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박찬호(왼쪽)-KT 심우준. 스포츠동아DB
유격수로 1000이닝 이상을 소화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큰 의미를 지닌다. 유격수는 수비 부담이 상당한 포지션이다. 내야의 사령관이자 센터라인(포수~2루수·유격수~중견수)의 핵이다. 한 번 자리 잡으면 장수할 수 있는 자리지만, 엄청난 부담감 탓에 포지션을 옮기는 사례도 적지 않다. 데뷔 이후 처음 ‘1000이닝 유격수’로 등극한 25세 동갑내기 박찬호(KIA 타이거즈)와 심우준(KT 위즈)에게도 눈길이 가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둘의 타격 성적을 살펴보면 1000이닝의 가치는 더 올라간다. 공교롭게도 박찬호와 심우준의 타율은 규정타석을 채운 52명 중 뒤에서 1·2위다. 심우준은 0.228(430타수 98안타), 박찬호는 0.233(433타수 101안타)이다. 출루율도 마찬가지. 심우준이 0.285, 박찬호가 0.286으로 3할이 채 되지 않는다. 역시 뒤에서 1·2위다. 그럼에도 내야 수비의 핵인 유격수로 1000이닝 넘게 뛰었다는 것은 그만큼 안정감을 지녔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1044.1이닝을 소화한 박찬호는 공격에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도 수비에서 흔들림을 최소화했다. 시즌 초반에는 타격부진이 수비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지만, 이 또한 성장과정의 일부였다. 총 441차례 타구 처리 기회에서 실책 13개를 포함해 타구처리율 88.9%(내야안타 33개·야수선택 3개)를 기록했다. 지난해 3루수로 692이닝, 유격수로 379.1이닝을 기록한 뒤 첫 풀타임 유격수로 시즌을 치르고 있음을 고려하면 합격점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특히 62.5%(72시도·45성공)의 병살타 처리율은 오지환(62.1%), 마차도(59.7%)보다 높다. 선수시절 공·수를 겸비한 3루수로 인정받은 맷 윌리엄스 KIA 감독이 그를 믿고 기용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심우준은 이강철 KT 감독 부임 이후 유격수로 포지션을 굳혔다. 지난해 유격수로 976.1이닝(9실책)을 소화하면서도 유사시에는 3루수(32.1이닝)로 나섰지만, 올해는 오롯이 유격수에만 전념하고 있다. 어려운 타구를 처리하는 과정도 과거와 비교해 몰라보게 유연해졌다. 1041이닝을 소화하며 490차례 수비 기회에서 실책 17개를 포함해 타구처리율 89.2%(내야안타 36개)를 기록했다. 이 감독도 “심우준은 타격부진을 상쇄할 정도의 수비력을 지녔다. 어떻게든 끌고 가야 하는 선수”라며 기를 살려줬다.
둘 다 타격부진과 임팩트가 큰 실책에 따른 비난에 마음고생을 했다. 그러나 이는 팀의 붙박이 유격수로 성장하는 과정의 일부다. ‘1000이닝 유격수’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영광이 아니다. 부상 없이 꾸준한 안정감을 보이며 팀에서 인정받아야만 가능한 훈장이다. 충분히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
강산 기자 posterb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