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 개봉한 마블스튜디오의 영화 ‘블랙 팬서’의 한 장면. 슈퍼히어로물로는 처음으로 2월24일 열리는 제91회 아카데미상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 사진제공|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히어로 시리즈가 전 세계 관객과 꾸준하게 소통하는 원천이 시대의 변화를 적극 담아내려는 시도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증명됐다. 마블스튜디오의 영화 ‘블랙 팬서’가 슈퍼히어로 시리즈 가운데 처음으로 미국 아카데미상 작품상 후보에 오르면서다.
아카데미상을 주관하는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가 2월24일 시상식에 앞서 22일 제91회 아카데미상 시상식 최종후보작을 선정해 발표했다. 가장 주목받는 부문인 작품상에 이름을 올린 ‘블랙 팬서’는 ‘로마’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등 화제작과 더불어 최종 후보 8편에 포함됐다.
‘블랙 팬서’는 마블은 물론 할리우드가 제작에 더욱 속도를 내는 슈퍼히어로 영화로는 처음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가 됐다. 2008년 마블이 이른바 마블유니버스시네마틱을 구축한 이후 그 세계관 아래서 꾸준히 작품을 내놓은 가운데 거둔 가장 의미 있는 성과다. 동시에 당대 시대 분위기를 놓치지 않으면서 판타지 히어로물을 기획해온 시도가 이룬 결실로도 풀이된다.
‘블랙 팬서’는 흑인영웅이 주인공인 영화다. 그간 히어로물에서 간간히 등장하긴 했지만 메인 캐릭터로 흑인영웅을 내세운 작품은 처음. 영화는 단순히 인류를 공격하는 악에 맞선 히어로의 활약을 그리는 데만 그치지 않고, 미국의 흑인해방을 이끈 운동가인 맬컴엑스의 주창을 고스란히 흡수해 영화에 녹여 넣었다.
흑인의 정체성에 주목한 이야기를 메시지로 녹인 시도는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블랙 팬서’는 마블의 시리즈답게 국내서도 539만 관객 동원하는 등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지만 무엇보다 북미 지역에서의 반응은 단연 ‘폭발적’으로 나타났다. 불과 두 달 차이로 개봉한 마블의 대표 시리즈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까지 누르고 2018년 기준 미국에서 가장 높은 흥행 수익을 거둔 1위 영화에 당당히 올랐다. 미국 내 흑인 관객의 집중적인 선택이 이를 가능케 했다는 분석이 줄곧 따랐다.
미국의 주류에 줄곧 시선을 맞추던 할리우드의 변화는 ‘블랙 팬서’를 통해 본격적으로 촉발되는 분위기다. 흥행 성과 뿐 아니라 이번 아카데미상 작품상 후보 진출을 통해 작품성까지 인정받으면서 향후 슈퍼히어로 시리즈 전반에 상당한 변화를 이끌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실제 할리우드 히어로물은 최근 시선을 넓혀 ‘다양성’을 흡수하려는 시도를 벌이고 있기도 하다. 아시안 영웅을 그리는 마블의 새 시리즈 ‘샹치’가 제작에 돌입한 사실 역시 의미심장하다.
이에 더해 상대적으로 차별받아온, 할리우드 주류 영화 안에서의 여성 캐릭터를 좀 더 강조한 작품들도 속속 등장한다. 이를 주도하는 영화 역시 히어로물이다. 마블이 내놓는 첫 여성히어로 영화 ‘캡틴 마블’이 3월7일 개봉을 확정, 관객의 평가를 기다리고 있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