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km 포심과 세리머니, 양현종은 부활의 조건을 다 보여줬다

입력 2020-08-11 22: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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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2020 신한은행 SOL KBO리그’ LG 트윈스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가 열렸다. 1회말 KIA 양현종이 마운드에 올라 역투하고 있다. 잠실|주현희 기자 teth1147@donga.com

양현종(32·KIA 타이거즈)은 10일까지 규정이닝을 채운 KBO리그 투수들 중 평균자책점(ERA) 최하위(5.92)였다.

지난 6시즌 동안(2014~2019시즌) 90승(51패)을 챙기며 지난해 ERA(2.29) 부문 타이틀까지 차지한 에이스다. 올 시즌 규정이닝을 채운 상황에서 5.92의 ERA는 양현종의 성적이라곤 상상조차 어려웠다.

11일 잠실 LG 트윈스전이 여러모로 더 중요했다. 지난주부터 3주간 8차례나 맞대결하는 일정인 데다, 엎치락뒤치락하는 두 팀의 순위를 고려하면 패배에 따른 충격이 팀으로서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주(4~6일) 홈 3연전에서 1승2패로 밀렸던 터라 이번에도 첫판을 내준다면 더욱 수세에 몰릴 수 있었다. 위기의 양현종은 팀의 운명까지 짊어지고 마운드에 올랐다.

기우에 불과했다. 양현종은 6이닝 5안타 1볼넷 8삼진 1실점의 호투로 팀의 8-4 승리를 이끌고 시즌 7승째(6패)를 따냈다. ERA도 5.62로 낮추며 이 부문 최하위에서 벗어났다.

기록보다도 양현종이 야구팬들에게 각인시켰던 그 모습이 나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포심패스트볼(46개)의 최고 구속은 150㎞를 찍었다. 슬라이더(18개), 체인지업(22개), 커브(6개) 등 변화구를 모두 결정구로 활용하며 LG 타자들을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가장 눈에 띈 장면은 파워히터 로베르토 라모스와 3차례 승부에서 모두 삼진을 솎아낸 것이다. 2회 첫 타석에선 시속 124㎞ 커브로 타이밍을 빼앗았고, 4회(시속 148㎞)와 6회(146㎞)에는 강력한 포심으로 이겨냈다. 파워히터와 힘으로 맞붙어 이겨냈다는 점은 구위에 확신이 선다는 뜻이라 시사하는 바가 크다.

6회를 실점 없이 막아낸 뒤 덕아웃으로 향하며 주먹을 불끈 쥐고 팬들을 향해 박수를 유도한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2017년 한국시리즈 2차전을 떠올리게 했다. 3루측 관중석에 자리 잡은 KIA 팬들은 이날 가장 뜨거운 박수로 양현종을 안아줬다. 입장 관객 비율을 기존의 10%에서 25%로 올린 첫날이었던 까닭에 이전보다 더 큰 함성을 들을 수 있었다.

의미 있는 기록도 2개나 완성했다. 2-1로 앞선 3회 1사 1루서 홍창기를 헛스윙 삼진(시속 129㎞ 슬라이더)으로 돌려세우며 개인통산 1900이닝(역대 9번째)을 채웠다.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2012년을 제외한 매 시즌 100이닝 이상을 소화하며 꾸준함을 보여준 덕분에 얻은 또 하나의 훈장이다. 현역 투수들 중에선 장원준(두산 베어스·1917.2이닝), 윤성환(삼성 라이온즈·1908.1이닝), 양현종의 3명만이 보유한 기록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4회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라모스를 헛스윙 삼진으로 잡고 역대 5번째로 개인통산 1600탈삼진의 이정표도 세웠다. 양현종에 앞서 1600탈삼진을 돌파한 투수는 송진우(2128개), 이강철(1749개), 선동열(1698개), 정민철(1661개)이다. 이들의 이름값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이제 양현종은 KBO리그를 호령하는 ‘살아있는 전설’이다.

양현종은 경기 후 “포심이 가장 좋았다.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포심이 나왔다. 힘이 있었다. 포수 미트를 차고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며 “오늘은 아무 생각 없이 포수(김민식)의 사인만 보고 던졌다”고 돌아봤다. 1600탈삼진 기록에 대해서도 “숫자보다도 엄청난 선배들과 함께 이름이 거론되는 것 자체가 영광이다. 부모님께서 좋은 몸을 물려주신 덕분이다. 기록을 세울 때마다 늘 가족에게 고맙다”고 밝혔다.

잠실|강산 기자 posterbo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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