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가 참 모질었다는 박결 “이제야 웃어주네요”

입력 2018-11-02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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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결은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인 2014인천아시안게임에서 개인전 금메달, 단체전 은메달로 스타 탄생을 알렸다. 수석으로 프로에 데뷔했지만 벽은 높았다. 박결은 지난달 28일 SK네트웍스·서울경제 레이디스 클래식을 통해 비로소 KLPGA 투어 첫 우승을 맛봤다. 사진은 서울 광화문 일민미술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박결.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박결은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인 2014인천아시안게임에서 개인전 금메달, 단체전 은메달로 스타 탄생을 알렸다. 수석으로 프로에 데뷔했지만 벽은 높았다. 박결은 지난달 28일 SK네트웍스·서울경제 레이디스 클래식을 통해 비로소 KLPGA 투어 첫 우승을 맛봤다. 사진은 서울 광화문 일민미술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박결.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 2014년 9월 28일 인천 서구 드림파크 컨트리클럽. 시상대 꼭대기에 올라선 18살 소녀는 그 순간이 마냥 좋았다. 펑펑 쏟아낼 줄만 알았던 눈물은 채 흘릴 틈이 없었다. 그저 우승의 기분을 만끽하며 꿈만 같던 하루를 보냈다.

# 2018년 10월 28일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핀크스 골프클럽. 숙녀로 변신한 22살 프로골퍼는 다시 우승의 순간과 마주했다. 본인조차 기대하지 않았던 8타차 역전극. 그사이 골프와 인생의 쓴맛을 느낀 주인공은 4년 전 흘리지 못한 눈물을 모두 쏟아내고야 말았다.

프로 데뷔 후 ‘만년 유망주’라는 꼬리표를 떼어내지 못하던 박결(22·삼일제약)이 지난달 28일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SK네트웍스·서울경제 레이디스 클래식을 통해 마침내 우승 트로피에 처음 입을 맞췄다. 우승 이틀 뒤, 감격스러운 표정이 그대로 남아있는 주인공을 스포츠동아에서 만났다. 프로 입문 4년 만에 정상을 밟은 박결은 “우승을 하고 나니 감사 인사를 전할 곳이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 몸은 힘들지만 그래도 마음은 가볍다”며 활짝 웃었다. 그리고는 “사실 지난 몇 년간 골프가 내게만 너무 모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수차례 들었다. 그랬던 골프가 드디어 내게 웃어보였다”면서 힘들었던 지난날을 털어놓았다.

지난달 28일 제주 서귀포에 위치한 핀크스GC에서 열린 SK네트웍스 서울경제 레이디스 클래식 FR에서 박결이 우승 트로피에 눈물을 훔치고 있다. 사진제공|KLPGA

지난달 28일 제주 서귀포에 위치한 핀크스GC에서 열린 SK네트웍스 서울경제 레이디스 클래식 FR에서 박결이 우승 트로피에 눈물을 훔치고 있다. 사진제공|KLPGA


● “함께 고생한 언니들이 먼저 울더라고요”


-첫 우승이라는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고 들었다.

“축하 전화도 많이 왔고 문자도 많이 받았다. 틈날 때마다 답장도 하고 감사 전화도 드렸다. 또 직접 찾아가 인사를 하기도 했다. 다행히 이달 첫째 주 대회가 없어서 시간을 낼 수 있었다. 우승 직후 정말 바쁜 이틀을 보냈다.”


-가장 기뻐한 사람은 누구였나.

“역시 부모님이다. 어머니는 우승하던 날 대회장에 계셨는데 이틀이 지나고도 ‘아직 우승이 믿기지 않는다’고 하신다(웃음). 우승을 TV로 지켜보신 아버지는 ‘딸이 해낼 줄 알았다’며 기뻐하셨다.”


-연습 그린에서 우승 소식을 접했다. 처음에는 기뻐하다가 나중에 눈물을 흘리더라.

“사실 눈물이 날 줄은 몰랐다. 그저 기뻐하던 찰나에 함께 고생했던 언니들이 먼저 울면서 나까지 눈물을 흘리게 됐다.”

-당시 김지현(27·한화큐셀)과 정연주(26·SBI저축은행) 등 친한 선배들이 곁에 있었다.

“모두 같은 코치님 아래서 골프를 배운 언니들이다. 3년 가까이 함께하면서 정도 많이 들고 우애도 쌓았다. 합동 동계훈련 멤버이기도 하다. 모두 고생한 기억이 떠올랐는지 펑펑 울었다. (김)지현 언니는 ‘네가 내 첫 우승(2017년 KG·이데일리 레이디스 오픈) 때 함께했는데 나도 네 첫 우승을 함께할 수 있어 정말 기쁘다’며 축하해줬다.”

