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 공소남닷컴] 손일 작가 “아름다운 한글 선을 활용해 작업했죠”

입력 2019-02-22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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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일 작가와 닥으로 표현한 그의 작품 ‘보내지 못한 편지’. 윤종혁 PD yoon@donga.com

■ 자음과 모음을 예술로 만드는 작가 손일

자연 재료 ‘닥’과 훈민정음 컬래버레이션


올 베니스 비엔날레에 대형작품 4점 전시

서울 강남의 병원 문을 열고 들어서니 훤칠한 얼굴의 중년신사가 넉넉한 미소로 기자를 맞이했다. 원장 선생님이신가 싶었는데 아니다. 바로 인터뷰의 주인공, 손일 작가(49).

경남 밀양 얼음골에 있는 작업실에서 인터뷰를 위해 당일 상경했단다. 환자 대기실 소파에 앉아 주변을 돌아보니 곳곳에 미술작품이 걸려 있다. 모두 손일 작가의 작품들이다.

“원장님(김준영)께서 갤러리 공간보다 많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전시장소로 병원이 어떻겠느냐고 하셔서 ….”

손 작가가 제안을 받아들여 이색적인 ‘병원 전시’가 성사됐다. 손 작가의 작품 25점이 1월부터 마음편한유외과에서 전시 중. 요즘 트렌드인 아티스트와 기업 간의 컬래버레이션이다.

손 작가는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모티브로 문자를 부조화해 소통에 대한 사유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비석, 비문의 기록성에 관심을 두고 있던 중 2004년 간송미술관에서 낡은 책 한 권을 만나게 됐다. 그것이 바로 국보로 지정된 훈민정음이었다.”

훈민정음 목판원본이 유실된 것을 안타까워하다 한글을 예술적으로 재현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손 작가는 “유럽에서 시작된 서양화 기법의 재료가 유화물감이라면 내가 선택한 재료는 굉장히 자연주의적인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굉장히 자연주의적인 재료’는 닥이다. 한지를 만들 때 사용되는 바로 그 닥나무의 닥.

닥이란 소재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문자를 기록하는 것이 종이이고, 그중에서도 한글은 한지가 제격이니까.

손일 작가. 윤종혁 PD yoon@donga.com


닥을 소재로 활용하는 작가들이 없지는 않다. 대부분은 형태를 만들고 그 위에 한지를 부어서 건조시킨 뒤 이탈시키는 방식을 선호한다. 빠르고 편하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손 작가는 직조방식으로 작업을 한다. 화면에 전체적인 구성을 하고, 그 위에 반건조 상태의 한지를 얇게 포를 떠 일일이 붙이는 방식이다. 고도의 집중력과 인내심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이런 식의 작업방식을 고수하는 이유에 대해 손 작가는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때문”이라고 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닥의 섬유질이 얼기설기 얽혀져 있는 모양과 느낌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손 작가의 작품들은 올해 세계적인 미술제인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5월11일부터 11월24일까지 팔라조 벰보 전시장에 걸린다.

“2∼3미터 가량 되는 대형작업 4점 정도가 전시된다. 참가하는 작가들마다 혼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전 세계 작가들이 소개되는 자리인 만큼 나 역시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2년 전 36만 명이 다녀갔고, 올해엔 50만 명이 방문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베니스 비엔날레. 잃어버린 목판본 대신 닥을 입고 되살아난 훈민정음이 세계 미술 팬들의 눈과 마음을 온통 뒤흔들어주었으면 좋겠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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