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맹의 아이콘 美 해병대 군마 ‘레클리스’ 한국전쟁 숨은영웅

입력 2020-06-05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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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미국 라이프 매거진의 100대 영웅에 선정돼 화제를 모은 군마(軍馬) ‘레클리스’는 서울 신설동 경마장에서 경주를 준비하던 ‘아침해’였다. 켄터키 경마공원에 건립된 레클리스 동상. 사진제공|한국마사회

■ 대한민국을 지킨 美 해병대 군마 ‘레클리스’ 스토리

140cm 작은체구 산길 물자이동 동원
고지대 탄약·부상병 수송까지 도맡아
네바다 전투땐 하루평균 51차례 옮겨
종전 후 훈장…한미에 동상·공원 조성

1997년 미국의 라이프 매거진이 100대 영웅을 선정했다. 조지 워싱턴, 아브라함 링컨, 마틴 루터 킹, 마더 테레사 등 역사 속 위인들과 함께 사람이 아닌 군마(軍馬) ‘레클리스’가 선정되어 화제가 됐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 해병대 소속인 이 군마는 서울 신설동 경마장에서 경주를 준비하던 경주마 ‘아침해’다.


● ‘아침해’에서 군마 ‘레클리스’로 변신하다

산악지역이 대부분인 한반도의 지리적 특성상 6·25전쟁 당시 미군은 물자 이동을 위해 군마를 활용했다. 몽골계 혈통을 이어받은 암말 ‘아침해’는 140cm의 작고 단단한 체구로 산길을 다니기에 적합한 체형으로 군마 수급을 위해 동원됐다. 당시 ‘아침해’의 마주는 김학문이라는 어린 소년이었다고 전해진다. 지뢰사고로 한 쪽 다리를 잃은 여동생의 의족이 필요했기 때문에 정든 말을 떠나보냈다. 당시 가격은 250달러로 1인 연평균 소득이 67달러 정도밖에 되지 않았을 때임을 고려한다면 결코 작은 금액이 아니었다.

총탄과 포성이 빗발치는 전장에 투입된 ‘아침해’는 고지대로 탄약과 물자, 부상병을 수송하는 임무를 맡았다. 청각 발달로 큰 소리에 지레 겁을 먹는 다른 말들과는 달리 ‘아침해’는 우렁찬 포성소리와 여러 번의 총상에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산길을 오를 땐 탄약을, 내려올 땐 부상당한 병사들을 실어 날랐다. 포탄이 날아올 땐 몸을 바싹 눕기도 하며 철조망도 피해 다닐 수 있었던 이 특별한 말은 사람의 동행 없이도 완벽하게 단독으로 임무를 수행했다.

1953년 3월 연천지역에서 중공군과 대규모 격전을 치른 네바다 전투에서는 닷새간 하루 평균 51차례나 물자를 옮기며 승리의 일등 공신이 됐다. 미 해병대는 ‘아침해’의 공로를 인정하여 ‘무모할 정도로 용감하다’는 뜻의 ‘레클리스(Reckless)’로 이름 붙였으며, 1954년에는 병장으로 진급시켰다.

전장에서 화포와 탄약을 수송하고(왼쪽 사진), 해병대 전우들과 함께 맥주도 나눠 마신 레클리스. 사진제공|한국마사회


● 미 해병대의 마스코트이자 용맹함의 아이콘

‘레클리스’는 한국전쟁 종전 후 1954년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송환됐다. 무공훈장 등 5개의 훈장을 수여받고 1959년 하사관으로 진급했으며 이듬해에는 공식적으로 은퇴하며 퇴직금 대신 평생 동안의 먹이를 보장받았다. 1968년 노환과 부상으로 세상을 떠날 당시 성대하게 치러진 장례식은 언론에서도 대서특필하며 용맹함의 아이콘이 된 영웅 말을 기렸다. 2013년에는 버지니아주 국립 해병대 박물관, 2018년에는 켄터키 경마공원에 ‘레클리스’의 동상이 건립됐으며, 한국에서도 2016년 연천군에 ‘레클리스 공원’이 조성됐다.

특이하게도 이름이 같은 2002년에 태어난 경주마 ‘아침해’와 2015년생 ‘돌아온 아침해’는 호국 보훈의 달인 6월에 치러진 경주에서 우승해 관심을 받았다. 미국에서도 하사관 레클리스의 이름을 딴 ‘Sergeant Reckless’라는 경주마가 활동했고, 마주의 제안으로 2014년 켄터키더비 경주 개최일에 처칠다운스 경마장에서 ‘레클리스’의 추모행사가 시행되기도 했다.

한국마사회는 전쟁 영웅이 된 ‘아침해’의 용기와 호국정신을 기억하기 위해 2015년부터 말과 함께하는 뮤지컬 공연 ‘레클리스1953’을 선보이고 있다. 김낙순 한국마사회장은 “앞으로도 말과 함께 하는 이색 문화공연과 국가를 위해 몸 바쳐 희생, 헌신하신 ‘숨은 영웅’을 기리는 활동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정용운 기자 sadzo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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