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치 자막 장벽 깨자”…세계를 뒤흔든 봉준호

입력 2020-01-07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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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영화 ‘기생충’으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봉준호감독(가운데)과 배우 이정은(왼쪽), 송강호.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 ‘기생충’ 한국영화 첫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새 역사

“우리가 쓰는 하나의 언어는 바로 영화”
트로피 안고 명소감…객석 환호 터져
할리우드 최고 상까지 거머쥔 ‘기생충’
내달 10일 아카데미상 수상 가능성↑

“자막의 장벽, 1인치 정도 되는 장벽을 뛰어넘으면 여러분은 훨씬 더 많은 영화를 만날 수 있다. 우리는 영화라는 하나의 언어만 사용하니까.”

한국영화로는 처음으로 세계적인 권위의 또 다른 영화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거머쥔 봉준호 감독이 “하나의 언어는 영화”라고 말하자 객석에서는 박수와 환호가 터졌다. 그의 연출작 ‘기생충’이 6일 오전(이하 한국시간) 미국 LA 베벌리힐튼호텔에서 열린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직후 풍경이다.

‘기생충’이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에 이어 세계 영화시장의 주류 무대인 할리우드에서 또 하나의 수상 쾌거를 올렸다. 작품성을 우선하는 국제영화제 수상을 넘어 대중성까지 중시하는 할리우드의 최고 권위 시상식에서 한국영화가 일군 역사적인 성과이다.


● 한국영화…‘아시아 시네마’ 넘어 ‘글로벌 시네마’

‘기생충’은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비롯해 감독상과 각본상 등 3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마틴 스코세이지, 쿠엔틴 타란티노 등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감독들과 나란히 후보에 올라 겨룬 탓에 아쉽게 외국어영화상만을 수상했다. 그렇다고 의미가 축소되는 건 아니다. 100% 한국어 대사, 한국배우들과 한국 제작진의 한국영화가 거둔 전무후무한 대기록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기생충’의 수상은 봉준호라는 한 감독의 성과가 아니라 한국영화가 아시아 시네마를 넘어 글로벌 시네마로 그 위치가 달라졌음을 증명한 사건”이라고 짚었다. 유력하게 거론된 감독상을 수상하지 못한 것은 영화 ‘1917’로 작품상과 감독상을 차지한 “샘 맨더스 감독이나 할리우드 감독들의 영화 스승으로 통하는 마틴 스코세이지 같은 이들이 포진한 영향이 크다”고 밝혔다.

‘기생충’은 지난해 한국영화 최초로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이후 같은 해 10월11일 북미에서 개봉해 현지 평단과 언론의 호평 세례를 받았다. 골든글로브 시상식 직전 전미비평가협회 외국어영화상, LA비평가협회 작품상·감독상 등을 휩쓸기도 했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최근 ‘버닝’이나 ‘아가씨’ 같은 영화가 문을 두드린 상황에서 ‘기생충’이 처음 후보에 올라 수상의 열매를 맺었다”며 “한국영화의 저변 확대와 경제적인 효과를 넘어 할리우드가 한국영화와 감독들에 크게 관심을 두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밝혔다.

한국시간으로 6일 열린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였다. 사진제공|골든글로브·CJ엔터테인먼트


● 이제 아카데미상만 남았다

골든글로브 시상식 직후 공식 기자회견에서 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은 자본주의에 관한 영화”라며 “미국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심장 같은 나라여서 논쟁적이고 뜨거운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어 “이 작품에는 정치적인 메시지나 사회적인 주제도 있지만 그것을 아주 매력적으로, 관객이 친근하게 받아들이도록 연기한 뛰어난 배우들이 있었기에 미국 관객으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며 수상의 공을 배우들에게 돌렸다.

이날 시상식에는 ‘기생충’의 주연배우 송강호와 조여정, 이정은도 참석했다. 특히 송강호는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북미 개봉에 맞춰 봉준호 감독과 아카데미 시상식을 겨냥한 이른바 ‘오스카 투어’를 함께 해왔다. 영화 호평에 힘입어 시상식에서 송강호를 만난 할리우드 톱스타 브래드 피트는 “‘기생충’의 팬”이자 송강호의 팬을 자처하기도 했다.

이제 관심은 2월10일 열리는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으로 향한다. 물로 13일 나오는 아카데미 최종 후보 발표를 지켜봐야 하지만 골든글로브 수상에 따라 아카데미 국제영화상 수상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영화계는 ‘기생충’이 감독상이나 각본상 등 주요 부문에도 후보로 이름을 올리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수상에 실패하더라도 북미에서 거둔 호평,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통해 세계 영화시장에서 이미 한국영화의 위치가 달라졌다는 성과를 무시할 수 없다는 시선이 나온다. 전찬일 평론가는 “2000년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이 칸 국제영화 경쟁부문에 처음 진출한 이후 20년 동안 세계무대의 문을 두드리면서 얻은 결실”이라며 “‘기생충’을 통해 한국영화와 감독, 배우들의 국제적인 위상이 예전과 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 골든글로브는?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가 주관하는 영화와 TV 통합 시상식. 작품상과 남녀주연상에 한해 영화를 ‘뮤지컬·코미디’와 ‘극영화’ 2개 부문으로, TV는 ‘뮤지컬·코미디’ ‘드라마’ ‘미니시리즈·TV영화’ 3개 부문으로 각각 나눠 시상한다. 1944년 영화 시상식으로 출발해 1955년부터 TV 분야로도 영역을 넓혔다. 외국어영화상은 1950년 도입됐다. ‘기생충’은 골든글로브 역사상 69년 만에 첫 한국영화 외국어영화상 수상작이 됐다. 골든글로브는 아카데미 시상식 직전 열려 그해 아카데미상의 향방을 가늠하는 바로미터 역할을 하면서 명성을 쌓았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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