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덕표’ 지옥의 사이드펑고, 기자가 직접 받아보니…

입력 2018-11-26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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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지옥의 펑고다!’ 마무리캠프를 진행 중인 한화 이글스 한용덕 감독이 지난 21일 일본 미야자키 기요타케운동공원 내 제2구장에서 본지 강산 기자에게 펑고를 때렸다. 강산 기자는 평소 뛰어난 운동 신경을 자부했지만 한 감독의 펑고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결정적인 순간 발생하는 실책은 팬들의 속을 태운다. 그러나 그 순간 가장 힘든 사람은 실책을 저지른 선수 본인일 것이다. 엄청난 비난을 받는 것도 모자라 팀을 위기에 빠트렸다는 자책감도 떠안아야 한다. 혹자는 “나도 쉽게 잡을 수 있는 타구를 놓쳤다”고 말한다. 정말 그럴까? 궁금했다. 25일 끝난 한화 이글스의 일본 미야자키 마무리캠프 기간에 ‘지옥의 펑고’를 직접 받아보기로 했다.

기자는 체력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고교 시절 미식축구 팀에서 뛰며 러닝 훈련을 즐겼고, 대학 시절에는 야구동아리에서 활동했다. 포지션도 내야수였다. 따라서 펑고 훈련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기자가 선택한 훈련 프로그램은 사이드 펑고. 풋워크를 다지고 순발력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진행하는 훈련인데, 투수들이 좌우를 오가며 타구 20개를 잡으면 한 세트가 끝난다. 방향전환과 풋워크, 순발력과 글러브 핸들링을 모두 동반해야 효과적으로 마칠 수 있는 훈련이다. 한화 한용덕 감독은 지난 21일 기자의 요청에 흔쾌히 “OK”를 외치며 펑고 배트를 집어 들었다. 운동복을 입고, 글러브까지 착용하니 점점 의욕이 생겼다.

본지 강산 기자가 지난 21일 한화 이글스의 마무리캠프지인 일본 미야자키 기요타케운동공원 내 제2구장에서 한용덕 감독의 펑고를 잡기 위해 달려가고 있다.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 순조로운 출발, 그러나…

“몸 풀기로 정면 타구부터 하나 갑시다.” 빠르지 않은 타구에 글러브를 댔으나 공은 보기 좋게 가랑이 사이로 빠져나갔다. 손쉽게 잡힐 듯했던 타구가 글러브를 외면하니 시쳇말로 ‘멘붕(멘탈붕괴)’에 빠졌다. “글러브를 좀 더 세워서 잡으라”는 한 감독의 조언이 이어졌다.

“어이!” 기합 소리와 함께 본격적으로 사이드 펑고가 시작됐다. 타구 10개를 잡는 조건이었다. 첫 세 개의 타구를 문제없이 잡아냈다. 엄청난 운동량이 필요했지만, 크게 힘들진 않았다. 다이빙캐치를 시도하자 “투지가 좋다”는 칭찬도 나왔다. 훈련을 마친 선수들도 흥미롭게 이 장면을 바라봤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준비운동을 완벽하게 하지 않은 탓에 10개가 넘어가자 점점 다리가 풀렸다. 타구를 글러브에 넣기는커녕 아예 따라가지도 못했다. 수비의 기본이라는, 정면에서 타구를 잡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글러브에 공을 맞히기라도 하면 다행이었다. “아니, 그정도 하고 힘들면 어떻게 하느냐.” 한 감독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간신히 몸을 일으키고 타구를 글러브에 넣었다.

본지 강산 기자가 지난 21일 한화 이글스의 마무리캠프지인 일본 미야자키 기요타케운동공원 내 제2구장에서 한용덕 감독의 펑고를 잡다가 넘어지고 있다.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 산소부족 현상, 야구를 쉽게 보지 말라

다시 기합을 넣고 타구를 쫓았다. 그러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한 감독은 “10개 더”를 외쳤다. “목소리가 작다”는 말에 세 차례나 기합을 넣고 훈련을 재개했다. 그러나 결과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급기야 타구가 아닌 한 감독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선수들의 기본 훈련 매뉴얼인 20개의 타구를 글러브에 넣기는커녕, 그만큼을 쫓기만 하다가 훈련을 끝냈다. 확실히 깨달은 점은 ‘누구나 잡을 수 있는 쉬운 타구’는 단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예상치 못한 어지럼증이었다. 제대로 걷기도 쉽지 않아 잠시 벤치에 누워있어야 했다. 한화 배민규 트레이닝코치는 “산소가 부족하면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다. 물 많이 마시고 일단 쉬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선수들이 엄청난 강도의 수비훈련을 마친 뒤 곧바로 그라운드에 누워서 쉬는 이유를 깨달았다.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포수 지성준은 기자를 가리키며 “포수 훈련 한번 해야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엄청난 풋워크를 필요로 하는 강인권 배터리코치의 훈련은 선수들에게도 공포의 대상이다. 지성준은 “일단 한번 해보면 안다”고 웃으며 말했다.

본지 강산 기자(오른쪽)가 지난 21일 한화 이글스 마무리캠프지인 일본 미야자키 기요타케운동공원 내 제2구장에서 사이드 펑고 훈련을 마친 뒤 한용덕 감독에게 조언을 듣고 있다.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 기본의 기본

투수들에게 사이드 펑고 훈련은 공포의 대상이다. 좌우로 향하는 빠른 땅볼 타구를 잡기 위해선 엄청난 집중력과 순발력이 필요하다. 투수들은 훈련 때도 실전을 방불케 하는 강한 타구와 마주한다. 짧은 거리를 움직여야 하니 체력소모도 심하다. 기자는 다소 먼 거리에서, 평범한 속도의 타구로 훈련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완벽하게 소화하지 못한 것이다. 한 감독은 “기본의 기본도 안 되는 강도였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 “허벅지는 충분히 두꺼운데, 체력을 더 키우고 와야겠다”고 뼈 있는 한마디를 던졌다.

강훈련(?)의 여파는 다음날까지 이어졌다. 허벅지 근육통이 좀처럼 가시질 않았다. 한 감독은 “아마 허벅지 부위가 가장 아플 것”이라고 했다. 오랜 경험에서 묻어난 조언이었다. 게다가 준비운동조차 제대로 못 하고 훈련에 들어갔으니 온 몸이 쑤시는 게 당연했다. 모 코치는 “왜 그걸(펑고) 받으려고 했냐”고 핀잔을 줬다.

이번 체험을 통해 가장 크게 깨달은 점은 선수들의 고충이었다. 실전에 나서기 위해 상상을 초월하는 강훈련을 소화한다는 점과 일부러 실책을 저지르는 선수는 없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번 체험에서도 첫 번째 타구는 ‘당연히’ 글러브에 들어왔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크게 미치지 못했다. 이는 선수들이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타구의 속도와 방향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함을 의미한다. ‘변수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타구를 향해 대시하라’는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훈련을 마친 뒤 한 감독에게 다가가 말했다. “앞으로 실책을 저지르는 선수를 비난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겠다. 그리고 선수들의 훈련이 얼마나 힘든지 절실히 느꼈다.”

미야자키(일본)|강산 기자 posterb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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