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드라마 ‘블랙독’은 그동안 조명되지 않았던 교사들의 이야기, 그 중에서도 기간제 교사를 다뤄 주목을 받았다. 이 중에서 극중 주인공인 고하늘(서현진)과 더불어 정교사 자리를 두고 경쟁했던 지해원의 사연은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보통 시청자들은 드라마 안에서 주인공을 응원하게 되어 있기 마련이다. 가장 많은 시간 노출되며 주인공의 사연을 속속들이 알기에 그와 대립각을 세우는 인물을 응원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만큼 지해원을 연기한 유민규의 역량이 이전보다 훨씬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Q, 그동안 기간제 교사가 드라마에서 잘 조명되지 않았다. 연기하기가 쉽지 않은 역할이었을 텐데.
사실 처음에는 굉장히 막막했다. 제작진에서 실제 선생님들을 연결해 주셔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 덕분에 드라마를 준비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그리고 작가님의 실제 경험담도 녹아 있는 대사의 힘이 컸다. 나중에는 내가 지해원이라면 정말 조급하게 느꼈을 것 같고 시야가 좁아질 것 같더라. 선생님들도 똑같은 사람이고 같은 직장인이구나라는 걸 알게 됐다.
Q. ‘블랙독’에서는 교사들을 다루다 보니 수업하는 장면도 많이 나왔다. 따로 노력한 부분이 있다면?
A. 칠판에 글을 쓰며 수업하는 부분을 정말 많이 연습했다. 연기라고 해도 내가 글씨를 너무 못 쓰면 리얼리티가 떨어질 것 같았다. 대기 시간이 날 때마다 매니저나 스탭을 앉혀놓고 수업 시뮬레이션을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Q. 일반 오피스 드라마와 달리 일어나는 에피소드가 굉장히 생소했다. 교무실에 저렇게 긴장감 넘치는 곳이었나 싶더라.
A. 드라마니만큼 필수적인 에피소드가 있어야 하니까 많은 이야기를 넣은 것 같았다. 하지만 실제로 강남 쪽 학교는 드라마만큼 치열하다고 하더라. 소위 8학군 쪽 학교들은 드라마 속 이야기가 아주 없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들었다.
Q. 지해원을 보면서 ‘미생’의 장그래하고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교사가 되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나 끝내 좌절하는 모습도 닮았던데?
A. 나도 ‘미생’을 즐겨봤다. 지해원은 임시완 씨가 했던 역할과 강하늘 씨가 했던 역할이 섞여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지해원에 대한 애착이 크다. 나 역시 공백기를 가지면서 실제로 움츠러 드는 생활을 했고, ‘블랙독’에 들어오며 ‘이번에 잘 해서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조급함이 컸다. 감독님도 그걸 느꼈는지 ‘연기 하려고 하지 말고 그대로 네 감정을 보여줘라’고 하더라.
Q. 지해원은 이전 작품보다 서사도 많고 표현해야 할 감정도 많았다.
A. 초반 4부까지는 내가 봐도 지해원에게 이렇게 많은 서사가 주어질지 몰랐다. 아마 이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가장 많이 닮아서 그런 부분에 많은 과제를 줬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인터뷰를 했던 선생님들이 눈물이 나서 드라마를 보다가 껐다는 분도 있고 다이렉트 메시지로 고마움을 표현하는 글도 받아봤다. 굉장히 뭉클한 경험을 했다.
Q. 앞선 질문에 ‘움츠러드는 생활을 했다’고 말했다. 굉장히 힘든 공백기를 보냈던 것 같은데?
A. tvN ‘명불허전’이라는 드라마를 할 때 내가 조금 안일했던 것 같다. 그 때의 캐릭터와 지금 지해원이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데도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 그 이후에 내가 스스로 위축되고 후회가 됐다. 그렇게 1년 동안 내가 좀 더 잘할 수 있는 연기도 못하게 됐다. 깊은 수렁에 빠져 1년을 지냈다.
Q. 그럼 공백기 동안 어떻게 생활했나. 배우라는 직업도 수입이 안정적이진 않지 않았을 텐데.
A. 그동안 내가 손님으로 다니던 초밥집에 아르바이트를 지원했다. ‘오전 10부터 2시까지 파트타임으로 일을 시켜달라’고 라고 아르바이트를 했다. 데뷔 이후였는데도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초반에는 날 알아보는 분도 계셔서 힘들었는데 어느 순간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내가 뭐라고’라는 생각을 하면서 마인드가 많이 바뀌었다.
Q. 그런 경험들이 연기할 때 도움이 되던가.
A. 정신적인 부분에서 큰 도움이 된다. 그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뭔가 많이 내려놓게 됐고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을 가지게 됐다. 그 덕에 연기할 때 힘을 좀 빼고 편하게 할 수 있는 것 같다.
Q. 힘든 공백기도 거쳐보고 ‘블랙독’으로 호평도 받았다. 본업인 배우로 돌아와 어떤 평가를 받고 싶나.
A. '블랙독' 촬영장에서 한 선배님이 ‘배우는 어쩌면 계속 입시를 준비하는 사람일지도 몰라’라고 하더라. 난 그 말에 굉장히 공감했다. ‘블랙독’에서 지금 연기 중이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라 다음 입시를 준비하는 마음을 가지게 됐다. 앞으로 더 많이 노력해서 주위의 모든 분들게 연기에서 만큼은 인정받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다.
동아닷컴 곽현수 기자 abroad@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매니지먼트 숲, t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