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정찬헌. 스포츠동아DB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니에요.”
투수 인생 최고의 시즌을 맞이하는 듯했다. 정찬헌은 마무리투수로 2019시즌을 출발했다. 개막 후 한 달간은 찬란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거듭된 무실점 투구로 거침없이 세이브 행진을 이어갔다. 4월말까지 10경기 평균자책점 0.96에 1승6세이브를 올리며 강인한 클로저의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기쁨은 짧았다. 불의의 부상과 맞닥뜨렸다. 가장 빛나는 순간에 공을 내려놔야 했다. 허리 통증으로 1군에서 말소된 그는 한 달간 숨을 골랐지만 더 이상 LG의 뒷문을 지킬 수 없었다. 6월 수술을 받으면서 남은 시즌 내내 재활에 몰두해야 했다. 그 사이 마무리 보직은 후배 고우석이 꿰찼다. “워낙 페이스가 좋았고, 가장 많이 기대했던 시즌이었다. 돌이켜보면 많이 아쉽다”는 정찬헌에게는 유독 씁쓸한 기억이다.
이제는 ‘건강’이 최우선이 됐다. 부상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투구 폼을 오버핸드에서 스리쿼터로 수정하면서 여러 변화가 동반됐다. 재활 후 첫 실전 등판이었던 5일 자체 청백전에서 직구 최고 구속은 142㎞에 그쳤지만, 공의 움직임은 부쩍 좋아졌다. 스스로도 투심 계열의 공을 던질 때 과거보다 각이 더 많이 형성되고 있음을 느낀다. 이와 더불어 힘은 빼면서 정확히 원하는 코스로 공을 던지려는 것이 정찬헌의 새로운 시도다.
“어릴 때부터 공이 깨끗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지저분한 공을 던지고 싶었다”고 털어놓은 정찬헌은 “구속은 여기서 멈춰도 좋다. 단, 얼마나 스트라이크존 안에서 공이 많이 움직이게 할 수 있을지, 어떻게 타자들의 히팅 포인트 안에서 공의 움직임으로 범타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를 염두에 두고 연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움직임”이라는 것이 그의 밑그림이다.
필승계투자원으로 분류되는 정찬헌이 가세하면서 LG의 마운드 전력은 부쩍 풍성해졌다. 신인 이민호, 김윤식이 연습경기 호투를 통해 코칭스태프의 눈도장을 받은 데다 나란히 재활조에 속했던 김대현, 김지용도 함께 복귀를 준비하고 있다. 프로 13년차인 정찬헌도 ‘저 친구들 사이에 내가 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할 만큼 경쟁 열기가 뜨겁다.
하지만 팀을 위한 야구를 할 생각이다. 그는 “워낙 좋은 중간투수들이 많다. 어느 자리에 들어가야 좋은 보직을 차지할 수 있을지보다 내가 어떤 역할을 해야 팀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한다. 팀이 원한다면 패전투수도, 선발도 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