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민지, “1승 밖에 못하는 선수? 이젠 우승 욕심내겠다”

입력 2020-09-10 09: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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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지. 사진제공 | KLPGA

박민지. 사진제공 | KLPGA

신인이던 2017년부터 올해까지 매년 꼬박꼬박 1승씩 챙겼다. 이번 시즌 성적도 빼어나다. 9개 대회에 출전해 9번 모두 컷을 통과했다. 톱10에 6번 이름을 올렸고, 그 중 4번은 톱5 안에 들었다. 최근 열린 대유위니아 MBN여자오픈에선 통산 4승을 달성했다. 대상포인트 (244점) 3위, 상금(4억300만 원) 3위, 평균타수(69.1875) 2위로 3개 주요 타이틀 모두 톱3 안에 자리했다. ‘최우수선수(MVP)급 활약’이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그러나 정작 주인공은 성에 차지 않는 듯 했다. 주변에선 ‘꾸준함의 대명사’라고 칭찬하지만 “‘쟤는 매년 1승 밖에 못해’라는 말은 더 이상 듣기 싫다. 그래서 나를 더 채찍질하고 있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휴식기에도 부지런히 연습 라운딩과 홈 트레이닝을 하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재개를 기다리고 있는 박민지(22·NH투자증권)와 10일 전화 인터뷰를 가졌다.

● 100점이 아닌 80점인 이유
현재까지 자신의 이번 시즌에 대해 “굉장히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자부심을 드러낸 박민지는 “점수로 평가한다면 100점 만점에 80점”이라고 했다. 왜 20점이 부족할까. “올해 성적을 돌아보면 한 번 잘하고, 그 다음 못 하고, 잘하고 또 느슨해지고 그런 면이 있었던 것 같다. 멘탈을 더 강하게 키워야할 것 같아 20점은 뺐다”고 설명했다.

스스로 100% 만족하진 못하지만 누구나 부러워할 만큼 매년 꾸준한 성적을 거두고 있는 것도 사실. “고교시절부터 ‘지난해보다 나아진 올해 모습’을 매년 목표로 삼았다. 2학년 올라가면서 상비군이 됐고, 3학년이 되면서 국가대표가 됐다. 프로에 와서도 상금 랭킹이 해마다 조금씩 올라갔다”며 “매년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그것이 꾸준함의 비결이라면 비결인 것 같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잠시 뜸을 들인 뒤 한마디 곁들였다. “하지만 돌아보면 조금 밋밋했다. 좀 더 화려한 성적을 내지 못해 아쉽다. 언젠가 ‘쟤는 매년 1승 밖에 못 해’ 이런 댓글을 본 적이 있다. 더 이상 그런 얘기는 듣고 싶지 않다.”

● 헌신하신 부모님을 위해
8월 MBN여자오픈에서 우승한 뒤 “아빠 차를 일시불로 바꿔드리고 싶다”고 말해 화제를 뿌렸던 그는 얼마 전 이 약속을 지켰다. “아빠 차가 내가 골프를 시작할 때 타기 시작한 차로 정말 오래됐다. 급발진이 걱정될 정도로 때론 겁이 났다. 우승하고 나서 진짜로 일시불로 계약했다”며 뿌듯해했다.

아울러 “금전적인 것도 물론 있지만, 그보다도 내가 골프를 시작한 뒤 부모님께서는 당신들의 인생을 거의 갖다 바치듯이 내 뒷바라지를 해 주셨다. 그래서 난 더 골프를 잘해야만 한다”고 했다. 남다른 마음가짐이 느껴졌다. ‘효녀일 것 같다’고 하자 “아니다. 못됐다. 선수생활하다 보면 예민해지기도 하고 그래서 부모님께 못할 때가 많다. 짜증도 내고, 못되게도 하고 그렇다”고 했다. 전혀 ‘못된 딸’ 같지 않았지만, 미처 직접 고백하지 못했던 부모님에 대한 죄송한 마음도 어느 정도 담겨있는 듯 했다.



● 닮고 싶은 선수는 ‘효주 언니’
초등학교 5학년 때 골프를 시작한 박민지는 한때 폼도 거칠고 보완해야 할 게 많았다. “내 스윙이 마음에 들지 않아 한동안 스윙 동영상을 잘 찍지 않았다”며 “그런데 요즘 찍은 동영상을 보면 예전보다 훨씬 다음어지고 만족스러워졌다. 스윙 코치님의 가르침, 내 노력 등 모든 게 다 좋은 영향이 돼서 그런 것 같다”고 돌아봤다.

박민지를 아는 사람들은 “누구보다 훈련량이 많은 선수”라고 말한다. 현재에 안주하는 대신 ‘더 채찍질 하겠다’고 하는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평소 “아주 특별한 장점이 없는 게 단점이고, 그렇다고 뚜렷하게 못 하는 게 없는 게 장점”이라고 말하는 그는 임희정(20·한화큐셀)의 퍼터 실력과 김효주(25·롯데)의 ‘모든 것’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희정이는 기본을 잘 지키면서 퍼터를 너무 잘 한다. 옆에서 연습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쳐다보게 된다. 효주 언니는 함께 플레이할 때 보면 샷, 숏게임, 퍼터 모두 못 하는 게 없다. 퍼터도 거침없이 치고 싶은대로 치는 것 같은데 그냥 다 들어갈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 앞으로 2승, 3승…. 더 우승하고 싶다
어머니는 여자핸드볼 국가대표 출신인 김옥화(62) 씨다. 1984년 LA올림픽에서 한국 핸드볼 사상 최초의 준우승을 일군 주역 중 한 명이다. 탁월한 운동 DNA 뿐만 아니라 ‘악바리 근성’도 물려받았다는 평가를 듣는다. “나도 동감한다. 그런데 내가 엄마보다 더 사나우면 사나웠지 순하지 않다. 엄마가 어렸을 때부터 운동선수가 가져야 할 태도 등에 대해 ‘주입식 교육’을 많이 시켜주셔 그런 것을 보고 자라서인 것 같다”며 웃었다.

스스로 ‘사납다’는 표현을 썼지만 어쩌면 한 계단 더 올라서기 위해 자신에게 주문을 걸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다음 말을 듣고서였다.

“MBN여자오픈에서 다시 우승하기 전까지 챔피언조에서 마지막 날 경기를 할 때면 ‘마음 비우고 내려놓고 치겠다’,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 사실 맞는 말인데, 나한테는 오히려 그게 독이 됐던 것 같다. 안정적인 플레이만 하게 되고, 정신도 해이해지고. ‘우승은 내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니 최종라운드에서 잘 해야 이븐파, 1언더파 밖에 치지 못했다.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어도 마음대로 안 되는 게 골프인데…. 그래서 이번에 우승할 때는 욕심을 냈고, 욕심을 내니 좀 더 공격적으로 칠 수 있었다. 앞으로는 우승에 더 큰 욕심을 내려고 한다. 이번 하반기엔 2승, 3승 꼭 더 우승할 수 있도록 하겠다.”

김도헌 기자 dohone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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