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베이스볼] 양현종-박병호의 부진과 선수존중

입력 2020-07-22 14: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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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양현종(왼쪽), 키움 박병호. 스포츠동아DB

한여름에 더블헤더 경기가 펼쳐지던 오래전 어느 팀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 시즌 유난히 부진했던 베테랑 선수가 더블헤더 제1경기에 선발등판했다. 정말 잘해보려고 열심히 던졌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벤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일찍 강판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감독은 결과에 화가 났다. 평소 선수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않기로 유명했지만, 더위 때문인지 가는 말이 거칠었다. “발가락으로 던져도 그보다는 잘 던지겠다”고 면박을 줬다. 그렇지 않아도 자신의 투구와 결과에 화가 났던 베테랑 투수도 폭발했다. 그날 밤 감독에게 쳐들어갔다. 그리고 은퇴를 해버렸다. 충분히 선수생활을 더 할 수 있는 나이었지만, 자존심에 상처가 난 그 선수는 더 이상 유니폼에 미련이 없었다.

감독이 선수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던 프로야구 초창기다. 프리에이전트(FA) 제도가 생기기 전이라 입단 후에는 죽으나 사나 그 팀에서 버텨야 했던 때다. 감독과 구단에 밉보이면 선수생활이 힘들기에 지시를 하늘처럼 따랐다. 그러다보니 감독과 선수 사이에 필요한 상호존중의 미덕은 보이지 않았다. 때로는 서로 원한과 분노를 쌓아가며 경기를 했다.

요즘 KIA 타이거즈는 에이스 양현종의 부진이 아쉽다. 지난달 9일 수원 KT 위즈전 승리 이후 21일까지 6경기에서 3패다. 그 바람에 시즌성적은 5승5패, 평균자책점은 규정이닝을 채운 23명의 투수들 중 최하위인 6.31이다. 여기저기서 말들이 많지만 맷 윌리엄스 감독은 “특별한 이상은 없다. 우리의 신뢰는 100%다. 이번에 루틴을 조금 바꿨는데, 이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오랜 시간 좋은 모습을 꾸준히 보여줬으니 어려움을 해결하고 돌아올 것”이라고만 했다. 최대한 양현종을 배려하고 존중한다는 마음이 담겨있다.

키움 히어로즈 손혁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21일 잠실 두산 베어스전을 앞두고 박병호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이번 시즌 삼진 숫자가 더 많아지고 타율이 떨어진 이유를 전력분석팀에선 어떻게 보느냐”고 물었다. 손 감독은 “타격코치가 얘기를 해야 하는데”라고 운을 뗀 뒤 원인분석보다는 걱정이 담긴 얘기만 했다.

손 감독은 계속해서 “이전에는 타이밍이 조금 늦어서 파울이 많아졌는데, 지금은 박병호 선수에 관해서는 얘기를 하지 않으려고 한다. 본인도 4번타자로서 어떻게든 해보려고 밝은 표정으로 노력한다. 박병호 선수가 덕아웃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을 때 우리 팀은 활기가 넘쳤다. 야구를 하다보면 좋은 달과 좋은 시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며 지금의 어려움을 딛고 일어설 것이란 메시지를 주려고 노력했다. 한술 더 떠 인터뷰 후 구단 홍보책임자에게 “혹시 내 의도를 취재진이 잘못 표현하면 어떻게 하느냐”며 걱정도 했다.

누군가의 잘못과 문제를 지적하기는 쉽다. 하지만 그렇게 해야 할 때와 아닐 때를 감독은 잘 알아야 한다. 누구보다 화려한 경력을 쌓아온 베테랑들은 자부심으로 산다. 이런 선수들이 부진할 때 감독은 비난하고 지적하는 대신 배려하고 걱정하는 모습을 먼저 보여준다. 프로야구 초창기와 요즘 프로야구가 가장 크게 달라진 것들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선수존중의 정신이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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