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정진영이 묻는다…‘나’는 누구일까

입력 2020-06-10 13: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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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나’는 누구인가.

누구나 한 번쯤 느껴봄직한 내가 생각하는 ‘나’, 남들이 보는 ‘나’의 간극이 불러낸 삶의 고민은 배우 정진영의 영화감독 데뷔작 ‘사라진 시간’(제작 BA엔터테인먼트)의 출발이었다.

고교시절부터 영화감독을 꿈꿨지만 대학에서 연극을 시작하고 이후 영화배우가 되면서 좀처럼 연출 기회를 찾지 못한 그가 더는 꿈을 미룰 수 없다고 작심해 4년여 전부터 준비한 작품이다.

9일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시사회를 열고 작품을 공개한 정진영 감독은 영화 주연인 배우 조진웅을 비롯해 배수빈, 정해균과 가진 간담회에서 “단 한편의 영화를 만든다면 어떤 영화를 해야 할까” 생각하고 또 생각한 결과물이 ‘사라진 시간’이라고 밝혔다.


○ “한달음에 쓴 시나리오, 하나의 장르로 해석하기 어려워”

‘사라진 시간’은 소도시 시골마을에서 초등학교 교사 부부가 의문의 화재 사고로 사망하면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사건 수사를 맡은 형사 형구(조진웅)는 마을 사람들의 행동이 조금 이상하다고 느끼면서 비밀을 추적한다.

마을 어른이 마련한 저녁 식사자리에서 거하게 술을 마시고 일어난 아침, 형구는 자신이 살던 시간이 완전히 뒤바뀐 황당한 상황에 맞닥뜨리고 아내와 가족 그리고 집과 직업까지 사라진 세계에서 혼란에 빠진다.

‘사라진 시간’은 해석욕구를 자극하는 모호한 작품이다.

극 중 형구처럼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도 정진영 감독이 설계한 세계에서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질 법 하다. 출연 배우들도 이구동성 “시나리오를 읽고 어떤 이야기인지 쉽게 짐작이 가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는 감독의 의도이자, 그가 원한 세계이기도 하다.

정진영 감독은 “세상에 익숙한 이야기가 있고 훌륭한 감독들도 많은데 내가 영화를 만든다면 새롭고 조금 이상한 걸 해야 연출하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고 답했다.

“시놉시스를 한달음에 썼다”고 했지만 ‘사라진 시간’은 하나의 장르로 규정하기도 어려운 영화다. 외지인 교사 부부가 마을에 정착해 살아가는 내용의 초반부는 공포 분위기가 풍기고, 화재사건 이후엔 블랙코미디의 향기도 난다. 이후 수사물처럼 변모하다가 이내 미스터리로 선회한다.

정진영 감독은 “특정 장르로 설명할 수 없는 영화이자 하나의 장르로 해석할 수도 없는 이야기”라며 “마지막엔 선문답으로 끝난다. 그 선문답을 위해 이야기를 이어가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굳이 하나의 장르를 꼽자면 “남이 보는 나와 내가 보는 나 사이에 놓인 연약한 사람의 ‘슬픈 코미디’라고 해두고 싶다”고 말했다.


○ ‘선문답’에 동참한 조진웅 “감독을 믿었다”

조진웅은 정진영 감독과 영화 ‘대장 김창수’ 등을 작업하면서 배우 선후배로 인연을 쌓아왔다. 감독은 시나리오를 집필하면서 주인공 형구에 조진웅을 상상하면서 썼다고 했다. 시나리오를 받은 조진웅은 하루 뒤 출연을 결정했다.

이날 간담회에서 조진웅은 “사실 시나리오는 어떤 이야기인지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일단 감독님을 믿었다”며 “현장에서 한 장면씩 완성하면서 가슴으로 무언가 밀려드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조진웅은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이름을 꺼냈다.

“달리의 그림을 봤을 때 시계가 왜 그렇게 늘어져있는지 분석하고 설명하기보다 그 작품 자체를 즐기지 않느냐”고 물은 그는 “단연코 출연한 영화 중 보자마자 ‘다시 보고 싶은 영화는 ‘사라진 시간’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기존과 다른, 흥미로운 영화 작업에 만족한 눈치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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