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최고의 자리에서 은퇴 선언’ 두산 배영수의 진심

입력 2019-10-29 19: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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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배영수. 스포츠동아DB

“딸이 ‘아빠, 이제 놀아줄 수 있지?’라고 하네.”

29일 은퇴 소식이 전해진 뒤 수화기 너머 들려온 배영수(39)의 목소리는 어둡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시리즈(KS) 4차전에서 김태형 감독님이 일부러 선을 넘으신 것 같다”고 농담을 던질 정도로 여유로웠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한 편안함마저 느껴졌다.

현역 최다승 투수가 떠난다. 2000년 삼성 라이온즈에서 프로에 첫발을 내디딘 뒤 현역 최다인 138승(122패)을 거둔 배영수는 대구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자랐고, 연고지 팀인 삼성 유니폼을 입고 ‘푸른 피의 에이스’로 불렸다. 2015시즌부터 2018시즌까지 한화 이글스, 2019시즌 두산까지 팀을 옮기면서도 스스로 살아남는 방법을 연구하며 후배 선수들의 귀감이 됐다. 선수시절 막판 철저한 몸 관리와 노력이 없었다면, KS 헹가래 투수가 되며 명예롭게 은퇴하는 그림은 없었을 것이다. 11차례 KS 무대에서 8차례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린 비결이기도 하다. “20년 동안 정말 열심히 했다”는 배영수의 말이 허언이 아닌 이유다. 김 감독은 “배영수가 마지막으로 던질 때 그림이 굉장히 좋았다”고 기뻐했다.

배영수는 KS가 끝나기 전 일찌감치 김 감독으로부터 코치 제안을 받았다. 플레잉코치라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명예롭게 유니폼을 벗고 지도자로 제2의 야구인생을 열기로 했다. 산전수전을 겪으며 빼곡하게 작성한 피칭 노트는 ‘지도자 배영수’의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그는 “그렇게 행복하게 마지막을 장식하는 선수가 있을까”라고 돌아보며 사실 KS가 끝났을 때 어느 정도 결심을 굳힌 상태였다. 그때 거취를 언급할 수도 있었지만, 가족과 먼저 얘기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아내는 ‘수고했다’고 하고, 딸은 ‘아빠, 이제 놀아줄 수 있지?’라고 하더라. 가족에게도 정말 고맙다”고 밝혔다.

두산 배영수. 스포츠동아DB


야구인생이 늘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2000년대 중반까지 리그 최고의 우완투수로 군림했지만, 팔꿈치 인대접합수술을 받고 돌아온 2009년 23경기에서 1승12패(평균자책점 7.26)라는 최악의 성적을 받아들기도 했다. 그때마다 불굴의 투지로 다시 일어섰다. 타자의 몸쪽 코스를 적극적으로 공략하기 시작한 것도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한화 시절인 2017시즌 초반 인터뷰에서 배영수가 했던 말이 있다. “항상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몰았던 것 같다”는 것이다. 은퇴 결심을 굳힌 뒤에도 “한 시즌도 편하게 야구한 적은 없다”고 진심을 전했다.

이제 야구인생 2막을 준비한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연구하며, 후배들과 소통하는 자세는 배영수가 지닌 강점이다. 3개 구단을 두루 경험한 것도 무시할 수 없는 무형의 가치다. 올 시즌을 앞두고도 “여러 팀의 문화를 직접 겪은 것 자체만으로 큰 자산이다. 한화도 좋았고, 두산도 정말 좋은 팀이다. 지도자 생활을 하더라도 지금의 다양한 경험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배영수는 두산에서 보낸 1년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순간을 얻었다. 그래서일까. “배영수, 고생 많았다”고 스스로 던진 한마디에 큰 울림이 느껴졌다.

강산 기자 posterbo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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