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박지선, 아픔마저 개그 소재…그녀는 ‘슬픈 피에로’였다

입력 2020-11-04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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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갑자기 세상을 떠난 개그맨 박지선에 대한 추모가 이틀째 계속되고 있다. 사진은 고인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시 양천구 이대목동병원장례식장.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제가 못생겼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유니크하게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개그맨들 웃음 위해서 고통 감내
정형돈·정찬우 등 공황장애 앓아
박지선도 피부병 때문에 큰 아픔
동료들 장례식장 찾아 아픔 공감
“저는 제가 못생겼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유니크하게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 완벽한 생얼입니다. 고등학교 때 피부과에서 오진을 해서 박피를 6번이나 했어요. 너무 아파서 고등학교 신분으로 휴학을 했고, 대학교 때 재발해 얼굴에 아무 것도 바르지 못하게 됐어요.”

2일 세상을 떠난 개그맨 박지선(36)이 2015년 5월 ‘청춘페스티벌’에서 강연한 내용이다. 그는 햇빛 알레르기 등 극심한 피부 질환을 앓아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 탓에 분장과 메이크업을 전혀 하지 못한 채 무대에 오르며 일상을 살아왔다. 하지만 이마저도 특유의 낙천성으로 받아들였다. 2008년 우수상을 안겨준 KBS 연예대상 시상식에서 “20대 여성으로서 화장을 하지 못하는 것보다 개그우먼으로서 분장을 하지 못해 더 웃기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는 개그맨이 되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속으로 속으로 앓는 개그맨들”
이를 개그 소재로 삼았다는 시선도 나오지만 결국 고인이 생전 감내해야 했던 고통이었음을, 그가 세상을 떠나고서야 사람들은 알게 됐다. 2일 “딸이 평소 앓아온 피부병 때문에 힘들어했다”는 취지의 내용을 담아 그와 함께 생을 마감한 모친이 남긴 메모도 이를 가리킨다.

이는 대중에게 웃음을 안겨주기 위해 늘 고민하는 정신적 스트레스 속에서 많은 개그맨이 눈에 보이지 않는 아픔을 감당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방송관계자들은 말한다. 실제로 정형돈, 정찬우 등 개그맨들이 공황장애 등 질환을 앓아 방송활동을 중단하거나 고통받아왔다.

3일 한 방송관계자는 “작가나 작곡가 등 창작전문가들의 활동에 힘입는 방송연예계 다른 분야와 달리 개그맨들은 유머코드와 웃음의 소재를 찾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면서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상당하지만 분야의 속성상 이를 드러내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그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내면의 아픔을 주변에서 관심으로 보듬어주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슬픔으로 되새김되는 고인의 말

박지선의 급작스럽고 안타까운 사망 소식에 적지 않은 개그맨들이 SNS를 통해 슬픔을 드러내거나 빈소를 찾아 눈물을 거두지 못하는 것도 그런 아픔에 대한 공감이라고 관계자는 바라봤다. 그의 말처럼 박지선이 5일 오전 7시 발인을 거쳐 경기도 고양시 벽제승화원에서 영면에 들어가는 길에서 많은 개그맨이 그를 배웅할 것으로 보인다.

2일 고인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시 양천구 이대목동병원 장례식장에는 3일 오후까지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 유재석, 송은이, 김숙, 박성광, 신봉선, 오지헌, 유세윤, 장도연, 장영란 등 개그맨들이 추모의 발길을 이었다. 또 김준호, 김대희, 박명수, 홍현희 등 또 다른 동료들과 걸그룹 레인보우, 그룹 하이라이트와 어반자카파 등이 보낸 조화가 주변을 지켰다.

“일반적으로 못생겼다. 뭐 같이 생겼다. 보기 싫다. 그런 말을 많이 듣는데 개그집단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해주는 거예요. 우리 집단이 긍정적인 얘기를 많이 해주니 자연스레 자존감이 올라갔죠.”

‘청춘페스티벌’ 무대에서 남긴 박지선의 자부심은 이제 팬들과 동료들의 슬픔 속에서 되새김되고 있다.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길 원하잖아요. 나 자신조차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날 사랑해주겠어요? 여러분도 그러셨으면 좋겠어요.”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유지혜 기자 yjh030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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