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기 때문일까.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부터 두 사람은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루나는 신영숙을 보자마자 환호하며 달려왔고 신영숙은 그런 루나를 부둥켜안았다. 자리에 앉아 한참 서로의 안부를 묻곤 인터뷰를 시작했다. 절친한 친구를 만나도 이렇게 반가울 순 없을 것이다.
<이하 신영숙‧루나 인터뷰 일문일답>
Q. 우선 ‘맘마미아!’에 캐스팅 되신 소감부터 말씀해주세요.
루나(소피 역) : ‘맘마미아!’는 제가 10년간 기다린 작품이에요. 어머니가 ‘아바’(ABBA)를 좋아하셔서 영화를 100번은 넘게 봤죠. 늘 보면서 언젠간 ‘소피’를 꼭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이번 캐스팅 경쟁률이 250대 1이었잖아요. 오디션을 보던 중 ‘아 이건 안 되면 속상하고 합격을 해도 걱정이겠다’라고 싶을 정도로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피의 연기, 노래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더라고요. 연습 중 가장 힘든 연습으로 손꼽을 정도예요. 첫 공연 때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들어갔어요. 엄청 긴장되더라고요.
신영숙(도나 역) : 사람들이 “‘맘마미아!’하면 즐겁고 편하지?”라고 하는데 오해예요. 그동안 제가 맡았던 역 중에 제일 힘든 게 ‘도나’예요. 일단 도나와 소피의 분량이 정말 많고 이 모녀의 깊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게 쉽지 않아요. 3년 전에 ‘도나’를 처음 맡았을 때는 할 게 너무 많으니까 매일 울면서 연습했어요. 지금은 저도 많이 성장했고 여유도 생겨서 좀 괜찮아요.
Q. ‘맘마미아!’ 연습은 고되군요. 관객 입장에서는 사실 그렇게 보이지 않아요. 신나는 넘버에 댄스에 하는 배우들도 흥이 넘칠 거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보이는 게 다가 아니었네요?
신영숙 : 정말 힘들어요. 장면 하나에도 지켜야 할 동작이 참 많거든요. ‘댄싱퀸’을 부르는 장면에서도 마이크를 잡는 손도 다 정해져 있고 심지어 팔 동작의 각도까지 다 정해져 있어요. 짧은 시간에 해내야 하는 동작이 많아 울고 싶은 심정이죠. 전 예전에 동작이 틀릴까봐 공연 전에 속을 다 게워냈을 정도로 긴장을 했어요. 그렇지만 연습을 통해 완벽하게, 군더더기 없이 해냈을 때 너무 좋아요.
공연이 아닌 날에는 관객석에 앉아서 볼 때가 있는데요. 보는 제가 더 긴장돼요. 저 위에서 얼마나 고생하고 있을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요. 의자에 앉아있는데 기가 다 빠졌어요. ‘차라리 내가 공연을 하고 말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죠. 제가 루나 공연도 봤는데요. 진짜 내 딸이 무대에 선 것처럼 초조하더라고요. 제 가족들도 ‘맘마미아!’는 잘 못 보러 오세요. 제가 너무 고생하는 걸 아니까 못 보러 가겠다고 하시더라고요.
루나 : 마음은 잘 하고 싶은데 몸이 안 따라줬거든요. 그럴 때면 얼마나 속상한지 몰라요. 일단 제가 안 나오는 장면이 거의 없고. (웃음) 연기할 때 적정선을 찾기가 정말 힘들었어요. 제가 맡았던 인물 중 가장 밝은 역할인데 너무 밝거나 진지해서는 안 됐거든요. 두 시간 반 동안 사랑스럽고도 눈물 나는 모녀의 연기를 자연스럽게 보여드리는 게 중요해서 울면서 기량을 갈고 닦았어요.
Q. 두 사람은 이미 ‘레베카’와 ‘라스트 키스’에서 만난 적이 있죠. ‘레베카’에서는 두 사람이 적대 관계라고 할 정도였죠. ‘맘마미아!’에서 모녀로 만나니 어떤가요?
신영숙 : 루나는 에너지가 너무 좋아요. 성격도 긍정적이고 생각이 열려있는 배우라서 습득하는 것도 빠르고요. 세 작품을 같이 했던 터라 친밀한 상황에서 내 딸 연기를 하니 감정적으로 도움을 많이 받고 있어요. 연습할 때 저희끼리 “루나는 진짜 섬에서 뛰어다니며 지낼 것 같다”고 할 정도로 ‘소피’의 모습에 흡사해요. 노래는 워낙 잘하니까. 같이 하면 저도 행복해져요.
루나 : 전 언니한테 의지를 많이 하죠. ‘엑스칼리버’ 공연 중임에도 ‘맘마미아!’ 연습을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언제쯤 언니처럼 공연할까’라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어요. 제가 아무리 힘들어도 내색할 수가 없을 만큼 연습에 집중하시니 존경하는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또 전작을 보면 캐릭터가 강한 역할을 주로 하셨는데 ‘맘마미아!’에서는 드라마 요소가 강한 도나를 하잖아요. 강인해보이지만 또 연약한 도나의 모습을 연기하는 언니를 보면서 ‘천상 배우’라는 것을 다시금 느껴요.
