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인터뷰] ‘잃어버린 얼굴 1895’ 차지연 “감정을 쏟을 수 있는 유일한 창구는 무대”

입력 2020-07-17 18: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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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인터뷰] ‘잃어버린 얼굴 1895’ 차지연 “감정을 쏟을 수 있는 유일한 창구는 무대”

배우 차지연이 ‘잃어버린 얼굴 1895’로 돌아왔다. 단순한 문장이지만 그가 이 작품과 함께한 시간, 갑상선암 투병으로 인한 1년의 공백 등을 생각하면 의미가 남다르다. 차지연과 이 작품의 인연의 시작은 2013년이었다. 이후 2년 뒤 재연에 참여했고 이번이 세 번째 참여다. 초연부터 함께 해온지라 이 작품을 향한 그의 마음이 더 각별했고 공백 후 아는 곳으로 돌아왔기에 더욱 행복한 자리였다.

5년 만에 돌아온 차지연은 “이 작품은 대본이 너무 탄탄하고 음악은 ‘미쳤다’고 생각할 만큼 좋다. 초연, 재연 때는 내 넘버를 소화하느라 다른 배우들이 부르는 넘버를 여유 있게 들을 수 없었는데 지금은 그게 다 들린다. 게다가 내 캐릭터로 온전히 설 수 있게 하는 무대가 주는 에너지가 있다”라며 “처음을 함께 한 작품이라 더 애정이 간다. 이번이 내겐 마지막일 수 있지만 이 작품은 오랜 시간 동안 사랑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잃어버린 얼굴 1895’에서의 차지연의 존재감은 어마어마하다. 극의 주인공이기도 하지만 무대 위에서 발산하는 그의 에너지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 수년간 뛰어난 플레이를 선보인 운동선수의 백넘버는 영원하듯, 이 작품 속 차지연의 흔적을 지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차지연 본인 역시 이런 말을 아주 부정하진 않는다. 초연을 함께 했고 어느 작품보다 이 극에 대한 애정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말을 즐기며 듣진 않는다. 그는 “칭찬이나 스포트라이트에 욕심을 낼수록 배우의 여정이 초라해질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정상궤도에 있다고 하면 되게 쑥스러운데. (웃음) 무대 위에 서는 동안 어떻게 하면 배우가 배우답고 현명하고 겸손하게 잘 내려갈 수 있을지 고민해요. 늘 지향하는 바가 그랬어요. 감사하게도 크고 좋은 작품을 해왔기 때문에 필모그래피만 봤을 땐 욕심이 많은 배우라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뽑아주셨다는 감사함에 늘 영혼을 갈아 넣어 작품을 함께 하고 있어요. 결국 저는 연기 잘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연기 잘하는 게 배우로서의 목표지점이에요.”


‘잃어버린 얼굴 1895’는 조선시대 마지막 왕후인 명성황후의 이야기를 그린 가무극이다. 이 작품은 사진 찍기를 즐겼고 실제로 꽤 많은 사진을 남긴 고종과 달리, 단 한 장의 사진도 남기지 않은 명성황후의 흥미롭고 미스터리한 에피소드에 픽션을 더한 드라마를 통해 기존의 역사관과 다른 시선으로 인물을 톺아본다.

명성황후가 시해된 1895년 을미사변의 밤과 그를 둘러싼 주변인물, 정치적 세력 다툼을 새로운 관점으로 보여주며, 역사의 격동기,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투쟁했던 여성으로서의 명성황후에 주목한다. 명성황후의 잃어버린 사진을 찾아나서는 여정 속에, 관객들은 명성황후가 지닌 한 여성으로서의 아픔과 슬픔,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의 고민과 욕망 등을 마주하게 된다.

세 번째 도전을 하는 차지연은 초연과 재연에서 설움을 토해내고 쏟아냈던 연기가 아닌 삼연에서는 조금 담백한 모습을 보일 것이라 전했다. 그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인생의 경험도 많아져서 그런지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이 변화됐다. 짧지만 내 인생 역시 겪지 않아도 될 아픔도 겪었고 쉽지 않았다. 그렇게 39년을 지냈고 그 세월이 무대에 투영됐을 때 조금 더 담백해지더라. 쏟아내기보다 가슴으로 호흡으로 연기를 하게 되더라. 이번에 연습을 하며 담담하게 내뱉지만 드라마틱한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신비롭고 귀한 경험이었다. 이래서 연기는 참 매력이 있다”라고 말했다.

‘명성황후’는 우리 역사 속에서 가장 많은 논란을 낳은 인물 중 하나이고, 많은 매체에서 다뤄져 온 명성황후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조선판 잔 다르크’와 ‘나라를 망하게 한 악녀’로 극명하게 나뉜다. 이에 대해 차지연은 “이 작품을 하면서 ‘황후’, ‘국모’로서가 아닌 어린 나이에 중전이 돼야 했던 한 소녀로 바라보며 극에 임하고 있다”라며 “남편의 따뜻한 보살핌이나 사랑을 바라지만 굳이 떼쓰지 않고 참아내며 바라보는 한 여인, 시아버지의 냉대, 가족의 죽음 등 여러 사건에 휘말리는, 마치 한 떨기 꽃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을 그릴 것”이라고 말했다.

“‘잃어버린 얼굴 1895’가 가볍거나 시원한 웃음을 드릴 수 있는 작품은 아니지만 관객들과 배우들로 하여금 사고하고 생각하게 하는 작품인 것 같아요. 세상에 이런 작품이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대중적인 극에 익숙해진 분들이 한 번쯤 이 작품을 보러오셨으면 좋겠어요. 전통가무극에 역사적인 배경과 역사적인 인물들이 있고 상상력을 넘어선 세련됨을 갖고 있는 작품이니 꼭 보러 와주셨으면 좋겠어요.”


지난해 갑상선암 치료와 육아 등에 집중했던 차지연은 2월의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콘서트’, tvN ‘더블캐스팅’ 멘토로 출연했고 5월 모노극 ‘그라운디드’ 등으로 여느 때와 다름없는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 그는 “인생의 대부분을 무대에 있다 보니 자연스레 내 감정의 창구 역시 무대가 된 것 같다. 인물의 옷을 뒤집어쓰고 편안하게 감정을 쏟을 수 있는 곳이 무대밖에 없다”라며 “또 관객들의 에너지와 배우들의 에너지가 채워지는 이 공간이 내게 해방구나 다름없다”라며 더 열심히 공연에 매진할 것임을 약속했다.

“전 제가 지루하지 않은 배우가 됐으면 좋겠어요. 제가 모든 역을 완벽하게 할 수는 없겠지만 제 잠재된 가능성과 폭넓은 선택을 바라보며 작품을 시도해보고 싶어요. 언제나 기대감을 주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어요. 안과 밖이 탄탄한 멋진 예술가로 늙고 싶어요.”

‘잃어버린 얼굴 1895’는 7월 18일부터 26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된다.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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