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지지 않는 열풍’, 나훈아 인생의 다섯 장면

입력 2020-10-06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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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나훈아. 사진제공|예아라예소리

무역상인 아들로 출생…1976년 김지미와 결혼
사이다병 테러·여배우 염문설 등 상처 이기고
올해 새 앨범·‘대한민국 어게인’…다시 신드롬
노래의 힘이었다. 세상의 흥을 북돋우는 광대로서 최고의 찬사와 사랑을 받아 왔다. 하지만 삶은 굴곡의 세월이기도 했다. 구불구불한 시간을 지나오며 그래도 이제 새로운 추억이 되었다. 9월30일 KBS 2TV ‘2020 한가위 대기획-대한민국 어게인’을 통해 추석 연휴 큰 화제를 모은 가수 나훈아(73). 오랜 시간 그를 아껴온 중장년 이상 연령층 팬들은 물론 10대부터 30대까지 젊은이들의 시선까지 사로잡았다. 온라인상 검색을 통해 그의 노래와 삶을 좀 더 듣고 들여다보려는 이들이 늘어가고 있다. 걸어온 인생길 사이사이 그가 겪은 중요한 사건을 노랫말로 다시 돌아보는 것도 그 까닭이다.

그리워진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홍시
나훈아는 1947년 2월11일 “부산 동구 초량2동 415번지 7통 3반”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최홍기다. 선원이자 무역상인 아버지가 이끄는 평범한 집안에서 자라났다. 부산 대동중에서 야구선수로 활약했다. 1982년 4월28일자 동아일보는 그가 어린 시절 “부산경남 지역 음악콩쿠르에서 항상 입상했다”면서 “국어나 영어, 수학은 항상 90점 이상을 받았”다고 썼다. 이어 “서울 갈 욕심에 바짝 긴장을 했더니 졸업반 전체에서 5등을 해 서울(서라벌고)에 진학할 수 있도록 원서를 받아냈다”는 후문도 들려준다.

아버지의 반대로 일찍부터 꿈꿔온 가수로 나서지 못한 그는 한동훈 작곡가의 사무실을 드나들다 심형섭 작곡가의 눈에 들었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오아시스 레코드사에서 “청소도 하고 레코드도 나르고 밤이면 책상을 붙여놓고 자곤 했었다”는 그는 “대단한 의욕으로 이를 악물고 있었”다. 1966년 ‘천리길’을 거쳐 이듬해 여름 ‘사랑은 눈물의 씨앗’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1972년 6월4일 서울시민회관 무대에서 피습당한 뒤 모습.


아무도 찾지 않는 바람 부는 언덕에…잡초
한창 인기를 구가하던 그는 1972년 6월4일 밤 서울 태평로 시민회관(현 서울시의회 건물) 공연에 나섰다 “갑작스레 뛰어든 괴한으로부터 왼쪽 얼굴에 깨진 사이다병”으로 테러를 당했다. 가해자 20대 김모씨는 구속에서 풀려나 2년 뒤 남진으로부터 사주 받아 저지른 범행이라 폭로하겠다며 협박해 다시 경찰에 붙잡혔다. 당시 나훈아와 라이벌 관계였던 남진은 이 때문에 악성루머에 오랜 시간 시달려야 했다. 남진은 지난해 6월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김씨가 “고 신성일 선배에게 제일 먼저 갔고 저한테 왔다”면서 해명했다. 나훈아는 당시 사건의 상처를 딛고 ‘잡초’와도 같은 강인함으로 다시 무대에 섰다.

1980년대 초반 김지미(오른쪽)와 다정한 포즈를 취했다.


눈 내리는 겨울날엔 내 가슴은 불이 되리라…사랑
나훈아는 열정적인 사랑에도 빠졌다. 1976년 7월 당대 최고의 배우 김지미와 교제 중인 사실을 고백했다. 당시 나이 서른. 일곱 살 연상의 김지미와 1972년 한 공연을 통해 만나 사랑의 끈을 이었다. 당시로서는 흔치 않은 ‘연상연하’라는 파격적 이미지까지 더해져 두 사람의 사랑은 장안의 큰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1982년 결별하고 만다. 5월4일 나훈아는 “오전 11시20분 기자회견을 열고 6년간 사실혼 관계에 있던 영화배우 김지미와 헤어지기로 결심했다고 정식으로 밝혔다”고 동아일보는 전했다. 김지미와 사랑하면서 “그만두었던 가요 활동을 지난 연말 본격으로 재개하면서 생활이 불규칙해져” 갈등해왔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2008년 1월25일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그랜드 힐튼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연 나훈아. 스포츠동아DB


가진 것은 없어도 비굴하진 않았다…사내
나훈아는 2007년 난데없는 악성루머에 휩싸였다. ‘여배우 염문설’부터 ‘일본 폭력조직으로부터 폭행 당했다’는 등 갖은 흉흉한 소문이 그를 괴롭혔다. 1년 전 공연을 끝내고 한동안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탓이었다.

결국 그는 2008년 1월25일 오전 11시 서울 홍은동 그랜드 힐튼 호텔에서 루머에 맞서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무려 700여 취재진이 몰려들 만큼 세간의 시선을 집중시킨 그는 56분 동안 때론 분노하며, 때론 타이르듯 조근한 목소리로 루머가 사실이 아님을 알렸다. 그는 후배 여배우들이 ”엉망진창이 된 상황에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려고 나서게 됐다. (루머는)사람을 죽이는 일이다”고 역설했다. 특히 폭행 피해 루머와 관련해서는 테이블 위로 올라 바지 지퍼를 내리려는 모습으로 떳떳함을 강조해 팬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올해 추석 연휴 최대 화제를 모은 KBS 2TV ‘대한민국 어게인’ 포스터. 사진제공|KBS



아픔을 그 웃음에 묻는다…테스형!
나훈아의 침묵은 올해 추석 연휴, 엄청난 폭발력으로 깨졌다. ‘대한민국 어게인’을 무대 삼아 강인하고 열정적인 매너로 세상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는 “왕이나 대통령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나라를 누가 지켰나하면 바로 국민 여러분들이다”면서 감염병 고개를 힘겹게 넘고 있는 대중을 위로했다. 앞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3억원을 내놓기도 했다. 여전히 서야 할 무대가 많으며, 불러야 할 노래 역시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몸으로 보여줬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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