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베이스볼] 거울 속 자신과 팬들, 유희관이 편견에 연전연승하는 힘

입력 2020-06-03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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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유희관. 스포츠동아DB

“제가 프로에서 선발로 뛸 거라 생각한 사람이 있을까요?”

‘느림의 미학’ 유희관(34·두산 베어스)이 통산 90승 고지에 오른 뒤 뱉은 첫 마디다. 이 말처럼 유희관의 프로 인생은 편견과의 싸움이다. 그리고 유희관은 매년 그 싸움에서 승리하고 있다. 여전히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시선을 바꾸기보다는 거울 속 스스로의 지지를 무엇보다 큰 무기로 삼고 있다.

유희관은 2일 수원 KT 위즈전에 선발등판해 6이닝 7안타(1홈런) 1볼넷 2삼진 4실점을 기록했다. 퀄리티스타트 달성에는 실패했지만 팀이 11-8로 이겨 시즌 3승(1패)째를 따냈다. 이날 승리는 2009년 입단한 유희관의 통산 90승(52패)째이기도 하다. 역대 37번째, 좌완으로는 열 번째 대기록이다.

데뷔 첫 시즌부터 유희관은 KBO리그의 ‘별종’이었다. 전력을 다해 던지는 공의 최고구속이 130㎞를 약간 넘겼다. 칼 같은 커맨드로 스트라이크존을 농락하는 제구보다는 느린 구속 자체만 화제가 됐다. ‘프로 지명도 쉽지 않을 것’이란 편견은 유희관의 두산 입단 후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시선으로 탈바꿈했다. ‘땜빵’으로 나선 생애 첫 선발등판(2013년 5월 4일 잠실 LG 트윈스전)에서 5.2이닝 무실점으로 승리를 거뒀을 때도, 그해 10승 고지에 올라섰을 때도 ‘구속이 느려 더는 안 통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강했다.

유희관은 그 편견을 보란 듯이 이겨냈다. 그러나 2018년 두산 최초로 6년 연속 10승 고지에 올랐을 때도, 그리고 지난해 그 기록을 1년 더 늘렸을 때도 편견은 유희관을 놓아주지 않았다. 느림의 미학은 묵묵히 자신의 공을 던지며 또 편견을 이겼다.

두산 유희관. 스포츠동아DB

여전히 누군가가 유희관을 의심하더라도 거울 속 자신은 누구보다 유희관을 믿고 있다. 유희관은 90승을 거둔 뒤 인터뷰에서 “나는 늘 내 패턴대로 던진다. 변화를 준다고 구속 150㎞가 찍히는 건 아니다”라며 “내 공, 그리고 포수를 믿고 던진다. 언제나 ‘내 공은 최고’라는 마음가짐이다. 그 마음이 없으면 상대에게 지고 들어간다”고 강조했다. 유희관은 누구보다 유희관의 편이다.

“지금까지의 90승 중 첫 선발등판에서 거둔 승리가 여전히 가장 의미 있다. 더스틴 니퍼트(은퇴)의 땜빵으로 들어가 승리를 거뒀다. 그 1이 없었으면 90은 없었다. 기록을 위해서 야구하는 건 아니지만, 정말 좋은 팀을 만난 덕분에 이렇게 큰 기록을 거뒀다. 100승, 그리고 연속시즌 10승 기록에 애착이 가는 건 사실이지만 그 기록을 달성한 뒤에도 더 좋은 선수가 되도록 매년 노력할 것이다.” 90승 직후 유희관의 말이다. 90을 가진 유희관은 여전히 1의 의미를 가슴에 새기고 있다.

야구계를 휘감은 편견은 또 한 번 유희관에게 무릎을 꿇었다. 빠르면 올 시즌 KBO리그 역사상 31명만 밟았던 100승 고지를 헌납할 가능성이 높다. 그 결과를 떠나 유희관은 유니폼을 벗는 그날까지 늘 그랬듯 자신의 공을 던질 것이다. 유희관의 시선은 편견 극복이 아닌 자신을 믿어주는 이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데 맞춰져있다.

수원 |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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