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장현의 피버피치] ‘컨펌’ 없는 문화, 포항 축구는 특별해

입력 2020-11-13 06:3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포항 김기동 감독.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여기는 ‘컨펌(Confirm·확인하다)’ 작업이 없어요.”

K리그1(1부) 포항 스틸러스 직원들에게 고유의 ‘특별함’이 무엇이냐고 묻자 주저 없이 나온 대답이다.

어떤 작업을 위해 윗선의 결재를 받고, 과정마저 길어져 타이밍을 놓치기 일쑤인 것이 대부분의 조직들이 안고 있는 어려움이다. 그런데 포항은 다르다. 실무진이 구상한 작업을 담당자가 먼저 진행한 뒤 추후 보고하는 시스템에 가깝다. 조직원들의 사기와 업무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함이란다.

기업구단이라고 해서 기업문화에 젖으면 곤란하다고 이들은 이야기한다. 스타트업 회사처럼 작지만 단단하고 역동적인 조직을 지향한다. 그러다보니 구단이 항상 살아 숨쉰다. 그 속에 크고 작은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업무 만족도는 타 구단들보다 높은 편이다.

단단한 사무국은 탄탄한 팀을 만들었다. 김기동 감독이 이끄는 포항축구의 핵심은 창의성이다. 그라운드에선 스타플레이어든 신인이든 모두 주인공이다. 경기가 시작되면 철저히 선수들에게 맡긴다. 사전 약속된 패턴 플레이, 시나리오별 작전이 있지만 그 틀에 얽매이지 않는다.

우승경쟁을 펼치는 강호들의 덜미를 낚아채고, 불의의 퇴장이 나와도 꼬리를 내리지 않는, 그래서 지고 있어도 왠지 패하지 않을 것 같은 매력적 축구를 한다. 전북 현대, 울산 현대에 이은 리그 3위의 성적이 더 인상적으로 보이는 이유다.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경기장 밖의 일상도 마찬가지다. 포항 벤치는 선수들의 사생활을 철저히 존중한다. “일상을 충분히 누리되, 프로답게 일(축구)을 준비하는 과정과 실전에 충실하라”는 것이 김 감독의 지론이다.

K리그 구성원들에게도 포항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12개 구단 동료 감독·선수(주장)·미디어의 투표로 선정한 ‘K리그1 감독상’에서 김 감독은 선수들에게 5표, 미디어에게 52표를 얻어 수상의 영광을 누렸다. 3위 팀에서 ‘감독상’이 나온 것은 역대 최초다. 여기에 젊은 윙 포워드 송민규가 ‘영플레이어상’을 받았다. K리그1 베스트11에도 3명(강상우·팔로세비치·일류첸코)이나 이름을 올렸다.

사실 포항의 살림살이는 빡빡하다. 모기업(포스코)의 지원금이 크게 줄었다. 좋은 선수들이 계속 떠나는 ‘셀링 클럽’에 가깝다. 김 감독은 2021시즌도 사실상 ‘새판 짜기’를 하며 준비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포항의 위상이 떨어지리라 보는 시선은 없다. 화수분처럼 내부자원을 배출하고, 안정적 구조에서 잘 성장한 선수들이 내일의 자금을 마련해주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돼있어서다. 또 송라 클럽하우스 인접 부지에 오직 실전 체력증진을 위한 풋볼퍼포먼스센터를 20억 원을 들여 건립한 것처럼 꼭 필요한 투자는 아끼지 않는다.

부족한 재정여건 속에 추락을 넘어 추한 모습까지 보이는 기업구단들이 적지 않은 요즘이다. 뿌리 깊은 불신에 서로 반목하고, 수뇌부는 이를 방관해 악화일로를 걷는 팀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전통의 명가’ 포항의 행보는 더 특별하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오늘의 핫이슈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