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트랙] 방심하면 한방에 훅 가는 레바논 원정

입력 2019-11-13 14: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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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축구기자로서 중동의 레바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연관 단어는 ‘쇼크’다. 그만큼 8년 전 악몽은 처절했다.

한국축구는 레바논과 A매치(대표팀 간 경기) 상대 전적에서 9승2무1패로 절대 우위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에서도 한국은 39위, 레바논은 91위로 격차가 확연하다. 하지만 원정 경기만 놓고 보면 2승2무1패로, 별로 여유가 없다. 누구나 마찬가지인 원정의 불리함을 감안해야겠지만 무더운 날씨와 먼 이동 거리, 음식, 경기장 분위기 등 우리와는 많이 다른 환경 탓에 중동은 항상 힘든 원정길이었다.

첫 레바논 원정은 1993년 5월 미국월드컵 아시아 1차 예선 때다. 당시 베이루트에서 경기가 진행됐는데, 전반 17분 하석주의 왼발 결승골로 1-0으로 이겼다. 한국은 수차례 찬스가 있었지만 골 결정력 부재를 드러내며 단 한골에 그쳤다.

역시 베이루트에서 열린 2004년 10월 독일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에서는 전반 7분 터진 최진철의 중거리 포 선제골을 지키지 못한 채 어이없는 수비 실수로 1-1로 비겼다. 경기 내내 한국의 단조로운 공격 패턴이 문제였고, 레바논은 강한 압박이 주효했다. 원정길에 오르면서 당연히 최종예선 진출을 확정지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무승부를 기록하며 대표팀 분위기는 싸늘해졌다.

최악은 2011년 11월이었다. 브라질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레바논 원정에서 충격의 패배(1-2)를 당했다. 한국은 전반 5분 선제골을 내주며 끌려갔다. 15분 뒤 구자철이 페널티킥으로 균형을 이뤘지만 전반 31분 똑 같이 페널티킥으로 실점하며 무릎을 꿇었다. 불과 2개월 전 홈에서 열린 경기에서는 6-0 완승을 거둔 한국은 원정 탓인지 제대로 힘 한번 못 써보고 패하고 말았다. 해외파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고, 주전과 비주전의 경기력 차이가 컸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무기력한 경기력에 여론은 들끓었고, 결국 조광래 감독은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레바논 쇼크는 감독 경질이 문제가 아니라 자칫 최종예선에도 못 나가는 불상사까지 걱정하게 만들었다.

양 팀은 최종예선에서도 격돌했다. 한국은 2012년 6월 홈에서 3-0 완승을 거두고 2013년 6월 원정을 떠났는데, 1-1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전반 초반 선제골을 허용한 뒤 골대 불운과 상대 골키퍼의 선방으로 부진을 거듭했고, 후반 추가시간 김치우가 프리킥으로 골 망을 흔들며 겨우 1-1로 비겼다. 기대를 모았던 손흥민도 후반 25분 이근호를 대신해 투입됐지만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지 못했다. 졸전에 대한 비난 여론은 맹렬했다. 당시 최강희 대표팀 감독은 “원정경기인데다 상대가 밀집해 압박이 심했다. 선제골 허용과 세트피스 실점을 막기 위해 많이 강조했는데, 그렇게 되지 못했다. 후반 선수 교체를 통해 공격에 무게를 둔 변화를 가했지만, 조급한 마음에 고전하게 됐다”고 아쉬워했다.

레바논 원정 징크스를 훌훌 털어버린 건 2015년 9월이었다. 양 팀은 러시아월드컵 2차 예선에서 만났는데, 한국은 장현수, 권창훈의 연속 골과 상대 자책골을 묶어 3-0으로 이겼다. 1993년 이후 22년만의 원정 승리였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대표팀은 14일 오후 10시(한국시간) 레바논 베이루트의 카밀 샤문 스타디움에서 레바논과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H조 4차전을 갖는다. 3차전까지 한국은 2승1무 승점 7로 H조 선두다. 2위 북한도 같은 승점이다. 그 바로 아래가 승점 6(2승1패)의 레바논이다. 레바논으로선 결코 놓칠 수 없는 홈 승부다. 홈 이점을 최대한 살릴 게 뻔하다. 밀집수비와 역습 패턴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전술이다. 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이다. 또 높은 집중력을 유지하면서 상대의 실수나 빈틈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게 중요하다. 방심도, 자만도 결코 허용될 수 없는 원정 경기라는 점을 명심해야한다.

최현길 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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