프로골퍼 박결.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프로골퍼 박결.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 “지난해부터는 마음을 편히 먹었죠”

박결의 이름이 세상 밖으로 나온 계기는 2014인천아시안게임이었다. 당시 동일전자정보고 3학년이던 박결은 개인전 금메달과 단체전 은메달을 목에 걸고 새로운 스타 탄생을 알렸다. 이어 KLPGA 투어 시드전까지 수석으로 통과하며 이듬해 프로 무대에 당차게 뛰어들었다. 그러나 우승과 인연이 닿지 않으면서 만년 유망주라는 달갑지 않은 꼬리표가 박결을 따라다녔다.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프로에 데뷔했지만 성적이 신통치 않았다.

“부담감이 컸다. 주위에서 너무나 많은 기대를 했다. 특히 1~2년차 때는 부담감이 말도 못했다. 마냥 좋았던 2014인천아시안게임과 프로 무대는 또 다르더라.”


-수석으로 데뷔한 프로 무대가 쉽게 보이지는 않았을까.

“그렇지는 않았다. 사실 내가 데뷔할 때 목표가 우승이 아니었다. 컷 통과였다. 그런데 오지현(22·KB금융그룹), 박지영(22·CJ오쇼핑), 지한솔(22·동부건설) 등 데뷔 동기들이 하나둘 우승을 차지하면서 마음을 점점 졸이게 되더라. 반면 나는 매번 준우승에 그치고…. 이러한 마음으로 2년을 보내다가 지난해부터 자세를 고쳐 잡았다. 부담감을 내려놓고 가볍게 임해보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지난달 28일 제주 서귀포에 위치한 핀크스GC에서 열린 SK네트웍스 서울경제 레이디스 클래식 FR에서 박결이 우승확정 후 눈물을 훔치고 있다. 사진제공|KLPGA

지난달 28일 제주 서귀포에 위치한 핀크스GC에서 열린 SK네트웍스 서울경제 레이디스 클래식 FR에서 박결이 우승확정 후 눈물을 훔치고 있다. 사진제공|KLPGA


● “골프가 내게만 모질더라고요”

-준우승만 6차례를 기록하면서 승부 근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뒤따랐다.


“앞서 마음을 편히 먹었다고 이야기했는데 부담감을 내려놓는 것과 승부욕은 다르다. 승부 근성이 떨어지는 선수는 운동을 그만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러한 말을 들을 때마다 많이 속상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쉽지 않은 시기를 보냈다.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였나.

“올해 8~9월이 참 힘들었다. 올 시즌 개막 직후 등 부상을 겪으면서 기복이 심했다. 컷 탈락을 이렇게 많이 한 적이 없었다. 게다가 주요대회에서 기권하게 되면서 없던 조바심까지 생겼다.”


-이번 우승으로 마음의 짐은 조금 줄어들었나.

“그동안 골프가 내게만 참 모질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운동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수도 없이 했다. 솔직히 말하면 컷 탈락을 할 때면 그렇게 골프가 싫더라.(웃음) 돌이켜보니 골프가 내게 웃어주기까지 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이제 우승 횟수에 ‘1’이 새겨졌다. 앞으로 어떤 선수가 되고 싶은가.

“어렵게 우승했지만 앞으로 내 골프 인생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가늘고 길게 가는 선수와 짧고 굵게 마감하는 선수,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후자를 택하겠다. 빨리 정상을 찍고 남은 현역 생활을 편하게 하고 싶다. 이유는 하나다. 이렇게 어려운 골프를 오래할 자신이 없어서다.(웃음)”

● 박결은?


▲ 생년월일=1996년 1월 9일(전남 순천) ▲ 신체 조건=키 167㎝ ▲ 출신교=순천북초~예당중~동일전자정보고~세종대 ▲ 후원사=삼일제약 ▲ 소속사=리한스포츠 ▲ 프로 데뷔=2015년 KLPGA 입회 ▲ 입상 경력=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개인전 금메달·단체전 은메달, 2015년 NH투자증권 레이디스 챔피언십 준우승·하이트진로 챔피언십 준우승, 2016년 초정탄산수 용평리조트 오픈 준우승, 2017년 삼천리 투게더 오픈 준우승, 2018년 효성 챔피언십 준우승·에쓰오일 챔피언십 준우승·SK네트웍스-서울경제 레이디스 클래식 우승

고봉준 기자 shuto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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