Q. 살고 있는 나라나 방식은 달라도 ‘모녀’라는 소재는 어딜 가나 공감대가 있는 것 같아요. ‘맘마미아!’가 사랑 받는 이유 중 하나일 것 같아요. 두 분은 역할을 맡으시면서 어느 부분에서 공감이 많이 되던가요.
루나 : 소피는 저랑 참 많이 닮았어요. 극 중에서 소피는 진짜 아버지가 누구일지 궁금해 하면서 세 남자들에게 편지를 보내잖아요. 궁금해 하면 무조건 해야 하는 엉뚱한 면을 비롯해서 도전적이고 매사에 긍정적인 성격이 저랑 닮아서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신영숙 : 아무래도 모녀의 이야기니까 연기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든 감정이 올라올 때가 있어요. 모순적으로 저도 모르게 오는 그 감정, 진실한 감정이 찾아올 때는 굳이 연기하지 않아도 되기도 해요. 이게 3년 전의 제가 표현했던 도나와 다른 감정이더라고요. 그래서 기회가 찾아와 몇 년 뒤에 도나를 다시 할 수 있다면 또 다른 엄마 ‘도나’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돼요.
Q. ‘맘마미아!’는 커튼콜이 하이라이트이기도 해요. 그 때는 객석도 들썩들썩하죠.
신영숙 : 그 희열 때문에 ‘맘마미아!’를 하는 걸지도 몰라요. 세 곡을 연달아 불러서 힘들긴 하지만 ‘이 작품 하길 잘했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관객석에서 보내는 에너지가 어마어마해요. 공연 중에도 신이 나서 엉덩이를 들썩거리시는 분들이 보이긴 해요. 그러다 커튼콜 때 흥을 폭발하시는 거죠. 저희도 신이 나요.
루나 : 그 때는 두 시간을 힘겹게 끌어왔다는 생각이 ‘뿅’하고 사라져요. 어디서 에너지가 그렇게 생기는지.
Q. 그 만큼 그룹 ‘아바’ 노래의 힘이 느껴지기도 해요.
루나 : 어머니가 ‘아바’를 정말 좋아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그 시절을 보내진 않았지만 듣기만 해도 익숙한 넘버가 많았죠. 원곡이 워낙 세련되고 보컬의 개성이 강하잖아요.제가 가수이다 보니 이걸 따라하려는 성향이 생기더라고요. 그런데 뮤지컬에선 소피로서 새롭게 불러야 해서 적절히 섞어서 부르고 있어요.
신영숙 : 갑자기 조용필 선생님 콘서트 때가 생각나요. 제가 조용필 선생님 노래를 찾아서 들을 만큼 팬은 아니었는데 콘서트에서 선생님이 부르시는 노래를 다 알겠더라고요. 얼마나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였다는 걸 그 때 알게 됐죠. ‘아바’도 그런 것 같아요. 게다가 가사가 얼마나 독특해요. ‘엄마가 알고 있니?’, ‘나 지금 담배 끊었어’ 라는 등 친숙하면서도 재미있는 가사가 있어 세대와 나라를 초월하는 것 같아요. 노래를 할 때마다 감탄하는 것 같아요.
Q. 루나는 세월이 더 흘러 도나를 할 수 있는 나이가 된다면, 연기할 생각이 있나요?
루나 : 당연하죠. 저 역시 나중에 도나 같은 멋진 엄마가 되고 싶기도 하고 실제로 기회가 찾아온다면 뺏길 수 없어요. ‘도나’를 연기할 수 있다면 큰 영광일 거예요.
신영숙 : 그렇게 된다면 아마 루나가 ‘맘마미아!’ 최초로 ‘소피’와 ‘도나’를 한 배우가 되지 않을까요? 저는 루나가 계속 뮤지컬을 했으면 좋겠어요. 여전히 ‘아이돌’이라는 편견의 시선이 있지만 유명세로만 역할을 맡을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수십 회의 라이브 공연이 가능한 사람이어야 할 수 있죠. 그런 면에서 루나는 다재다능하고 늘 성장하고 있으니까 할 거라 믿어요. 할 수 있지?
루나 : 꼭! ‘맘마미아!’로 경력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 알겠더라고요. 영숙 언니 같은 분만 봐도 ‘경험’의 소중함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느꼈어요. 전 여전히 부족하고 갈 길이 먼 사람이더라고요. 오프닝과 마지막에 부르는 ‘아이 해브 어 드림’(I Have a Dream)처럼 새로운 도전을 잘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신영숙 : 모든 배우들이 ‘믿는다면 이뤄진다’는 이 가사를 주문처럼 외우고 있어요. 관객 분들도 ‘맘마미아!’를 보시고 큰 용기와 힘을 얻으셨으면 좋겠어요.
글 ·사진|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