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피플] 스스로 향한 믿음도 거둔 순간, 김동엽의 야구가 다시 시작됐다

입력 2020-09-16 11: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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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김동엽. 스포츠동아DB

기대만큼 실망도 컸다. 외부에서도 아쉬움의 목소리가 많았지만 정작 선수 본인이 가장 상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더 이상 잃을 게 없었다. 바로 그때부터 김동엽(30·삼성 라이온즈)이 자신을 둘러싼 껍질을 깨기 시작했다.

김동엽은 2019시즌을 앞두고 삼성, SK 와이번스, 키움 히어로즈간 삼각 트레이드로 삼성 유니폼을 입었다. SK에서 2017년부터 2년간 49홈런을 때려내며 ‘역대급 홈런군단’에 힘을 보탰기에 거포 기근에 시달리던 삼성에서 해결사 역할을 기대 받았다. 타고난 힘은 어느 외국인타자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기 때문에 잠재력을 폭발시키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으로 여겨졌다.

뚜껑을 열자 모두의 예상이 틀렸다. 김동엽은 지난해 60경기에서 타율 0.215, 6홈런, OPS(출루율+장타율) 0.604를 기록했다. 커리어 로우. 최고의 한 해를 기대했지만 최악의 한 해라는 결과가 돌아온 것이다. 지난해 공인구 반발계수 조정으로 대부분의 거포들이 힘을 잃었지만 추락의 폭은 유독 컸다.

김동엽의 2019년에 가장 실망한 이는 김동엽이었다. 자신감은 물론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도 떨어졌다. 스스로의 표현처럼 “잃을 게 더 없다”는 생각이 들 법도 했다. 벼랑 끝에서 그저 묵묵히 자신의 루틴대로 2020년 반전을 준비했다. 레그 킥, 오픈 스탠스 등 할 수 있는 건 모두 해봤다. 자신에게 100% 맞는 폼을 찾기 위해서다.

결과는 대박이다. 김동엽은 15일까지 78경기에서 타율 0.307, 12홈런, 44타점을 기록했다. 표본이 적긴 하지만 9월 이후로 한정하면 11경기에서 타율 0.472, 3홈런, 9타점, OPS 1.236의 맹타다. 9월 이후 리그 타율, OPS 1위가 김동엽이다. 8월(19경기 타율 0.356)부터 시작된 콘택트의 반전은 9월 완전히 만개했다. 스스로 꼽은 변화의 지점은 8월 15~16일 대전 한화 이글스전 연속경기 홈런. 그때 얻은 자신감은 지금까지 김동엽의 동력이다.

생각이 많으면 막상 그라운드 위에서 스스로 함정을 파게 될 가능성이 높다. 김동엽은 “타고난 성격 자체가 생각이 많다. 평생 고쳐지진 않을 것 같다”면서도 “연습량을 늘려 생각을 덜하고 있다”고 밝혔다. 몸을 고되게 만들어 잡생각을 줄이겠다는 일종의 극약처방이다. 김동엽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부정적 생각은 대부분 사라졌다. 이제 하루이틀쯤 무안타로 흔들리지 않을 심지까지 굳어져간다. 생각이 많은 것이 마냥 나쁘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지금의 김동엽이라면 그 머릿속을 충분히 긍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채울 수 있을 듯하다.

수원 |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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