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성훈의 몫까지…, 책임감 커진 한화 박상원

입력 2020-02-05 1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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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박상원

한화 이글스 우완투수 박상원(26)은 올해 등번호를 바꿨다. 지난해까지는 58번이었지만, 올해부터는 61번이다. 웬만한 한화 팬이라면 다들 그 이유를 안다. 지난해 11월 불의의 사고로 21세의 꽃다운 나이에 숨진 고 김성훈의 등번호가 61번이었다.


비보를 듣자마자 빈소로 달려가 발인까지 지켰던 박상원에게 고인은 특별한 존재였다. 네 살차 입단동기로 그 누구보다 서로 믿고 의지했던 사이다. 그렇기에 친동생 같던 고인의 프로 첫 승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불펜투수로서의 자책감은 컸다. 발인을 마친 뒤 박상원은 장문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추모글로 팬들의 심금까지 적신 바 있다.


아픈 기억임에도 박상원은 피하지 않고 기꺼이 떠안기로 했다. 운동선수에게는 분신과도 같은 등번호를 과감히 바꾼 이유다. 등번호 변경을 결심한 직후 그는 “61번이 몇 년간 빈 상태로, 또 그 뒤 누군가 다른 사람이 다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며 “이제 내가 끝까지 61번을 달고,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했었다.


마음들 다잡기 위해 12월 비활동기간에도 훈련을 등한시하지 않았다. 연말연시의 들뜬 분위기를 피해 일부러 해외 개인훈련을 택했다. 그러던 중 지난달 8일 일정을 조정해 서둘러 귀국했다. 이틀 뒤인 1월 10일 고 김성훈의 사십구재가 열리기 때문이었다.


사십구재에서 동생의 넋을 기린 박상원은 가슴 찡한 당부의 말을 접했다. 고인의 어머니로부터 “성훈이 몫까지 열심히 해 달라. 올해 경기를 보러 야구장으로 가겠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들이 생각나서 야구선수 또는 야구경기를 보는 일이 두렵거나 꺼려질 법도 하지만, 어머니는 박상원이 아들의 몫까지 해주길 바라며 응원을 약속했다.


자식 잃은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만한 나이는 아직 아니지만, 박상원은 진심을 다하기로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굳게 맹세했다. 지난달 30일 애리조나로 떠나기 직전 인천국제공항에서 만났을 당시 그는 “부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주어진 내 역할과 내 몫을 충실히 다하면 되니까. 잘 준비하고 있다. 그 덕에 체중도 많이 뺄 수 있었고(89㎏), 몸이 가벼운 느낌”이라며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지었다.


지난해 한화는 마운드와 타선, 선발과 불펜을 가리지 않은 총체적 부진 속에 9위로 주저앉았다. 2018년 3위 돌풍 당시 평균자책점 기준으로 전체 1위였던 불펜의 붕괴(10위)는 특히 충격적이었다. 불펜 재건이 시급한 처지라 박상원의 어깨 또한 한층 무거워지는 시즌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고 김성훈의 몫까지 도맡기로 한 박상원의 마음가짐에는 일말의 미동도 없다. 새 시즌, 새 출발의 결연한 의지만이 힘차게 꿈틀댈 뿐이다.

정재우 기자 jac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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