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플렉센. 스포츠동아DB
두산의 발걸음은 그 3번 중 한 번인 2015년과 꼭 닮아있다. 당시 두산의 히어로는 더스틴 니퍼트(39·은퇴)였다. 그해 가을 5경기에서 32.1이닝을 책임지며 평균자책점(ERA) 0.56의 괴력투를 과시하며 준플레이오프(준PO)부터 시작된 두산의 미러클 레이스에서 선봉을 맡았다. 가을에 ‘미친 선수’가 나오는 팀이 유리하다는 속설대로, 가장 강한 투수가 미치니 우승은 당연했다.
올해 두산의 미친 선수는 지금까지는 크리스 플렉센(26)이다. 준PO와 PO를 거치는 동안 3경기에 등판해 ERA 1.10의 위력을 뽐냈다. 가을의 플렉센을 상대한 LG 트윈스와 KT 위즈 타자들은 입을 모아 “칠 수 있는 공이 아니다”고 혀를 내둘렀다.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전천후로 활약한 플렉센의 최고조 컨디션은 KS에서 두산의 가장 믿을 구석이다.
2015년 니퍼트는 정규시즌 20경기에서 6승5패, ERA 5.10으로 고전했다. KBO리그 8년 동안 가장 부진한 성적이었다. 부상과 부진이 겹쳤는데, 정규시즌에 푹 쉰 것이 오히려 PS에서 도움이 됐다. 플렉센도 마찬가지다. 정규시즌 21경기에서 8승4패, ERA 3.01로 기여도가 떨어졌다. 김태형 두산 감독도 정규시즌 막판 이를 아쉬워하면서 “가을(PS)에 잘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그 같은 바람대로다.
시작부터 좋은 기운을 받으며 산뜻한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두산은 LG와 준PO 1차전 시구자로 니퍼트를 불렀다. 당시 니퍼트는 선발투수 플렉센에게 모자를 벗어 인사했다. 플렉센은 6이닝 11삼진 무실점으로 팀의 4-0 승리를 이끌었다. 이어 PO까지 눈부시게 활약한 뒤 플렉센은 “니퍼트가 가을에 해낸 일들을 따라하긴 어렵다. 그런 이야기를 듣는 자체가 기분 좋다”며 “최선을 다해 따라가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플렉센은 니퍼트의 이름 석 자 중 ‘니퍼’까진 소환해냈다. 마지막 한 글자가 남았다. 하지만 플렉센은 제2의 니퍼트가 아닌 제1의 플렉센에 도전 중이다. 또 한번 5년이 지난 뒤 두산의 새 외국인투수가 제2의 플렉센에 도전하며 가을 기적을 써내려간다면 더할 나위 없는 그림일 터. 플렉센은 절반 이상의 고지를 넘어섰다.
고척 |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