따라줘야 해요.”


아빠= “모든 면에서 네가 나보다 훨씬 나아. 아빠와 달리 운동센스, 감각을 갖췄어. 기술을 빠르게 습득하는 능력도 있지. 고등학교 시절에 난 서정이의 기술을 아예 하지 못했어.”


딸= “에이, 그건 아니지. 내가 아빠의 경기영상을 정말 많이 봤거든. 지금 환경은 많이 좋은 것 같아. 도마의 질이 완전히 다르더라고.”


아빠= “통나무에 매트 깔아놓은 정도? 지금은 탄성이 좋지.”


딸= “그렇다니까. 아빠 시절의 환경에서 그 정도 높이의 점프를 하는 걸 보면 대단해. 그냥 사람들이 막 날아다니는 게 신기하고 예뻐 보여 체조를 했는데 벌써 여기까지 왔네.”


아빠= “종종 데려간 태릉선수촌 체조장 기구에서 춤추고 놀고 그랬어. 네가 체조하고 싶다고 했을 때 반대를 했지. 그 길이 어떤 건지 정말 잘 아니까. 다만 ‘체조를 시켜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 순간이 있어. 맛난 음식을 보고 자제하는 모습. 한창 성장기에 식욕을 참는 걸 보면서 대견했어.”


딸= “결국 엄청나게 짜증과 투정을 부렸지.”


아빠= “스트레스는 쌓아두면 안되지. 혼자 끙끙거리는 것보다 한바탕 투정 부리고 털어버리는 게 옳아.”


딸= “이제 운동을 그만둘 수도 없지. 이대로 계속 가야지.”

아빠= “승리의 맛도 느꼈지. 그게 굉장히 크다. 자만하지만 않으면 훨씬 좋은 선수가 될 수 있을 거야.”

세상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아빠와 사랑스러운 딸이 손을 꼭 잡은 채 수원실내체육관 주변을 산책하고 있다. 2018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딸 여서정은 아빠 여홍철 못지않은 훌륭한 선수가 될 것을 약속했다. 수원|김종원 기자 won@donga.com


● 올림픽 & 한국체조


딸= “쉴 틈도 없어. 10월에 당장 전국체육대회(전북 일원)에 (카타르 도하) 세계선수권대회가 있잖아. AG보다 훨씬 규모가 큰 무대인데, 관심이 덜한 것이 아쉽긴 해요.”


아빠= “유럽은 물론, 미국 중국 일본도 체조인기가 높지. 특히 일본은 체조 붐이 대단해. 어릴 때부터 심판양성 코스가 있으니. 기초종목을 크게 성장시키고 있어. 우리도 서서히 그 길로 향해야 할 텐데.”


딸=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 훈련하고 있어요.”


아빠= “세계선수권도 있지만 올림픽도 생각해야지. 냉정히 볼 때 낙관할 수는 없어. ‘여서정’ 기술을 완벽히 하면 동메달권은 가능할 텐데, 그 이상은 더 노력해야지. 반 바퀴 이상은 더 비틀어야 해.”


딸= “서두르지 않아요. 채점기준도 점점 높아지고 있고. 아빠 말대로 급하지 않게 한 걸음씩 발전해야지.”


아빠= “2020도쿄올림픽까지 남은 2년 동안 뭔가를 새롭게 만드는 건 쉽지 않아. 그래도 여자 기계체조에서 올림픽 파이널에 오를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한 가치지.”


딸= “도마는 기술을 끌어올리는 게 쉽지 않잖아요. 아빠가 1994년부터 시도한 ‘여2’ 기술이 여전히 통하고 있는데.”


아빠= “서정이가 2년 후에는 더 성장할 테고, 힘과 근력이 지금과 달라질 거야. 기술도 몸에 익숙해질 거야. 더욱이 도마는 착지 동작에서 점수가 많이 오가는 변수도 있어.”


딸= “언젠가 나도 아빠 못지않게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겠죠? 단순한 메달 개수보다 배울 점이 많았던 선수로 기억되고 싶어요.”


아빠= “그럼, 당연히 그럴 수 있어. 다만 유일한 바람이 있다면 서정이가 은퇴까지 큰 부상을 입지 않고 선수생활을 하는 거란다.”


딸= “AG 이후 하루 밖에 쉬지 못했는데, 피로가 누적된 느낌은 있어요. 계속 국내외 대회가 있으니 혼자 쉴 수도 없고.”


아빠= “항상 부상을 조심해야 해. 몸이 피곤할수록 더욱 더. 부상은 예고 없이 찾아온단다. 그래도 스스로를 잘 컨트롤하니까, 아빠는 우리 딸을 믿는다.”

수원|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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