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 흑백판이 29일 개봉한다. 국내외 흥행은 물론 칸 황금종려상과 미국 아카데미상 4관왕 등 해외
호평에 힘입은 것이다. 봉 감독은 2009년 ‘마더’에 이어 흑백 버전의 ‘번외편’으로 새로운 볼거리를 선사하게 됐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 개봉 앞둔 ‘자산어보’도 흑백 영화 바통
봉준호 감독 “표정·감정 더 또렷”
이준익 감독 흑백영화 ‘자산어보’
수묵화 같은 이야기 완성도 더해
이준익 감독 흑백영화 ‘자산어보’
수묵화 같은 이야기 완성도 더해
“고전영화 혹은 옛 클래식 영화에 대한 로망이 있어요.”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의 흑백판을 내놓으면서 꺼낸 말이다. 시각효과 기술을 활용한 첨단영상의 시대에 고전의 향기를 품은 흑백영화가 계속 나오고 있다. 29일 특별상영 형식으로 다시 극장에 걸리는 ‘기생충’ 흑백판에 이어 이준익 감독이 촬영을 마친 ‘자산어보’가 바통을 받는다.
작년 5월 국내 개봉해 1000만명이 넘는 관객이 관람한 ‘기생충’은 북미는 물론 영국·프랑스 등 유럽에서도 흥행한 작품이지만, 새로운 스타일로 탄생하는 흑백판으로 다시 한번 관심을 얻고 있다. 올해 1월 네덜란드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돼 ‘냄새가 더 짙게 느껴진다’는 평을 얻었고, 봉준호 감독 역시 “컬러가 사라지니 배우들의 미세한 표정이나 연기 디테일, 뉘앙스를 훨씬 더 많이 느낄 수 있고 집중할 수 있다”고 밝혔다.
개봉을 앞둔 설경구·변요한 주연의 ‘자산어보’ 역시 흑백영화로 만들어졌다. 1800년대 초반 조선시대 후기가 배경인 영화는 흑산도로 유배당한 정약전이 섬 청년을 만나 신분과 나이를 초월한 우정을 나누면서 어류도감 ‘자산어보’를 집필하는 이야기다. 이준익 감독은 2016년 ‘동주’로 처음 흑백영화를 경험한 뒤 이번 영화로 다시 도전한다.
이준익 감독의 신작 ‘자산어보’도 흑백영화로 제작되면서 한국영화의 흐름으로 이어질지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자산어보’ 촬영을 마친 출연진과 제작진 모습이다. 사진제공|메가박스(주)플러스엠
흑백영화가 계속되는 데는 저마다 이유가 있다. 봉준호 감독처럼 흑백영화에 대한 동경을 실현하고 관객에게 새로운 볼거리를 선사하는 일종의 ‘번외편’으로 제작을 시도하는 경우도 있고, 작품의 메시지와 분위기를 극대화하기 위한 선택으로 쓰이기도 한다. 지난해 3월 개봉해 손익분기점의 두 배인 115만 관객을 동원한 ‘항거:유관순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고아성이 주연한 ‘항거’는 3·1운동으로 서대문 형무소에 갇힌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다. 극본을 쓰고 연출을 맡은 조민호 감독은 “일상의 대화조차 불가능한 감옥에서 미세한 감정이 부딪치는 모습을 표현하려면 컬러보다 흑백이 적합했다”고 밝혔다. 1919년 무렵 서대문 형무소의 실제 모습을 재현해 컬러로 표현했을 때 자칫 “가학적이고 피학적인 느낌을 줄 수 있다”는 판단도 배경이 됐다.
때로는 예산의 문제도 작용한다. 윤동주 시인의 이야기인 ‘동주’는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이지만 흑백으로 찍은 덕분에 순제작비 5억원으로 완성할 수 있었고, 오히려 117만명을 동원하는 반전의 흥행까지 거뒀다. ‘자산어보’는 저예산 영화는 아니지만 흑산도를 배경으로 수묵화 같은 이야기를 완성하기 위해 흑백을 선택했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