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의 여인’이 된 ‘기적의 여인’ 이미림

입력 2020-09-14 13: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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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림.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이보다 극적인 드라마가 또 있을까.

하루에 하나도 쉽지 않다는 칩샷이 3개나 들어갔다. 칩인 버디 2개로 한껏 분위기를 끌어올리더니 선두에 2타 뒤진 마지막 18번(파5) 홀에서 칩인 이글로 공동 선두로 뛰어올랐다. 누군가의 표현처럼 마치 온 우주의 기운이 그를 감싸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셋이 함께 한 연장전. 이미 주인공은 정해진 분위기였다. 버디로 챔피언 퍼트를 장식한 뒤 “나도 믿기지 않는다. ‘내가 미쳤구나’ 생각이 든다”면서 감격의 눈물을 터뜨렸다.

이미림(30·NH투자증권)이 14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란초 미라지의 미션힐스 컨트리클럽(파72)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시즌 두 번째 메이저대회 ANA 인스퍼레이션(총상금 310만 달러·37억 원) 최종 4라운드에서 극적인 역전 드라마를 연출하며 챔피언에 올랐다. 이글 1개와 버디 4개, 보기 1개를 묶어 5언더파 67타를 쳐 나흘간 합계 15언더파 273타로 넬리 코다(미국), 브룩 헨더슨(캐나다)과 함께 공동 선두그룹을 형성한 뒤 1차 연장에서 유일하게 버디를 잡아 우승상금 46만5000달러(5억5000만 원)의 주인공이 됐다.

● 기적의 칩인 이글, 연장으로 이끌다
공동 1위 코다, 헨더슨에 2타 뒤진 공동 3위로 4라운드를 시작한 이미림은 2번(파5) 홀에서 1타를 줄인 뒤 6번(파4) 홀에서 칩인 버디에 성공하며 기적의 서막을 열었다. 그린 주변의 오르막 칩샷이 홀컵에 떨어졌다. 이 때만 해도 ‘가끔 일어나는 일’이었다. 12번(파4) 홀에서 다시 버디를 잡은 이미림은 16번(파4) 홀에서 또 한번 칩인 버디에 성공했다. 6번 홀보다 조금 더 먼거리의 칩샷이 들어갔다. 두 개의 칩인 버디는 ‘보기 드문 일’이었다. 그리고 17번(파3) 홀에서 보기로 뒷걸음질치며 운이 다한 듯 했다. 18번 홀에 섰을 때, 바로 뒤에서 플레이하고 있는 챔피언조의 코다와는 2타 차였다. 게다가 온그린을 노린 두 번째 샷은 그린을 훌쩍 넘겨 펜스 근처에 떨어졌다. 홀컵에 붙여 버디를 잡고 다음 조의 코다가 보기를 하길 바라는 게 최상의 시나리오처럼 느껴지던 그 순간, 이번에는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내리막 칩샷은 잠시 허공에 떴다 그린에서 두 번 정도 튀긴 후 데굴데굴 굴러가다 깃대를 맞고 그대로 홀컵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칩인 버디 2개에 이은 칩인 이글. 정규라운드 72홀 동안 단 한번도 선두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던 이미림은 기적처럼 마지막 홀에서 코다와 15언더파 동률이 된 채 먼저 경기를 마쳤다. 코다는 18번 홀 파로 타수를 줄이지 못했고, 1타 뒤졌던 헨더슨이 버디를 잡으며 3명 플레이오프가 성사됐다.
● ‘약속의 18번 홀’, 승자는 이번에도 이미림
기적의 칩인 이글을 성공시켰던 18번 홀에서 진행된 연장전. 셋 모두 세 번째 샷을 그린에 올렸다. 이제는 퍼트 대결. 가장 먼 거리의 코다가 약 6m 거리에서 버디를 노렸지만 홀컵을 지나쳤고, 이어 헨더슨의 퍼트도 홀컵을 살짝 빗나갔다. 이미림이 성공하면 우승, 실패하면 2차 연장으로 가야하는 상황. ‘기적의 여인’은 약 2m 거리의 퍼트를 홀컵에 떨어뜨리며 마침내 짜릿한 역전 우승을 완성했다.

2014년 LPGA 투어에 데뷔한 뒤 2017년 기아 클래식 이후 우승 기쁨을 누리지 못했던 이미림은 기적같은 드라마로 생애 첫 메이저 타이틀을 손에 넣으며 통산 4승에 입맞춤했다. 월마트 NW 아칸소 챔피언십을 비롯해 올해 나선 두 번 대회에서 모두 컷 탈락하는 등 오랜 시간 시련을 겪었던 그는 우승 직후 뜨거운 눈물을 쏟았고, 대회 전통에 따라 ‘포피스 폰드’에 뛰어들며 ‘2020년 호수의 여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김도헌 기자 dohone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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