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흥국생명 ‘현실 자매’의 모습과 이다영의 딜레마

입력 2020-11-04 1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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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V리그 여자부 최고의 흥행카드는 흥국생명-현대건설의 경기였다. 2명뿐인 박미희(흥국생명)-이도희(현대건설) 여성 감독의 지략 싸움에 더해 네트를 사이에 둔 이재영-다영 쌍둥이 자매의 대결 장면에 많은 배구팬들이 흥미를 느꼈다.

지난 시즌 시청률 톱10 경기에 흥국생명-현대건설의 매치업은 무려 4경기가 들었다. 그래서 이번 시즌을 앞두고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쌍둥이 자매가 흥국생명으로 뭉치면서 V리그의 볼거리가 줄어든 것을 걱정한 이들도 꽤 있었다.

하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새로운 볼거리가 생겼다. 3일 현대건설-흥국생명의 2020~2021시즌 첫 맞대결에서 두 선수는 코트에서 ‘현실 자매’의 모습을 보여줬다. 2세트 13-9로 흥국생명이 앞선 가운데 이재영의 리바운드 플레이가 현대건설의 블로킹에 걸렸다. 가까이 있던 이다영이 공격 커버를 해주지 않는 바람에 실점했다. 많은 감독들이 강조하는 부분이 바로 공격 커버다. “평소에는 동료를 무조건 믿어야 하지만, 공격 때만큼은 동료를 의심하고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커버를 해줘야 한다”는 말을 방송 해설가들도 자주 한다.

그러나 이다영은 그 순간 언니를 너무 믿었다. 이것이 아쉬웠던지 이재영은 블로킹 차단 후 동생에게 “커버”를 얘기했다. 흥국생명의 타임아웃 뒤 코트로 되돌아가면서도 언니는 또 한번 동생에게 “커버, 커버”를 말하는 장면이 중계화면에 잡혔다. 그냥 동료였다면 한 번으로 끝났겠지만, 가족이기에 그랬을 것이다. 현실 자매의 모습을 보여준 상징적 장면이다.

이재영은 이번 시즌 동생과 같은 팀에서 뛰는 느낌을 묻자 “대화가 잘 되면서도 단절될 때가 있다”고 명쾌하게 표현했다. 누구보다 마음이 잘 통하는 자매이기에 좋을 때는 세상 누구보다 얘기가 잘 되다가도 경기에서 나오는 상황 탓에 때로는 더 불편해진다는 의미다. 이럴 때 타인이라면 서로의 감정을 숨기고 넘어가겠지만, 가족이기에 서운한 마음이 더 오래 남아 아예 대화를 하지 않을 때도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지금 이다영은 흥국생명으로 팀을 옮긴 뒤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직은 공격수와 호흡이 100%는 아니다. 선배 김연경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조금 더 가다듬어야 할 필요가 있다. 공격수는 자기만의 스피드와 높이 스타일이 있어서 (세터가) 이를 바르게 판단하고 올려줘야 하는데, 세터와 공격수가 서로 발전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이다영의 입장에서 보면 챙겨줘야 할 3명의 윙 공격수를 놓고 잘 선택해야 하는 굉장히 어려운 과제다. 이 판단의 결과가 좋지 못하면 모두가 서운해지고, 자칫 팀의 승패에도 영향을 미치기에 지금 이다영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베테랑이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이제 7년차다. 내 뜻대로 따르라고 마음대로 공을 분배할 위치는 아직 아니다.

게다가 흥국생명의 윙 공격수들은 보통의 선수들이 아니다. 코트에선 누구보다 욕심과 자부심이 많은 선수들이다. 이들을 모두 만족시켜줘야 하는 흥국생명의 세터는 결코 쉽지 않은 자리다. 흥국생명의 4연승 동안 이재영이 2차례, 루시아가 1차례, 김연경이 1차례 경기를 끝내는 점수를 냈다. 지금까지는 이다영이 이들 모두를 만족시키는 배분을 했다는 얘기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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