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리시브 때문에 고민하는 모든 선수들에게

입력 2019-11-05 13: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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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원-백목화-표승주(왼쪽부터). 사진제공 | KOVO

배구에서 가장 자주 듣는 말이 리시브다. “왜 이 얘기만 반복할까”라고 생각한 때도 있었지만 따지고 보면 상대의 서브로 시작된 플레이의 첫 단계(리시브)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되지 않는 경기가 배구다.

그래서 감독의 가장 중요한 일은 팀이 보유한 자원을 이용해 최적의 리시브라인을 만드는 것이다. 이 것이 흔들리면 기초공사가 엉망인 건물처럼 된다.

도드람 2019~2020시즌 V리그가 막을 올렸다. 벌써 몇몇 팀에서 리시브 라인에 이상이 생겼다. 문제가 생겼다고 공장의 기계처럼 새로운 부품으로 바꿀 수도 없고 교체한다고 당장 좋아지는 것이 아니기에 감독들은 고민이 많다.

시즌이 거듭될수록 상대 팀에서는 약점을 향해 집요하면서도 대담하게 서브폭탄을 넣을 것이다. 이를 받아내야 하는 선수들은 혹시라도 내가 경기를 망칠 수 있다는 두려움과 부정적인 생각, 팬들의 비난, 자책감과 동료들을 향한 미안한 마음이 겹쳐지면서 더욱 움츠려든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 리시브시스템의 역사

지금 V리그는 3인 리시버시스템이 대세다. 간혹 4명이 수비공간을 좁혀 리시브를 하지만 특정 상황에서만이다. 도로공사는 유일하게 2인 리시버시스템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 남자부 금메달을 따낸 미국대표팀을 통해 전 세계배구계에 전파된 방식이다. 당시 미국대표팀의 감독이 한국대표팀의 시스템을 차용했다는 말도 전설처럼 들린다. 삼성화재가 V리그를 평정했을 때 보여준 여오현~석진욱의 2인 리시버는 엄청난 위력을 자랑했다.

2인 리시버를 무력화시킨 것이 점프서브였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낸 브라질 배구가 방법을 찾아냈다. 점프를 해서 강하고 빠른 서브를 위에서 꽂아대자 2인 리시버는 고전했다. 해결책으로 3인 리시버 혹은 상황에서 따라 2~3명이 리시브를 하는 2.5명의 리시버시스템이 등장했다. 갈수록 서브가 강해지고 변화무쌍해지자 이탈리아리그에서는 4인 리시버시스템도 시도했지만 아직 주류가 되지 못했다는 것이 배구계의 정설이다.

● 문정원이 털어놓은 리시버의 생존조건

배구선수가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은 상대의 서브를 받기 직전이다. 그만큼 리시브는 모든 선수들에게 스트레스이자 공포의 대상이다. 서브는 상대를 선택하지만 리시브는 선택을 당한다. 또 공이 날아오는 짧은 순간동안 많은 판단과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래서 스트레스는 필연적이다.

엄청나게 빠른 스파이크가 날아온다면 본능적으로 몸만 움직이면 되지만 서브는 스피드도 구질도 다양하다. 리시브를 하기 위해서는 내 옆 동료와의 호흡도 중요하다. 요즘 점프해서 때리는 플로터서브는 야구의 너클볼 같은 예측하기 힘든 궤적이어서 더 받기 힘들다.

도로공사 리베로 임명옥과 함께 가장 넓은 범위를 자랑하는 문정원에게 리시버가 갖춰야 할 조건을 물어봤다. 그는 지난 2시즌 동안 무려 2482개의 서브폭탄을 견뎌냈다. 2017~2018시즌에는 1218개의 서브를 받았다. 점유율은 52.89%였고 리시브효율은 48.03%였다. 2018~2019시즌 문정원은 1264개의 서브를 상대했다. 점유율은 54.88%, 리시브효율은 52.85%였다.

그는 뜻밖에도 “고교시절에 리시브를 한 적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광주 송원여상을 다니다 팀 내부문제 탓에 목포여상으로 이적했던 문정원은 “절실해야 리시브를 잘 한다”고 했다. 전적으로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얘기다. 고교시절 프로팀에 갈 생각조치 하지 않았던 문정원은 어쩌다보니 도로공사의 선수가 됐다. 리시브가 안 되는 반쪽짜리 선수로 몇 년간 팀에서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존재로 지냈다.

“이제 배구를 포기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무렵부터 절실하게 리시브에 매달렸다. 막다른 길에 있던 그에게 기회를 준 것은 돌고래서브였다. 그 기량을 눈여겨 본 서남원 감독이 주전자리를 마련해줬고 결국 리시브도 차츰 좋아졌다. “리시브가 내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받아야 하는 절실함이 있다면 더 좋아지고 출전기회도 많아진다”고 문정원은 후배들에게 조언했다.

● 실수를 잊어버리는 대범함과 용기 그리고 격려

문정원은 리시브를 견디는 필수요소로 뻔뻔함과 실수를 망각하는 능력을 들었다. 제 아무리 잘해도 리시브효율이 50%를 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이럴 때 스스로를 지켜내는 힘은 방금 전의 실수를 빨리 잊어버리는 대범함이다. 그래서 “얼굴에 철판을 깔아야 한다”고 말했다.

요즘 윙 공격수에서 리베로로 전공을 바꾼 IBK기업은행의 백목화가 리시브 때문에 고생한다.

평소 수비 잘하는 선수라는 평가를 들었지만 새로운 자리는 아직 쉽지 않다. IBK기업은행에 새로 영입된 표승주도 마찬가지다. 리시브 불안에 예전의 기량이 아직은 나오지 않고 있다.

지난 시즌 현대건설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전문가들은 “윙 공격수와 리베로는 다르다. 리베로는 더 넓은 범위를 커버해야 한다. 동선도 다르다. 윙 공격수는 주로 중앙에서 움직이지만 리베로는 코너를 지켜야 해서 범위가 훨씬 넓다”고 설명했다. 어찌됐건 IBK기업은행은 리시브 탓에 지금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좌절하고 용기를 잃은 선수들에게 필요한 것은 응원과 격려다. 힘들기에 인생이다. 대중은 선수가 어려움을 이겨냈을 때 더 큰 박수를 보낸다. 그 것이 스포츠의 속성이다. 백목화 표승주는 물론이고 지금 리시브로 고민하는 모든 선수들을 응원한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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