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아콰피나.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영화 진출 4년만에 ‘골든글로브’ 수상
155cm의 ‘작은 거인’ 아콰피나(32)가 할리우드 ‘파워맨’으로 우뚝 섰다. 미국 골든글로브의 77년 역사상 아시안 여배우로는 처음으로 올해 영화 부문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그가 할리우드에서 보이지 않게 작동하는 인종의 장벽을 딛고 새로운 역사를 쓴 주인공이 됐다.
아콰피나는 최근 2∼3년 사이 무섭게 성장한 배우다. 미국 할리우드 리포트가 최근 선정한 ‘2019년 엔터테인먼트 우먼파워 100’에 니콜 키드먼, ‘겨울왕국’의 제니퍼 리 감독 등과 나란히 이름을 올렸을 정도다. 이미 2018년 여름 할리우드를 강타한 아시안 이야기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을 통해 할리우드에 ‘아시안 물결’을 몰고 온 주역이기도 하다.
● ‘김치찌개’가 예명이 될 뻔
6일(한국시간) 그에게 골든글로브상을 안겨준 작품은 ‘더 페어웰’. 중국계 미국인 손녀가 아픈 할머니를 찾아 중국으로 향하는 이야기다. 실제 아콰피나의 사연과도 겹쳐 더욱 눈길을 모은다. 미국에서 한국인 어머니와 중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4세 때 어머니를 여의고 할머니의 손에 자랐다. 아버지는 뉴욕 인근 플러싱에서 중국 식당을 운영하면서 딸을 키웠다.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쥔 그는 가장 먼저 가족을 떠올렸다. 그는 “나를 길러준 가장 친한 친구인 할머니, 그리고 위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을 엄마에게 감사하다”면서 “아빠! 내가 일자리를 구한다고 했었지?”라고 말해 웃음을 안겼다.
재치와 유머는 아콰피나의 팬덤을 두텁게 하는 배경이다. ‘엔터테인먼트 우먼파워 100’ 인터뷰에서 그는 “학자금 대출 상환”을 이루고 싶은 목표라고 답했다. 본명이 ‘노라 럼’인 그는 고교 시절 예명을 고민하다 ‘김치찌개’ 등을 후보로 고민한 끝에 생수 브랜드 ‘아쿠아피나’를 보고 ‘아콰피나’로 지었다.
● 래퍼로 출발, 영화 출연 4년 만의 성과
시작은 래퍼였다. 출판사에 다니면서 유튜브 등을 통해 어릴 때부터 관심을 둔 랩을 발표해온 그는 2012년 노래 ‘마이 배지’(My Vag·여성 성기를 일컫는 비속어)가 문제가 돼 해고되기도 했다. 이후 2014년 TV드라마를 거쳐 2016년 영화 ‘나쁜 이웃들2’로 스크린에 나섰다. 그로부터 불과 4년 만에 큰 성과를 거뒀다. CNN 등 현지 언론은 “아시안 배우가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는 1956년 일본의 쿄 마치코 이후 아콰피나까지 불과 6명뿐이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아콰피나의 성취는 할리우드의 아시안, 특히 한국계 배우들의 약진으로도 읽힌다. 지난해 캐나다 출신의 한국계 배우 산드라 오가 드라마 ‘킬링이브’로 골든글로브 TV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을 받은 데 이어 2년 연속 수상했다. 향후 할리우드 아시안의 물결이 견고해질 것이란 기대도 쌓인다. 아콰피나의 차기작은 마블스튜디오가 아시안 영웅을 내세우는 ‘샹치 앤 더 레전드 오브 더 텐 링스’이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