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 돌 파문과 앰부시 마케팅의 기억

입력 2020-05-19 11: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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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프로축구 K리그1의 FC서울이 리얼 돌 파문으로 곤란한 상황이다.

모처럼 달아오른 축구열기가 입에 담기도 민망한 해프닝 탓에 사그라져 버릴까 걱정이다. 자세한 내용은 따져봐야겠지만 새로운 이벤트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업자들을 믿고 일처리를 맡겼던 것이 이런 사태를 불러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홍보효과의 극대화를 노린 성인용품 업체의 앰부시 마케팅에 구단과 프로축구연맹이 당한 것이다.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일처리는 꼼꼼히 확실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뼈아픈 사례다.

대형 스포츠 이벤트마다 등장하던 앰부시 마케팅이 K리그에도 등장했다는 것이 신기하다. 그만큼 지금 전 세계 축구 팬들의 관심이 큰 상황에서 극적인 홍보효과를 누릴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을 것이다. 앰부시 마케팅은 공식스폰서는 아니지만 소비자들에게 마치 공식스폰서처럼 오해하게 만들어 홍보효과를 노리는 꼼수다. 전 세계의 스포츠 시청자가 지켜보는 올림픽과 월드컵은 앰부시 마케팅과의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진다.

시작은 1984년 LA올림픽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처음으로 공식스폰서 계약을 맺었던 때다. 후원에서 탈락한 기업들은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첫 성공사례는 코닥 필름이었다. 당시 일본의 후지필름이 올림픽 공식후원사였다. 경쟁사 코닥은 올림픽을 취재하는 전 세계의 사진기자들에게 필름을 마음껏 쓰게 하고 기념품과 스티커 등을 퍼주는 물량 마케팅을 펼쳤다. 사진 기자들이 장비에 너도나도 코닥 스티커를 붙이고 스포츠 현장을 누벼준 덕분에 후지필름보다 광고효과는 컸다.

2002년 한일공동월드컵에서도 유명한 앰부시 마케팅 사례가 나왔다. 당시 무선통신분야 공식후원사는 KTF(현 KT)였다. 경쟁사 SK텔레콤은 붉은 악마와 함께 한 응원으로 대 성공을 거뒀다. SK는 심지어 KTF의 광고모델이었던 배우 한석규를 응원광고에 등장시켰고 지금도 우리가 기억하는 ‘오 필승 코리아’와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박수응원도 탄생시켰다.

2006년 독일월드컵 때는 월드컵에 출전하는 전 세계 스타선수들의 미인 아내에게 출전국의 대표팀 유니폼을 입힌 앰부시 광고가 히트를 쳤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분노했지만 막을 방법은 없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때는 네덜란드 맥주회사가 관중석에서 앰부시 마케팅을 하다 적발돼 쫓겨난 적도 있다. 가끔 우리나라의 프로야구장에도 아름다운 여성이 맥주를 잔뜩 테이블에 쌓아놓고 먹는 장면이 화면에 등장하는데 앰부시 마케팅의 변형이다.

앰부시 마케팅은 성공하면 큰 홍보효과를 누리고 실패해도 문제될 것은 없다. 비난이 쏟아지면 질수록 사람들은 그 광고와 제품에 더 관심을 가지는 경향이 있기에 비난을 고마워 할 수도 있다. 이번에 리얼 돌 때문에 난처할 한국프로축구연맹과 FC서울이 어떤 해결책을 찾을지는 이미 답이 나와 있다. 이들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무관심이다.

기자가 기억하는 앰부시 마케팅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것은 1999년 프로야구에서 나왔다.
당시 대구시민구장 1루 쪽 관중석에 한 눈에 봐도 시선을 사로잡는 금발의 미녀들이 여럿이 모여서 응원을 했다. 시즌 막판이라 관중도 적었기에 더욱 시선을 모았다. 방송화면에 이들의 모습을 자주 노출시키던 순간 앰부시 마케팅이 시작됐다. 외국인들을 인솔해서 온 누군가가 사인을 주자 이들은 준비해간 현수막을 펼쳤다. 너무 노골적이었던 현수막의 내용을 조금 순화시키자면 ‘러시아에서 직수입한 미녀 다수 입하. XXX 나이트클럽’이었다.

기겁을 한 한국야구위원회(KBO)와 삼성은 다음날 같은 장소에 자리를 잡고 또 앰부시 마케팅을 펼치려던 그들을 제지했다. 입장권을 사서 정당하게 들어온 팬이기에 내쫓지는 못하고 현수막은 빼앗았다. 그들은 목적을 이루지 못하자 곧 야구장을 떠났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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