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 전찬일이 짚는 ‘봉준호 장르가 된 감독’

입력 2020-06-19 09: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전찬일 영화평론가가 펴낸 책 \'봉준호 장르가 된 감독\'은 봉준호 감독의 세계를 살피는 현미경이자 망원경이다. 사진제공|도서출판 작가

누구나 영화를 평하고 누구나 감독을 논할 수 있지만 한 걸음 더 깊숙이 들어가 작품과 감독의 세계를 조망하는 평론 또한 절실한 요즘이다. 영화평론가 전찬일이 내놓은 책 ‘봉준호 장르가 된 감독’(도서출판 작가 펴냄)이 그 갈증을 해소한다.

1993년 영화 비평을 시작해 27년간 평론가로 활발히 활동해온 저자가 2008년 발표한 첫 번째 평론집 ‘영화의 매혹, 잔혹한 비평’에 이어 12년 만에 내놓은 이번 책은 봉준호 감독의 세계를 전방위에서 파고든 ‘감독론’이자, 단편부터 장편까지 봉 감독의 모든 작품을 심도 있게 분석한 평론집이다.


● 감독과 저자가 나눈 3번의 인터뷰…묵직한 ‘대담’

저자는 책에서 말한다. “과도한 ‘봉테일 찬가’라 핀잔을 던져도 하는 수 없다”는 전제이다.

그러면서 “봉준호, 그는 인류의 현실과 미래, 역사를 그 누구보다 선명히 인지하고 사유·실천해온 영화감독”이라며 “봉준호가 작금에 일구고 있는 역사적 성취는 작가·감독으로서 천부적 능력이나 실력 이전에, 탄탄한 인문적 기본기와 그 나름의 배려, 겸손 등 덕목들이 토대를 이루는 세계관, 인간관의 종합산물”이라고 분석한다.

‘봉준호 장르가 된 감독’은 저자가 10년에 걸쳐 감독과 가진 세 차례의 인터뷰를 비롯해 봉준호의 세계를 깊이 이해하기 위한 보론,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등으로 구성돼 있다. 영화 평론 뿐 아니라 2009년부터 2016년까지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이자 마켓 부위원장, 연구소장 등을 역임하면서 한국영화를 넘어 세계 영화계에 깊이 발들인 저자의 시각이 두루 담겼다.

특히 세 차례의 인터뷰는 사실 ‘대담’에 가깝다. 삶의 대부분 시간을 영화를 통해 숨 쉰 평론가와 영화감독이 묻고 답한, 영화 세계의 공유라 할 만하다.

저자는 ‘기생충’이 지난해 5월 칸 국제영화제에서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뒤 국내 개봉해 관객의 평가를 받은 이후인 7월11일 봉준호 감독과 마주 앉아 인터뷰를 진행했다. ‘기생충 칸을 넘어 세계로’라는 제목으로 실린 첫 번째 인터뷰는 무려 62페이지에 이른다. 감독이 직접 답한 ‘기생충 총론’으로 봐도 무방하다.

또 다른 인터뷰는 2014년 3월1일 ‘설국열차’를 통해 나눈 내용이다. 이어 “늘 변화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는 봉준호 감독의 다짐과 바람이 담긴 2010년 2월 ‘마더’ 인터뷰도 수록됐다.

이른바 ‘봉월드’로 불리는 봉준호 감독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저자의 분석은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세계 영화사를 통해 종합적으로 이뤄진다. 가령 이런 식이다. ‘기생충’이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기까지 일등공신으로 그해 심사위원장인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을 꼽는다.

저자는 “단언컨대 이냐리투는 ‘기생충’이 칸의 영예를 차지할 수 있던 결정적인 변수였다”며 “2004년 ‘올드보이’가 칸 심사위원대상을 거머쥐는데 쿠엔틴 타란티노가 그랬듯이 세계는, 우리네 관계는, 호모 사피엔스의 삶과 죽음은 이렇듯 연결돼 있다”고 짚었다.

이 밖에도 봉준호 감독과 중국의 지아장커, 이란의 모흐센 마흐말바프의 공통점을 분석하거나 ‘기생충’부터 ‘옥자’ ‘설국열차’ ‘살인의 추억’을 거쳐 ‘플란다스의 개’까지 봉 감독 영화의 리뷰도 책에 담았다.

저자는 봉준호 감독의 세계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단편영화들도 샅샅이 살폈다. “봉 감독의 단편들은, 단편으로서 독자적 미학성 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봉월드에 다다르기 위한 또 다른 가교들”이라며 “영화 보기 50년, 영화 스터디 38년, 영화 비평 27년 동안 한 특정 감독의 단편영화들을 이처럼 깊이 있고 폭 넓게 파고들고 훑어 본 적은 일찍이 없었다”는 고백도 꺼낸다.

영화 '기생충' 촬영 현장에서의 봉준호 감독.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 “인간 봉준호를 집중 조명하는 기회”

전찬일 평론가의 처음 계획은 사실 이 책이 아니었다. 한국영화 100년을 맞아 ‘오늘의 영화’를 일군 감독들의 인터뷰를 한 데 묶은 종합 인터뷰집 발간이 당초 계획이었다.

하지만 ‘기생충’이 쓴 역사를 도저히 지나칠 수 없었다고 했다. 칸 국제영화제를 넘어 올해 2월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외국어영화상)까지 4관왕에 오르는 쾌거를 거두자 계획을 수정해 이 책을 내놓았다.

저자는 “봉준호, 나아가 인간 봉준호를 집중 조명하고 싶었다”며 “아울러 봉 감독이 ‘내셔널 시네마’로서 한국영화 100년사에서, 아시아 영화사에서, 더 나아가 125년의 세계 영화사에서 차지할 굵직한 위상들까지도 담아낼 수 있기를 바랐다”고 밝혔다.

저자와 오랫동안 영화로 교류해왔고, 봉준호 감독과도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작업해온 영화인들도 이번 책에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박찬욱 감독은 “봉준호의 작품세계가 흥미롭고 놀라운 이유는 다면적이고 다층적이고 다성적이라는 데 있다”며 “그러므로 그의 영화들에 관한 더 많은 글이 쓰여야 한다. 더 많은 인터뷰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우 이병헌은 “‘기생충’이 맞이한 기념비적인 순간들을 전찬일 평론가가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궁금하다”며 “극장에서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때 느꼈던 놀라움, 방송 내내 손에 땀을 쥐며 시청했던 아카데미의 기억, 이 모든 역사를 바르게 기록할 작가가 있어 다행이고 또 감사하다”고 했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오늘의 핫이슈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