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세계’ 감정의 본질 꿰뚫다…‘환장’ 외치면 볼 수밖에 없는 이유
JTBC 금토드라마 ‘부부의 세계’(연출 모완일, 극본 주현, 크리에이터 글Line&강은경)가 얽혀가는 관계 속에서 감정의 본질을 짚어내는 통찰로 묵직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부부의 세계’가 지선우(김희애 분), 이태오(박해준 분)를 둘러싼 관계들이 거세게 흔들리기 시작하며 전환점을 맞았다. 격렬했던 파국의 파편은 부메랑처럼 돌아와 두 사람의 주변까지 상처 입히기 시작했다. 누구도 예측 못 한 충격 엔딩은 거센 후폭풍을 예고하며 시청자들을 들썩이게 했다. ‘부부의 세계’는 호평 속에 새로운 기록을 써 내려가고 있다. 지난 10회 방송이 전국 기준 22.9%, 수도권 기준 25.9%(닐슨코리아, 유료가구 기준)를 기록, ‘SKY 캐슬’을 넘어 역대 JTBC 드라마 시청률 1위에 오른 것. 이는 비지상파 드라마 가운데 역대 최고 시청률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시청자를 끌어당긴 흡인력은 예측 불가의 전개 속에서도 사랑과 관계의 본질을 꿰뚫는 날카로운 통찰에 있다. 2막에 접어들면서 인물들이 복잡하게 얽히기 시작했다. 충돌하는 이들의 내면 깊숙한 곳에 숨겨둔 속내를 집요하게 좇는 시선은 시청자들의 감정 이입을 유도하고, 공감력을 극대화했다. 쉬이 끊어지지 않는 지선우와 이태오, 그리고 두 사람을 둘러싼 복잡하고 미묘한 관계는 ‘사랑’과 ‘부부’의 본질을 다각도로 조명한다. 사랑과 배신 앞에서 서로 다른 선택을 하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대립하고, 연대하는 지선우와 이태오, 여다경(한소희 분), 고예림(박선영 분), 민현서(심은우 분). 서로를 거울처럼 투영하며 ‘사랑’의 본질을 짚어내는 이들의 관계는 예측 불가의 사건 만큼이나 중요한 서사다. 이에 끊임없이 화두를 던지는 인물들의 관계, 감정을 짚어봤다.
● “결혼은 뭘까, 이혼은 또 뭐고” 김희애VS박해준 그리고 한소희, 감정의 실체와 싹트는 불안
지선우와 이태오의 세계는 한때 완벽했다. 그러나 한순간의 배신이 지옥으로 끌어내렸고, 지선우는 허울뿐이었던 모래성을 스스로의 손으로 기어이 무너뜨렸다. 그리고 이태오는 여다경의 손을 잡고 다시 완벽한 세계를 만든 듯 보였다. 인생에서 도려냈다고 생각했지만, 결코 끊어지지 못한 지선우와 이태오는 여전히 서로를 향해 달려들고 있다. 죽을힘을 다해 목을 조이는 이면에는 진화되지 못한 무언의 감정이 남아있다. 미처 버리지 못한 결혼반지와 사진은 지선우의 감정을 내비치고 있었다. 지선우의 이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던 것. 지선우의 추락을 위해 모든 것을 걸면서도 정작 그가 다치자 불같이 화를 내는 이중적인 이태오도 질긴 인연의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박인규(이학주 분)는 이를 ‘사랑’이라고 했고, 고예림은 ‘집착’이라고 말했다. 뒤바뀐 지선우와 여다경의 관계 역시 의미심장하다. 지선우와 자신은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지선우의 것이었던 불안은 이제 여다경의 몫이 됐다. “한 번 바람피운 남자는 또 피운다”는 말을 떨칠 수 없는 여다경이 흔들리고 있다. 지선우 그리고 이태오, 여다경의 변화는 결혼과 부부, 사랑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결혼이 뭘까. 이혼은 또 뭐고. 놓아버렸는데도, 헤어졌는데도 왜 이 질긴 고리가 끝나지 않는 걸까”라는 지선우의 물음은 곱씹을수록 씁쓸한 현실을 차갑게 깨우며 이들의 행보에 궁금증을 높인다.
● 배신 앞에서 다른 선택한 김희애와 박선영, 통렬한 각성 “내가 붙잡았던 건 오기”
지선우와 고예림은 남편의 배신 앞에서 다른 선택을 했었다. 고예림은 손제혁(김영민 분)의 외도를 알고도 “넌 못 지켰지만, 난 지킬 거다. 이 정도로 흔들리지 않는다. 절대로”라며 허울뿐인 가정이라도 지키기로 했다. 선택의 결과는 어땠을까. 지선우는 관계를 끝냈지만, 여전히 이태오와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태오의 계략에 넘어간 손제혁은 또다시 고예림의 신의를 저버렸다. 결코 변할 수 없는 남편의 모습에 고예림은 이혼을 결심했다. 애써 눈감고 그저 지키기만 급급했던 고예림이기에 뒤늦게 찾아온 각성은 그를 성장시켰다. 무너진 뒤에야 “내가 붙잡았던 건 사랑이 아니라 오기였다. 집착은 아무 의미 없고, 오히려 상처만 더 커지게 한다는 것”을 깨달은 고예림. 현실을 직시한 그의 눈에는 지선우의 상황도 정확히 보였다. 고예림은 지선우에게 “언니도 이제 이태오 생각 버려. 꼿꼿하게 그러고 있는 것도 내 눈엔 집착으로밖에 안 보여. 서로 이기자고 들면 끝도 없는 거야. 내가 보기엔 이태오나 언니나 똑같아”라고 일침을 날렸다. 감정도 없이 ‘부부’라는 관계의 허울만을 붙잡고 있었던 고예림, 그리고 끊어냈지만 설명되지 못한 질긴 감정의 불씨가 남아있는 지선우는 대칭점에서 서로를 비추고 있다.
● 불행 딛고 선 김희애와 심은우, 하지만 벗어날 수 없는 관계의 고리! 사랑으로 포장된 집착
환경은 달랐지만, 단번에 서로를 이해한 지선우와 민현서는 공통의 연결고리가 있었다. 사랑이라는 감정 때문에 불행을 초래했고, 폭풍 같은 불행에 맞서 삶을 쟁취해냈다. 지선우와 민현서가 보여줬던 연대는 둘만의 공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폭력과 집착에도 박인규를 놓지 못했던 민현서는 불행과 정면으로 맞서는 지선우를 보고서야 그를 끊어낼 수 있었다. 비틀린 욕망과 집착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될 수 없었다. 민현서는 지선우의 도움을 받아 박인규에게서 벗어났지만, 다시 나타난 박인규는 다시 숨통을 옭아맸다. 쉽사리 끊어지지 않는 지독한 인연의 끈은 무엇으로 엮여있을까, 이혼하고도 서로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지선우와 이태오처럼 민현서과 박인규의 관계도 그러했다. 지선우와 민현서는 서로의 거울과도 같다. ‘사랑’의 감정에 속아 깊은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던 두 사람은 상대를 통해서 자신의 현실을 봤을 터. 박인규와 민현서의 관계는 결국 파국을 맞았다. 과연 지선우와 이태오는 어디로 향할까. “둘 중 한 사람이 망가져야 그 실체가 명확히 보일 것”이라던 지선우와 이태오의 관계 역시 위태롭기는 마찬가지다.
동아닷컴 홍세영 기자 projecthong@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