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익래의 피에스타] 아무리 먹어도 지겹지 않은 가을 맛, 또 영웅 꿈꾸는 정가영

입력 2020-11-19 08: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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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플레이오프(PO)까지 포스트시즌(PS) 통산 63경기에서 타율 0.288, 4홈런, 26타점, OPS(출루율+장타율) 0.781. 기록만 따졌을 때 폭격기 수준의 성적은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해결사 본능을 과시하거나 펄쩍 뛰며 상대 타구를 낚아챈다. 오죽하면 팀 동료가 ‘가을의 영웅’이라는 별명을 지었을까. 정수빈(30·두산 베어스)은 아무리 먹어도 지겹지 않은 가을 맛을 또 한번 느끼며 올해도 가을의 영웅이 되는 자신을 그리고 있다.

정수빈은 전형적인 ‘쌕쌕이’ 유형의 타자다. 장타보다는 출루 후 상대 배터리를 휘젓는 게 주된 역할이다. PS에서도 주어진 임무는 비슷하다. 하지만 타수당 홈런, 루타, 타점 등 모든 기록에서 정규시즌보다 뛰어나다. 숨겨진 해결사 본능이 가을만 되면 깨어나는 셈이다.

유독 하이라이트 필름을 많이 만들어내기도 했다. 2015년 한국시리즈(KS)에서 손가락 부상을 입은 채 홈런을 때려내는 등 타율 0.571로 활약하며 14년 만에 우승을 이끈 게 대표적이다. 오재원이 정수빈에게 ‘정가영’이라는 별명을 붙였을 때 모두가 납득한 이유다.



데뷔 첫해부터 PS에서 펄펄 날았으니 올해 KS도 낯설지 않다. 정수빈은 1차전에서 4타수 1안타를 기록했는데, 6회초 1사 1·2루서 때려낸 1타점 2루타는 이날 두산의 유일한 장타였다. 수비에서도 진가는 여전했다. 2회말 1사 후 주자 없는 상황에서 애런 알테어의 안타성 타구를 몸을 던져 잡아냈다. 알테어도 입을 벌린 채 아쉬움을 감추지 못할 정도의 체공시간이었다. ‘에어 수빈’의 다이빙은 두산은 물론 야구팬들에게 익숙한 광경이다.

출루 하나의 소중함이 큰 단기전은 어쩌면 정수빈의 텃밭일지 모른다. 정수빈은 “큰 경기에선 번트 등 평소 하지 않던 플레이로 상대 실수를 유발해야 쉽게 풀린다”며 ‘타짜’의 노하우를 제시했다. 정수빈이 데뷔한 2009년 이후 내야안타(188개)와 번트안타(55개·이상 2위) 최상위권에 그의 이름이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잘 맞은 단타와 발로 만든 안타의 값어치는 다르지 않다.

정수빈은 올해도 영웅을 꿈꾼다. 예비 프리에이전트(FA)가 즐비한 두산이기에 더욱 그렇다. 정수빈 역시 예비 FA 중 한 명이다. 언제든 상대 배터리를 휘젓는 외야수는 타 팀에서도 군침을 흘릴 만한 자원이다. “형들이 ‘이번이 정말 마지막일 수도 있다’고 한다. 많은 선수들이 남으면 좋겠지만 힘들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더욱 뭉치고 있다. 이기는 경기에서 주인공, 영웅이 되고 싶다”며 웃은 정수빈의 각오는 결코 가볍지 않다.

고척|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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